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원에 오래 다닌 친구들은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엄마들에게 전화해서 학습상담이 매우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못하는 학생을 무조건 잘한다고 칭찬하지도 않고 태도가 안 좋은 아이들을 아무 문제없다고 대충 얼버무리지 않는다.
게다가 학부모님들 또한 내가 어떤 강의를 하고 어떤 위치에서 학원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몇몇 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상담이나 전체적으로 학원 운영에 잘 협조해 주신다.
내가 수업을 맡아서 하는 반 중에서 유독 한 반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아이들이 두 명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적게는 1년부터 많게는 5년 동안 나와 수업을 함께 했기 때문에 내가 숙제 안 해오는 학생보다 거짓말하거나 cheating 하는 학생을 더 싫어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숙제를 안 해왔거나, 단어를 안 외워온 날에는 솔직하게 안 했다고 다들 수업 시작하면서 바로바로 이야기를 하고 그런 경우에는 나도 이따가 수업 끝나고 남아서 별도로 하고 가라고 끝내고 다른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두 녀석들은 다른 반에서 무조건 응석을 받아주는 선생님과 편하게 수업을 하다가 우리 반에 합류한 지 4개월 정도 된 친구들이다.
편하게 수업하다 우리 반으로 옮겼는데 매주 문법 시험이 있고 수업 시작과 동시에 단어 시험이 있으니 가뜩이나 학원 와서 영어수업 듣는 것도 짜증 나는 마당에 하기 싫어 미칠 지경이라는 표정이 수업시간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내가 담당한 반은 주로 상위권 친구들이 모여있는 반이므로 수업이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숙제를 안 해오는 건 기본이고 성실하지 못한 친구들이기에 엄마들 역시 아이가 수업 끝난 후 무조건 학원에 남아서 숙제 다 하고 할 일 다 마쳐서 보내달라고 별도로 요청을 하셨다. 남아서 자습실 선생님의 감시하에 숙제를 하고 집에 가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가능하지만 단어를 외워야 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이건 자습실 선생님이 대신 외워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본인이 스스로 외워야 하는데 하기 싫으니 두 아이들이 선택한 게 cheating이다.
둘 다 쪽지를 만들어서 보고 쓰길래 한 달 내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수업시간에 경고를 주고 타일러 봐도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짖어라. 나는 단어 외울 생각이 없으니 나 하고 싶은대로 하련다'로 일관한다.
이 두 학생의 엄마들 역시 아이가 단어를 안 외우고 쪽지를 만들어서 베낀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들이 집에서 주머니와 가방을 뒤져서 쪽지를 발견하고는 아이에게 경고를 한차례 줬고, 학원에 별도로 연락을 해 원장님, 그리고 담당 선생님인 나와 지속적으로 아이의 불성실한 태도문제를 자주 상담하고 있는 데 정작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다.
'선생님과 엄마한테 한번 걸렸으니 두 번은 안 걸리겠지'라는 생각으로 매번 쪽지를 가져와서 보고 쓰는 버릇을 고치지 않길래 7월 마지막주에 수업이 끝난 후 따로 불러 대놓고 이야기해 주었다.
"너희 둘 단어 안 외우고 쪽지 만들어서 한 달 내내 보고 베낀 거 엄마도 다 알고 계시고, 선생님도 진작에 알고 있었어. 원장님도 다 알고 계시고 한 달 내내 엄마랑 선생님이 거의 매주 통화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둘 다 태도가 바뀌지 않으니 8월부터는 단어시험 보는 패턴을 바꿀 거야. 그리고 단어시험 볼 때는 자리도 선생님이 정해준 자리에 앉아서 쓰도록 해라"
둘 다 굉장히 당황한 눈치이다.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자기만 빼고 모두 다 자신의 태도를 알고 있었으니 순간 창피하기도 했겠지.
원래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잘 안 하는데 이 날은 작정하고 폭풍 잔소리를 퍼부었더니 나도 힘들었다.
조금만 크면 자기가 엄마나 선생님을 완벽하게 속일 수 있을 줄 알고 착각하는데 강의실 맨 앞에 있다 보면 옷 깃에 숨겨서 보고 쓰는 거, 필통 안에 숨겨서 지우개 꺼내는 척하면서 베끼는 거, 손가락 사이에 써놓고 베껴 쓰는 거 등등 다 보인다.
엄마가 아무 말 안 한다고 모르는 게 아닌데 아이들은 집에서 엄마가 별 반응이 없으면 모르는 줄 알고 착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