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고따뜻한일상 May 27. 2024

무르익을 때

집 짓기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해요.

감귤철이 지나고 있다. 동네 과수원에서 착한 가격으로 데려 온 비상품 귤들이 소들소들 해졌다. 아이들과 귤껍질을 벗겨 조물거린 후 커다란 냄비에 설탕을 가득 부어 잼을 만들었다. 잼은 만드는 과정이 단순해 보이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때를 잘 기다려야 하는 음식이다. 귤을 바글바글 끓이다가 수분이 날아가면서 바특해질 무렵부터 냄비 바닥에 들러붙지 않도록 잘 저어주어야 한다. 너무 묽지도 되직하지도 않은 농도가 됐을 때, 가스레인지의 불을 꺼준다. 이번 잼은 황설탕을 사용했더니 빛깔이 곱지는 않지만 맛이 진해서 만족스럽다. 올 겨울도 이렇게 지나간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올 겨울 두 번째 귤잼)


 짓기도 때를  기다려야 했다. 집터만 구하면 건축 진행은  흐르듯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추가 예산 마련에 소요되는 멈춤의 시간(열심히 일한 시간 ) 필요했다. 토지 측량과 용도변경이라는  작업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 수도관과 전기선을 집터로 끌어오는데 필요한 견적과 기간도 정확하게 알아보아야 했다. 주민센터와 시청 건축과, 세무서, 토지공사, 법원, 한국전력, 상하수도본부 그리고 은행까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관공서를 오가며 가장 많은 서류 작업을 진행했다. ( 시절 나에게 쓰담쓰담 칭찬을 보낸다.)


설계와 시공을 위해 시장 조사를 하고 세 곳의 건축사무소에 현장 미팅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모두 서울과 경기에 있는 건축사무소여서 일정 조율과 현장 미팅까지 제법 시간이 소요 됐다. 나름 구체적인 집의 구조와 컨셉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장 미팅을 진행하면서 집에 대한 내 생각이 막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 짓기는 보이는 부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구조와 진행 과정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걸 배웠다.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전문가들과 이야기하면서 실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할 수 있었다. 여러 권의 건축실용서도 도움 되었지만 현장 경험이 많은 분들과의 대화가 집에 대한 생각을 현실적인 방향으로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가족의 집에 대한 생각이 무르익고

밑그림이 선명해졌을 때

함께 설계할 곳을 선택할 수 있었다.


제주에서 태어난 막내가 세 살이 되던 16년 초겨울

우리 가족이 살 집 설계가 시작되었다.


_

♪ This Old House

추억의 마니 OST

_

감귤잼이 맛있는 날 일기

(Feb 21. 2024)

이전 03화 브로콜리 너 또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