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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로컬리 Mar 27. 2023

평면 속에 입체감을 불어넣는 사람

[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13 김한빛

한때 인간들은 일용할 양식 앞에 나름의 예를 갖추곤 했다. 자신이 섬기는 자연이나 신에게 감사를 방식으로. 오늘날 그 자리는 촬영음이 대신한다. 이제 사람들은 음식 앞에서 렌즈를 들이민다. 축복을 염원하는 대신 촬영 버튼을 누르고, 신이나 자연 대신 불특정 다수에게 사진을 전송한다. 기술 발달에 따른 비관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도구의 발달은 언제나 풍경을 바꿔왔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낯선 장소를 가려면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다니곤 했다. 친구들을 생일잔치에 초대하려고 건물 위치, 모양 등을 지도에 그리기도 했다. 장소가 어떤 꼴을 갖췄는지는 직접 방문해야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동시대 사람들은 공간을 이미지로 접한다. 이제는 가보기 전에도, 공간의 생김새를 알 수 있다. 도구가 발달한 덕에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공간 사진이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오픈 소스 중 하나가 됐다. 이용객에게는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긴요한 요소로, 공간 운영자에게는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요긴하게 활용된다. 그리고 공간 설계자에게는 초기 기획 의도를 온전히 기록해 남길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도 쓰인다. 


김한빛은 이 모두를 위해 존재한다. 공간을 둘러싼 첨예한 의미망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렌즈를 들이밀고, 찍는다. 2차원의 평면도에서 출발해 3차원의 입체물로 구현된 공간을 다시 평면 속으로 넣는다. 물론 있는 그대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건 아니다. 공간이 가진 장점은 강조하고, 단점은 덜어낸다. 사진이란 평면 속에 새로운 입체감을 부여하는 작가, 김한빛을 작업실과 작업 현장을 오가며 만났다. 




녹음 좀 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제가 말을 그렇게 조리 있게 하는 편은 아니어서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편하게 해 주세요. 우선 작가님 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공간을 찍는 김한빛입니다. 카메라를 든 건 9년 차 정도 됐어요. 시작은 광고 사진에서 출발했어요.


본격적으로 공간을 촬영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손을 좀 다쳐 3개월 정도 재활을 하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요. 그때 익선동의 한 식당을 간 적이 있는데요. 밥 먹으려 들어간 공간인데 꽤 예쁘더라고요. 제가 원래 사물이나 사람을 보며 담았지, 공간을 촬영한 적은 없었는데요. 그날은 신기하게도 공간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한번 찍어보고 싶어 졌죠. 사장님한테 요청해서 촬영을 했어요.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그게 한 일간지 온라인 기사에 실렸어요. 매체에 실린 걸 또 SNS에 올렸더니 작업 의뢰를 주시는 분들이 하나둘씩 생겼어요. 그게 계기가 돼서 지금까지 공간을 사진으로 담고 있습니다. 운이 좋았죠.


그때부터 바로 작가로 활동하신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공간 사진은 경력이 전무했던지라 좀 더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었죠. 생활비도 벌어야 했고요. 인테리어 사진을 촬영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개인 의뢰도 작업했어요. 평일에 퇴근하면 개인 촬영 가고, 주말에도 카메라 챙겨 현장 나가고. 그렇게 한 2년 정도를 지냈나. 부수입이 월급을 넘어서기 시작했어요. (웃음) 그때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본격적으로 해봐도 되겠다고.



개인 작업 의뢰가 꾸준히 들어온 것도 신기하네요. 비결이 있을까요?

SNS를 활용했어요. 사실상 투잡을 한 시점부터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루 한 개의 사진은 올렸거든요. 이것(SNS)이 제게는 간판 같은 거였어요. 불을 꺼두면 안 되겠다, 사람들에 눈에 들도록 계속 켜둬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게시물이 2,000개가 넘네요. 매일같이 퀄리티 좋은 작업물을 선별해 올리신 건가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순 없잖아요. 사진도 마찬가지죠. 만족스러운 결과물만 만들 순 없죠. 하지만 당시에는 가리지 않고 올렸어요. 지금 보면 참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들도 많은데요. (웃음) 차마 지우지는 못 하겠더라고요.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고, 잊지 않고 싶어서요.


사진: 김한빛




장난감처럼 친숙했던 카메라


타임라인을 좀 더 과거로 돌려보면 좋겠어요. 사진은 어쩌다 찍게 되신 거예요?

아버지가 사진을 하세요. 아무래도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카메라가 저한테는 장난감이나 다를 바 없었어요. 아버지가 따로 촬영하는 방식을 알려주지 않으셔도 옆에서 보면서 이렇게 하는구나, 습득해서 찍어보기도 했고요. 그만큼 친숙했죠.


그럼 학창 시절부터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결심하신 건가요?

아뇨. 학창 시절에는 음악을 좋아했어요. 악기를 했거든요.



어떤 악기요?

트럼펫이요. 좀 더 어릴 때는 리코더를 불었어요. 문방구에서 파는 리코더 말고 전문가들이 연주하는 리코더가 따로 있는데, 그걸로 합주단에서 활동도 했었어요.


전문가들이 쓰는 리코더는 연주 방식도 다른가요?

보통 우리가 아는 리코더는 입에 대고 바람을 불잖아요. 제가 하던 리코더는 텅인(tounging)이라고 혀를 이용해서 탁탁 쳐주는 방식으로 연주해요. 악기 얘기 나와서 생각났는데요. 지난 설날, 본가에 갔는데 아버지가 대뜸 리코더를 꺼내시더니 저더러 불어보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다 까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몸이 기억하더라고요. 물론 잔실수는 좀 많았지만 옛 생각이 나서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웃음)


그런데 음악을 계속하진 않으셨어요.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았어요. 그래서 내려놨죠. 이후부터는 사실 평범해요. 졸업 후 대학을 다니다 그만두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입대를 했죠. 군 생활을 하며 어떻게 살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사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대에서는 주로 서적을 보면서 사진을 공부했어요.


사진을 책으로요?

네. 특정 작가의 작업을 보기도 하고, 촬영에 대한 기술적인 내용도 봤어요. 또, 촬영을 할 때 어떠한 마음으로 찍는지에 관한 내용도 들춰 봤어요. 사진에 관한 거라면 다 읽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아버지는 내심 바라셨던 것도 같은데 어머니가 극구 반대하셨어요. 정말 많이 고생하셨거든요. 난리도 아니었어요. (웃음)



지인 중에 작가 생활하는 친구가 있어요. 아버지도 작가 생활을 하시고요. 둘 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하던데. 작가님은 어떠세요?

초창기에는 아버지한테 제 사진 많이 보여드렸어요.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선생님이다 보니까.


반응이 어떠셨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웃음). 아버지는 사진 속에 감정을 담는 편이에요. 감수성이 좀 풍부하다고 해야 하나. 세상의 단면 속에서도 아름다운 요소를 찾아내는 역량이 뛰어나시죠. 그런데 저는 달라요. 상업적인 작업에 최적화된 입장이죠.


서로의 작업 방향이 조금 다른 거 아닌가요?

그렇죠. 분명 아버지 의견도 새겨들을 게 많아요. 당연히 도움도 되고요. 다만, 지향점이 조금 다르다 보니 이제는 작업에 관한 얘기는 잘 안 나눠요. 대신 응원을 많이 해주세요.


가장 처음 사용하셨던 카메라는 뭔가요?

아버지한테 받은 캐논 오디 마크 3(Canon EOS 5D Mark 3)요. 그걸 한참 열심히 썼죠. 나중에 마크 4를 사고, 원래 쓰던 마크 3은 돌려드렸어요. 좋은 건 제가 쓰려고요. (웃음)



사진: 김한빛






변수 속에서 누르는 촬영 버튼


사실 사진작가와의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그래서 궁금한 지점이 참 많아요.

다 물어보세요. (웃음)


촬영 작업 과정은 보통 어떻게 이뤄지나요?

일단 스튜디오나 건축 사무소에서 촬영 의뢰 연락이 와요. 그러면 해당 공간의 주소, 모델링 이미지, 개략적인 현장 사진들을 요청해서 한번 훑어보고요. 그다음 답사를 가요.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 주변 요소 등 직접 가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죠. 현장 조사까지 마무리하면 그다음 촬영 일정을 조율하고, 어떤 느낌을 담고 싶은지, 무엇을 강조하고 싶은지 등을 논의해요.


그렇군요. 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현장 컨디션이요. 공정이 밀리거나, 준공일이 당겨져 준비가 안 된 경우들이 있는데요. 그러면 당연히 촬영 일정도 밀리고, 현장 상황도 번잡해서 좋은 공간감을 담기 어려워져요. 결과물이 좋으려면 결국 원본이 중요하거든요. 현장이 잘 정돈돼야 촬영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고, 그래야 좀 더 좋은 결과물도 만들어낼 수 있죠.


얼마 전 따라갔던 한남동 촬영장이 생각나네요.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을 해야 했던 긴박한 상황이었잖아요. 보기만 하는 저도 정신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침착하게 촬영하셔서 놀랐어요.

저도 속으론 어질어질했어요. (웃음)


촬영 내내 공간 디자이너와 정말 많은 대화를 하시더라고요.

리파인드 스튜디오(@refyndstudio)와는 작업을 많이 해왔어요. 그만큼 서로가 원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잘 알죠. 그런데 촬영하는 공간은 매번 달라지잖아요. 제가 이해한 방향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느낌과 다른 경우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죠. 그래서 실시간으로 사진을 확인하며 의견을 조율해요. 이런 과정 속에서 대화를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올 때도 많고요.


사진: 김한빛


결과물을 바로바로 보여주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오히려 긴장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 집중력이 높아져요. 더 신경 써서 촬영하게 되거든요.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좋아요. 표정에서 다 드러나니까요.


보통 작업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나요? 지난번 현장은 거의 5시간 넘게 걸린 걸로 알고 있는데요.

프로젝트마다 달라요. 최근 촬영한 건축 프로젝트는 3일 정도 소요했어요. 물론 3일 내내 사진만 촬영하는 건 아니에요. 상공간의 경우 영업시간에 맞춰야 하기에 조율하는 부분에도 시간을 쓰거든요. 대기하는 시간도 왕왕 있고요. 정말 짧았던 경우는 한 2~3시간 정도 걸렸던 거 같아요.







보다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그간 촬영하신 사진들을 보고 떠오른 단어가 있어요. 정직함. 뭔가 올곧은 자세로 선 사람이 눈앞에 있는 장면을 정직하게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게 제가 원하는 의도이긴 했어요. (웃음)


잘하고 계신 거네요. 그만큼 작가님이 의도하신 방향으로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는 방증일 테니.

기본에 충실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 그렇게 배웠어요. 당시 사수가 기본을 강조했거든요. 제 사진을 보고 ‘정직하게 찍는다’는 느낌을 받으셨다고 했잖아요. 광고 사진을 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기본을 잘해야 응용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기본을 위해 노력해요. 요즘엔 좀 더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려고 해요.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서요.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한 시도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예전에는 공간 찍을 때 사물의 미시적인 부분을 담으려고 하진 않았어요. 공간 사진이라면 공간 전반을 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여겼거든요. 고지식했죠. (웃음) 근데 공간에도 디자이너가 힘주어 작업한 요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디테일 컷 촬영도 시도해보고 있어요. 


공간 사진의 목적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클라이언트의 작업이 잘 전해질 수 있게 하는 거죠. 공간의 모습을 꼭 있는 그대로 전하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가령 좋지 않은 부분은 좋게 보이게 만들고, 불필요한 요소들은 제거해 깔끔한 사진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그게 제가 하는 일이고, 제가 방점을 찍는 지점이에요.


어떤 의미에서 편집자에 가까운 느낌이네요. 저자가 쓴 글이 독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게 덧대거나 빼내는 느낌.

보통 작업이 완료된 사진은 웬만하면 와이프한테 보여주고, 공간에도 같이 가보는 편인데요. 열에 한 일곱 정도는 사진이 더 낫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제 입장에선 그 말을 들으면 뿌듯하죠.



그렇겠어요. 의도하신 거니까.

의도한 거니까요. 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설계자가 원하는 느낌도 연출해 내고 그것들 모두를 담아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무수한 경험으로 인화하는 감각


앞서 기본이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공간 사진에서 기본은 어떤 건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수직, 수평이요. 이게 반듯해야 안정감을 주거든요. 눈으로 보고 받아들이기도 쉽고요. 그래서 이것들을 최대한 잘 담으려고 신경 써요. 공간에 맞는 렌즈를 고르는 것도 기본이고. 아, 흔히 말하는 노출값 같은 요소들도 중요하고요. 하나만 말하기 어렵네요. (웃음)


공간 촬영과 인터뷰는 비슷한 성질을 가진 것 같아요. 매번 인터뷰하는 사람이 다르듯, 촬영하는 공간도 다 다르잖아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촬영하는 방법론 같은 게 있나요?

워낙 많은 공간들을 촬영하며 쌓인 경험치 아닐까요? 딱히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그냥 그때그때 딱 나오거든요.


경험이 쌓여 본능으로 자리한 거네요.

언젠가 한 번은 제가 찍은 모든 사진이 다 똑같게 느껴진 적이 있어요. 분명 공간은 다 다른데 왜 동일하게 보이는지 의아했죠. 그게 클라이언트와 대화를 많이 하려는 이유이기도 해요. 그간 제 몸에 쌓인 '습(習)'은 이 구도를 원하는데, 그건 제겐 진부한 접근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묻기 시작했어요. 글도 저자가 의도를 가장 잘 알듯, 공간도 제작자가 가장 잘 알거든요.


글쓰기에서 말하는 ‘첨삭’ 과정과 비슷하네요. 그나저나 주거 공간도 많이 촬영하셨잖아요. 우문(愚問) 일 수 있지만,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을 촬영할 때 차이가 있나요?

물론이죠. 상업 공간을 촬영할 때는 공간이 주는 느낌이나 특징들을 강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반대로 집은 사람 냄새가 나게끔 작업하는 것 같고요.


사람 냄새요?

자연광 촬영을 지향하려고 한다든지, 실제 거주하는 분들을 공간과 함께 담아내려고 하는 방식이에요.


이건 조금 벗어나는 얘기일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공간을 많이 찍다 보면 현장 보는 눈이 생기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보이죠. 가끔 현장 나가면,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씀들을 하세요. 저더러 감리 좀 보라고. (웃음) 근데 정말 그래요. 사진으로 담다 보면 공간의 디테일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공부하게 되거든요. 가령 원본(실물 공간)에 실리콘을 잘못 쏜 부분이 있으면, 이것들을 제가 후보정으로 보완하잖아요. 이런 경험이 하나 둘 쌓이다 보면 다음 현장을 둘러볼 때 그런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살피게 돼요. 보는 눈이 생기는 거겠죠?


그러네요.

전문가들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배우는 부분들도 많아요. 건축에 대해서도, 설비나 자재 같은 것들도 물어보면 그때그때 들을 수 있으니까요.


좋네요.

문제도 있어요. 나중에 저도 제 집을 짓고 싶은데요. 눈만 높아져서 큰일이에요. (웃음)




작가 생활 초기에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하셨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이왕 발 들였으니 끝을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서울에 온 목적도 사진으로 성공하는 거였고요.


의지만으로 버틸 수 있었을 것 같진 않은데요.

재밌었어요. 운도 따랐고요. 보통 어시스턴트로 시작하면 카메라 잡기까지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많은데요. 저는 꽤 이른 시기에 카메라도 잡아보고 촬영도 해볼 수 있었죠. 그 무렵, 지인들도 제게 촬영 요청을 하기 시작했어요. 신기했죠. 현장에서 경험하고 배운 걸 실제 촬영에서 바로 써먹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정말 끝장을 봐야겠다는 의욕이 타올랐던 것도 있어요.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직접 활용해 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경우는 아니었으니까.


앞서 계속 상업 작가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개인 작업은 따로 안 하시나요?

예전에 했어요. 진부하긴 한데 하늘을 찍고 그랬죠. (웃음) 올해는 분명한 주제를 설정해 볼까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해보고 있는데. 아직은 쉴 때 쉬고만 싶네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일하고 나면 카메라를 잡고 싶지 않더라고요. 일이 많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만큼 공들여 써야 하는 에너지도 커지거든요. 아직은 개인적인 목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싶진 않아요. 작업도 마음이 내킬 때 해야지 안 그러면 억지스럽거든요.


그러네요. 결국 언젠가 뭔가를 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작업도 잘 될 테고요. 그래야 진정성도 느껴질 거 같고요. 설령 그 순간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굳이 그 순간을 만들 필요는 없죠.


동의해요. ‘작가라면 자기 작업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혹시 다른 작가분의 작업을 보며 은연중에 부족하다는 생각이나 이런 것에 사로 잡히신 적은 없나요? 저는 필력 좋은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매번 자괴감에 빠지거든요.

음. 그분들의 작업 하나가 나오기까지, 그들이 그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노력을 했을지 가늠하거나 평가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 그냥 내 위치에서 잘하자는 생각으로 임해요. 오히려 그분들의 노고가 담긴 작업물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죠. 열심히 보고 공부해야지, 이런 생각뿐이에요.





좋은 사진의 출발은 관찰


<옥희의 영화>에서 “요즘엔 전 국민이 사진작가야”라는 대사가 나와요. 오늘날 현대인은 사진을 보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생산할 수 있게 됐죠. 사진에 대한 접근성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작가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데요. 그럴 때 가끔 대중들이 촬영한 공간 사진을 보면 놀라요.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는데도 이렇게 담을 수 있구나’, ‘이런 구도로도 공간을 담을 수 있구나’하고 감탄하거든요. 누군가의 결과물에서 신선함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배울 점이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휘발되는 이미지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것도 있지만, 다양한 관점과 시도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요.


노력과 재능이라는 이분법이 있죠. 어느 쪽에 좀 더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조건 노력이요. 근데 와이프는 저더러 누구 가르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왜요?

한 번은 와이프가 사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는데 “그냥 이렇게 하면 돼”라고 답했거든요. (웃음) 클라이언트들도 제 사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찍을 수 있냐고 자주 물어들 보시는데.


그러면 뭐라고 답하세요?

글쎄요, 그냥 찍은 건데, 그냥 하니까 되더라고요, 그냥 했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씀드려요. (웃음)


이 정도면 노력보다 재능 쪽에 더 가까우신 거 아닌가요?

말로 풀어내는 방식을 모르는 거 같아요. 이 위치에서 이런 구도를 잡으면 괜찮게 나오겠다는 확신, 이건 직감의 영역이잖아요.


요즘 인터뷰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인물 사진 촬영까지 담당하게 됐는데요. 인터뷰에 응해준 분들을 왜곡하지 않고 멋지게 담고 싶은데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렌즈를 들여다보는 제게 조언 하나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저 다운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일단 시간이 해결해 줄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많은 공간을 촬영하며 얻은 경험치를 발판 삼아 언어로 풀어낼 수 없는 능력(?)을 손에 넣은 것처럼, 여러 환경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찍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는 지점이 올 거라 생각해요.


어렵네요.

에디터 님은 촬영 전에 어떤 걸 생각하세요?


생각을 깊게 하기보다는 일단 찍고 보는 편이에요. 인물보다는 주변 배경을 먼저 살피는 거 같아요. 

아, 그러면 카메라를 들기 전에 촬영할 인물이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 유심히 한번 살펴보시는 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사람마다 습관적으로 나오는 제스처나 표정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좀 관찰한 다음 카메라를 들면 좋을 것 같아요. 무작정 찍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대상을 천천히 들여다보려는 시도도 해보시면 분명 느껴지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단계가 지나면, 상황에 어울리는 필름을 골라서 사용해 보기도 하고요. 그러면 촬영이 좀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요?




에디터 김승훈

인터뷰 김한빛





부로컬리(Boolocally)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이 되는 공간을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인터부(INTERBOO)는 매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마주(inter) 앉아 공간을 보는(view) 그들만의 태도를 부로디(BOOlody)에게 소개하는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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