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난 후 쉬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특히 1-2학년이 제일 많이 뛰어다니는 편이다.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걸어 다니라고 주의를 줘도 눈앞에서만 걷고 금방 발걸음이 빨라진다.
물론 고학년들은 예외이기는 하다. 4학년 이상의 고학년들은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정수기에 가서 물 마시고 오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자기 자리에서 친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관심사를 공유한다. 그나마도 코로나가 아직 종식되지 않은 관계로 물도 개인 물병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들은 정수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래도 초등학생들은 움직이기라도 하는데 중학생은 의자에 붙박이장 수준으로 앉아있는다.
뛰어다니는 1-2학년을 보면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는데 아주 오래전에 학원에서 대형 사고가 있었던 적이 있어서 그 일이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기에 뛰는 아이들을 보면 나는 무조건 걸어 다니게 한다.
"선생님 Daniel 피나요"
"피가 엄청 많이 나고 있어요. 빨리 오세요"
1학년들이 1교시 수업을 마치고 잠깐 쉬는 시간이었는데 한 교실의 아이들이 모두 우르르 뛰어나오더니 일단은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선생님 중 나를 붙잡고 자기네 교실로 잡아끌었다. 1학년은 작은 일도 부풀려 말하는 경향이 종종 있기에 아이들이 누군가가 피를 흘리고 있다고 해서학생 중 한 명이 코를 파서 코피를 흘리나 보다고 생각했고, 몇몇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교실에 들어갔을 때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나 역시 너무 놀랐다.
한 남자아이가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책상 위 와 바닥에는 아이의 피가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묻어있었다.
입에서 계속 피가 나니까 손으로 막고 있는 아이의 손가락 사이 역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옷 또한 피가 묻어서 엉망인 상태였다.
일단 지혈을 해야겠기에 교실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서 아이 입을 막아주었고, 옆에 있던 여학생에게 빨리 나가서 원장님 불러오라고 시킨 후 나는 피 흘리는 아이를 상담실로 데려갔다. 본인도 많이 당황하고 놀랐는지 울지 않고 있던 아이가 상담실에 데려가서 옷에 묻은 피를 물티슈로 닦아주고 내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니 그제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울기만 하고 말을 못 하기에 지혈했던 휴지뭉치를 치우고 난 후 아이에게 입술을 보여달라고 했다.
피가 멈춘 후 상태를 보니 꽤 심각했다. 상단 앞니에 입술을 찍혀서 입술이 매우 부풀어 있었고 윗입술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 상태였다. 아이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피가 워낙 많이 난 상태였기에 치아가 깨끗하게 보이지 않았고 이가 깨진 거 아닌가 싶은 불길한 생각에 나는 아이의 엄마에게 학원에서 사고가 났고 병원을 가야 하니 지금 당장 오셔야 한다고 연락을 한 후 아이와 함께 있었다. 아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 후 원장님께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원장님이 교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사고의 정황은 이랬다.
쉬는 시간에 사고 난 남학생이 아이들 웃겨준다고 책상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고 있었다. 잠깐의 일탈을 즐긴 후 한 학생이 그러다 선생님한테 혼나니까 책상에서 내려오라고 한마디 던졌고, 책상 위에서 춤을 추고 있던 아이가 내려오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책상 모서리에 입을 부딪치면서 앞니에 윗입술이 찍혀버린 것이었다. 본인도 피가 나니 놀랐지만 이 광경을 교실에서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도 놀란 나머지 아무 선생님이나 빨리 데리고 와야겠다고 판단했고, 나오자마자 복도에서 마주친 선생님이 나였던 것이었다. 이 사고가 터진 후 모든 반의 쉬는 시간은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교실 안에서 아이들 감시를 하도록 학원 방침이 바뀌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고 난 학생이 병원에 다녀온 후 어머님께 학원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죄송하다고 원장님께서 사과를 하셨고 해당 학생 어머님은 자기가 말 안 듣고 책상에 올라가서 장난치다가 그런 걸 누구 탓을 하겠냐며, 아이가 이번 사고로 아주 혼쭐났으니 앞으로 두 번 다시 책상에 안 올라갈 것 같다고 하셨다.
다행히 영구치는 깨진 곳 없이 멀쩡했고 병원에서 입술은 치료하면서 성형수술을 해줘야 한다고 진단이 나왔다고 하셨는데 원장님께서 학원에서 일어난 사고이니 학원보험으로 성형수술비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이런 큰 사고를 경험한 이후로 나는 다른 학원에서 근무를 해도 학원에서는 무조건 걸어 다니게 학원 규칙으로 정해버렸고, 지금 근무하는 학원에서도 뛰어다니는 학생은 걸어 다니라고 잔소리를 한다. 강의실 책상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되어 있어도 조심시키는 이유가 그 당시 사고가 났던 책상 역시 모서리가 둥글게 되어있었고 모서리에 보호가드까지 붙여놨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났기에 숙제 안 해오는 건 많이 혼내지 않아도 뛰어다니는 건 꼭 지적을 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