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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쌤 May 18. 2023

기가 막힌 잔머리 굴리기

포켓몬도 아닌데 수법이 점점 진화한다

강의 경력만 16년이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들이 그동안 내 수업을 거쳐갔고 이제는 자의든 타의든 아이들 다루는 데는 도가 텄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학생들의 잔머리 수법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며칠 전 학부모 상담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아직 멀었구나. 역시 방심은 금물이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담당한 수업 중에서 같은 반의 두 학생이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같이 듣게 되면서 수요일 1교시를 매주 늦을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다.

"선생님 학교 방과 후 때문에 저희 둘은 수요일에 계속 늦어요"

아이들이 수업에 늦게 들어오면 학부모의 핸드폰으로 수업에 오지 않았다고 문통보를 하고 있는 걸 아이들도 알고 있기에 방과 후가 시작되기 전 주에 미리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 그럼 방과 후 때문에 늦는걸 엄마도 알고 계신 거지?"

"네. 엄마가 방과 후 하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아이들과 사전에 협의가 된 후 이 두 녀석이 매주 수요일은 학교 방과 후 수업 때문에 늦는다는 건 그 반의 기정사실이 되었다.

아이들이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놓치는 앞부분의 수업은 끝나고 남아서 보충을 개별적으로 진행했고 그렇게 3주가 흘렀다.

그리고 이번 주 월요일에 한 학생의 어머님께 상담 전화를 드렸을 때 진실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 저희 아이 아직도 매주 늦게 들어오고 있죠?"

"네. 방과 후 수업이 늦게 끝나서 어쩔 수 없다고 하길래 수업 끝난 후 매주 수요일은 남아서 보충하고 있어요. 어차피 남아서 보충을 따로 하고 있으니 저는 괜찮은데요, 방과 후 수업을 언제까지 할 예정인가요? 그래도 보충하는 것보다는 수업에 들어오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에휴... 저도 알지요. 그래서 방과 후 농구 하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 아이랑 같은 수업 듣는 OO 있죠? OO도 영어 학원 수업 빼먹고 싶어서 농구 신청했다면서 자기도 신청해 달라고 애가 하도 졸라서 어쩔 수 없이 신청해 줬어요. 농구 선생님께는 애들 둘 다 4시까지 학원 가야 하니까 중간에 보내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농구 선생님도 애들이 안 가니까 그냥 수업을 끝까지 하시는 것 같아요."



어머님께 진실을 듣고 나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결국은 영어학원 조금이라도 늦게 가려고 농구를 신청한 것이었고, 정말 농구가 하고 싶어서 신청한 게 아니라 일부러 학원의 1교시 수업과 겹치는 농구를 신청한 것이다.

확실히 머리가 좋기는 한 게 너무 많이 수업에 늦게 되면 당연히 집에서 엄들이 방과 후 수업을 신청 안 해주니까 일부러 20분 정도만 겹치는 농구를 선택한 것이었다.

 아무리 아이들이 철이 없다고 하더라도 6학년이면 대부분은 슬슬 정신 차리고 공부하는 척이라도 하는데 둘 다 집에서 둘째이고 엄들이 마냥 오냐오냐 하다 보니 그렇게 해서라도 학원 수업을 땡땡이치고 싶었던 것이다.

정말 똑똑한 아이들이지 않은가!


아이들의 잔머리 수법에는 나 역시 길들여질 만큼 내공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큰 착각이었다. 요즘 아이들 아는 것도 많고 굉장히 똑똑해서 확실히 그만큼 잔머리 수법도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터지기 전에도 믿고 있던 6학년 학생의 잔머리 수법에 당했는데 어째 몇 년간 잠잠하다 싶었다.

이래서 아이들은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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