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

by 타우마제인

<7. 필리핀>


지금 나는 필리핀 마닐라로 가는 비행기 안이다.


인테리어 소장님의 소개로 G 푸드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미 대표님은 한류와 젊은 인구가 많은 필리핀의 시장성을 보고, 1년 전부터 사업을 준비해오고 있었다.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J 본부장도 만나고 쇼핑몰에 오픈한 G 푸드 매장들도 보았다.


필리핀은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쇼핑몰이 특히나 많은 곳이다.


유명한 쇼핑몰에 대한 브리핑을 들으면서, 나는 성공을 예감했다.


그 당시 압구정 H 백화점에서 팝업 스토어 행사도 했고, 잠실 L 타워에서 입점 제안을 받았을 때라 입점 수수료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필리핀 쇼핑몰은 한국보다 입점 수수료도 쌌고, 가격은 한국 가격 그대로 받아도 필리핀의 부유층이 자주 이용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한껏 들뜬 나는 한국에 돌아와 필리핀 입점 준비를 시작했고,

쇼핑몰 입점 관계자들 대상으로 시연회도 열어 입점 승낙을 받았으며,

인테리어 소장님과 오셔서 우리가 들어가는 매장의 도면도 만들게 되었다.

또한, 운이 좋게도 우리 매장은 그때 당시 제일 공신력 있는 유명 음식 프로에도 나오게 되었다.


각종 패션 잡지와 신문 티브이 프로들, 음식 유튜버들이 다녀갔다.


매장은 잘 되었고, 항상 줄이 섰다.


이렇게 나의 인생은 잘 흘러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바닥부터 오로지 내 힘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마음에는 온갖 딱지를 붙여도 시원찮을 만큼의 허세와 교만, 자만의 스티커들이 붙여졌다.


투자를 하겠다는 곳들도 생겼다.


W라는 클라우드 펀딩 회사에서 1억 펀딩에 실패했지만, 기존 5000만 원에서 높이지 않았다면 성공했을 펀딩이었다.

나는 있는 돈 없는 돈, 몇몇 투자자들의 돈까지 끌어모아 필리핀 매장을 만드는 일에 골몰했다.


돈은 차명으로 들어갔다.


필리핀이나 태국 등의 나라들은 외화 100만 불(약 14억 5000만 원 이상)이 있어야 직접 해외 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그것보다 작은 사이즈의 일을 하려면, 차명으로(필리핀 사람) 사업자를 내야 한다.


돈을 생각 이상으로 계속 들어갔다.


인테리어의 시간도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졌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한국 사람 10명이 할 수 있는 일을 필리핀 사람이면 30명을 고용해야 한다.


벽돌 나르는 사람, 벽돌 받는 사람 벽돌 붙이는 사람을 따로 고용해야 한다.

전문적인 인테리어 관련 기계도 별로 없다.


필리핀 사람들은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적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그 일을 열심히 할 필요도 애정을 가질 필요도 없다. 딱 주어진 만큼의 일만 끝내면 끝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이름도 듣지 못한 알 수 없는 청구서들이 메일로 계속 날아 들어왔다.

필리핀에서는 계속 돈을 입금할 것을 요구했다.


직원들도 지치고 나도 지쳤다.....


그래도 이대로 끝내기엔 나간 돈들이 너무 많았다.


그 미련으로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녔다.


그때 떨어져 나간 지인들도 많았다.


급기야는 일수, 사채에까지 손을 댔다.


이자는 늘어났고, 직원들 월급은 밀렸고, 필리핀에서는 계속 돈을 보내라는 재촉을 했다.


이상한 분위기를 짐작한 투자자들은 다 떨어져 나갔다.

결국, 나는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내 삶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맨 정신으로 있을 수 없어 매일 술을 마셨다.


당시 연인이었던 H는 집에 와서 하는 일이 내가 숨을 쉬나 안 쉬나 확인하는 일이 일상이 됐을 정도였다.


몸무게는 168의 키에서 44kg까지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나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K 대표의 자살 소식을 떠올리게 되었다.


한국에 최초로 한국법인 별다방을 안착시키고, 누구나 다 알만한 몇 개의 큰 커피 프랜차이즈를 만든 사람. 결국엔 M 프랜차이가 잘되지 않아, 결국엔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한 ......


약속하듯 내 인생도 이렇게 끝나게 돼 있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든 순간,

초등학교 때 이후로 사라졌던 공황 발작이 다시 찾아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생,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