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오늘 새로 온 신규생 수업을 못하겠는데요? 못 따라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영어를 못 읽어요"
"그래서 심각한 수준이라고 미리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성적이 안 나와서 그런 줄 알았죠. 읽지도 못하는 학생을 어떻게 가르쳐요. 이 친구 초등학생 반에서 phonics 먼저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자존심 상해서 싫데요. 어머님도 아이 상태를 알고 많은 거 바라지 않으시니까 부담 없이 수업하셔도 돼요"
신규생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원장님께서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언질을 주셨지만, 설마 하니 중학교 2학년이 영어를 못 읽을 거라고는 아예 생각도 안 해봤기에 그저 단순히 성적이 바닥을 치고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 학생에게는 그저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로구나' 딱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당연히 수업시간에 책만 쳐다보고 앉아있는데 아이도 답답했겠지만 수업을 진행하는 내 눈에 다 보이는데 나 역시 마음이 편한 상태가 아니었다.
만약 누군가가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에게 문제를 읽고 풀어보라고 책을 들이밀면 어떻겠는가! 그 상황을 누군들 좋아할까?
그 당시 아이에게는 위의 비유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때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남학생은 그래도 동생들과 phonics부터 시작하는 건 창피하다고 같은 학년 반에 넣어달라고 해서 앉아는 있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놓여있었고, 그 아이의 처지를 알고 있는 같은 학교 다니는 친구들만 웃고 있었다.
지금은 자유학기제로 전환되면서 중학교 1학년이 시험이 없어졌지만(그마저도 정권교체와 함께 다시 부활한 학교도 있다) 그때는 1학년도 똑같이 일 년에 4번 학교 시험이 있을 때였다.
1학년 동안 4번의 시험을 경험한 후 이대로라면 아이가 고등학교를 못 갈 것 같다고 판단하신 어머님이 공부 안 하면 두들겨 패서라도 시켜달라고 원장님께 애원하다시피 해서 등록을 한 학생이었다.
원장님도 처음에는 안 받겠다고 거절하셨던 학생이라는 건 훗날 원장님과 독대한 자리에서 알게 되었다.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 성적도 만만치 않게 형편없는 학생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영어 성적이 30점, 성적은 두 번째 문제였고 일단 영어를 아예 읽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내신대비를 하나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그마저도 대충 감으로 찍어서 객관식 문제만 풀었다고 한다. 서술형은 손도 못 댔을 테니 그래도 이 정도 점수라면 대충 찍어서라도 풀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아이의 태도였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뭐든 할게요. 못 읽으니까 무조건 외우기라도 할게요. 저 그냥 이 반에서 수업 듣게 해 주세요"
중학교 2학년, 누군가는 중2병이라고 부르는 허세 가득한 한창 사춘기가 제대로 왔을법한 시기에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창피함을 견뎌내고 아이가 수업시간에 스스로 나에게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