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엄마

by 홍 필구

언젠가 '엄마'와 산책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나에게만큼은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해주길 바랐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잘못으로 엄마가 혼자 불 꺼진 방에서 울고 있던 것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는데,

항상 괜찮다고 나의 걱정하던 눈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고만 계셨던 엄마가 사실은 그게 아니란 걸 그날 알게 되었다.

엄마가 가까운 누군가에게 속내를 꺼내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엄마의 성격을 비추어 생각해보면 흠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실수로라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분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 속을 다 보여주셨으면 했다. 엄마라도 어디 하소연할 때가 한 곳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엄마가 속상해 보이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엄마 무슨 일 있어?"

라고 묻지 않고 다 알고 있다는 듯, 별거 아닌 걸 묻는 척, 나도 이제 다 커서 웬만한 걸로는 상처받지 않으니 그냥 다 얘기하라는 듯 웃으면서 툭 던지듯이 묻는다. 하지만 사실은 혹시 큰 일인가 하여 웃음 뒤에 떨리는 마음을 꼭꼭 숨긴다고 안간힘을 쓸 때가 있다.

어머니의 표정이 좋지 않을 때는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의 이유는 아버지이고,

두 번째는 경제적 문제 또는 건강문제일 가능성이 있다.

아버지와의 문제는 화가 섞인 얼굴을 하고 계시기에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고, 경제적 문제 같은 경우에는 엄마와 공유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건강 문제는 좀처럼 쉽게 말씀을 안 하시고 수십 번을 묻고 또 어쩔 때는 화를 내야 겨우 말씀해주실 때도 있었다.

그날의 표정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건강 검진했을 때 뭔가 문제가 생겼을까?'

그래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감춰가며 얼굴엔 가면을 쓰고 물었다. 어른인 척, 단단한 척하며 물었다.

그래야 엄마는 말씀을 다해주시니까.

"왜 아빠가 뭐 잘못했어? 둘이 싸웠어?"

"엄마가 뭐 싸움꾼이야?"

"둘 다 싸움꾼 맞잖아 ㅎㅎ 맨날 싸우고."

엄마는 그냥 웃으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가을 날씨가 좋은데 좀 걸을래 엄마?라고 물었다

"그럼 가게는 누가 봐?"

"뭐 평소에도 잘 비우면서 아들이 어디 가자 그러면 맨날 가게 핑계 대고 엄마 나랑 걷기 싫어?"

"아니지 아들이랑 걷는 게 제일 좋지."

우리 동네에는 커다란 나무 사이로 쭉 뻗는 산책길이 있었다. 이따금씩 바람이 불 때면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 그 길을 걸으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어디 아파?"

"아니."

"근데 목소리가 왜 이리 힘이 없어? 밥도 못 먹은 사람처럼."

"그냥.. 날씨가 이러니까 엄마 보고 싶어서."

"외할머니?"

"응."

"하긴... 나는 엄마 가까이 살면서도 엄마가 그리운데 엄마는 오죽할까. 다음 주 비번 때 외할머니 산소에 갈까? 가서 이모도 만나고. 이모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외할머니 그리운 게 좀 진정되지 않겠어?"

"오랜만에 갈까?"

조금은 밝아진 목소리로 엄마는 대답했다.

"그래 가자. 오랜만에 엄마하고 드라이브도 좀 하고."


엄마의 고향은 청송이었다. 청송에서도 좁은 길을 차로 한참 달리면 도착하는 오지였다. 내가 어렸을 때 외갓집으로 갔던 길을 기억하자면 청송읍내에 도착해서 다시 엄마의 고향마을로 들어가는데 그 길이 전부 비포장 도로였다. 가는 내내 차는 끝없이 덜컹거렸고, 어린 나는 결국 중간에 구토를 한 번은 해야 도착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의 엄마는 스무 살만 되면 도시로 꼭 가고야 말 거라고 외할머니께

"거꾸로 박혀 살아도 도시로 갈 거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도시로 와서 '모던 라이프'를 채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그곳에서 '전투경찰'생활을 하던 아버지와 연애를 하셨다. 하지만 그토록 시골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엄마는 시골에서 도시로 나온 지 5년 만인 25살이 되던 해에 다시 시골로 들어가셨다. 왜냐하면 아버지 또한 도시에서 군생활하던 '시골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역시 군 복무가 끝나면 시골로 내려가셔서 농사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순진한 시골처녀였던 엄마는 그래도 도시 물을 엄마보다는 일찍 맛본 아버지에게 속아서(엄마 말에 의하면 단단히 속았다고 하셨다.) 다시 시골로 시댁살이를 들어가셨다. 며느리가 총 세명이었지만 맏며느리와 막내며느리는 이미 타 지역에서 직장을 구해서 독립을 한 상태였다.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며 시댁생활을 했다. 당시에는 세탁기도 없어서 누나와 나의 천기저귀를 매일 찬물을 길어서 빨래를 하셨고,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시고 출산 후 이틀 뒤부터 바로 살림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명절 때가 되면 도시에서 한껏 멋 부린 시조카들이 하얀 얼굴에 멋쟁이 옷을 입고 시골마을로 내려왔다. 그러면 엄마는 시골에서 자라고 있는 당신의 자식들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렸다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당신처럼 시골에서 키우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셨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설득해 독립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독립을 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우리 가족은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었다.


지금 우리 집은 부유하진 않지만 그래도 부족하게 살고 있진 않다. 하지만 나의 기억이 처음 시작할 때만 더듬어 보면 우리 가족은 좁은 방한칸에 네 식구가 생활을 했다. 집안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주변의 몇몇 집들과 공용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을 사용했다. 방한칸에서 잠, 식사 등 모든 것을 해결했다. 그리고 그 방은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 둘을 포함한 네 명이었는데도 가족이 다 같이 누우면 여유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씻는 곳도 따로 없었기 때문에 대야에 물을 받아 집 앞에서 세안하고, 머리를 감고, 손발을 씻었다. 그러고 있으면 우리 앞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지나다녔던 기억이 있다. 좀 더 지난 후에 조금 더 안쪽으로 잠깐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곳은 시골 마을이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 중턱쯤 주인을 알 수 없는 묘지가 네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조금 더 위에 집을 지어 살았다. 그 네 자리의 묘는 후손들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매년 벌초 때가 되면 집 아래에 있던 네 자리의 무덤을 이것도 인연이라며 예초기로 다듬어 주시기도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엄마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보험, 정수기 판매, 생선 판매, 마트, 치킨 양념 만들기 등 난 엄마가 하는 일들을 모두 지켜보면서 자랐다.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능력 부족으로 공부를 탁월하게 잘할 순 없었지만, 나쁜 길로는 절대 빠질 수가 없었다. 내가 그러면 엄마가 더 힘들어할 걸 알고 있었기에.

막내딸이었던 엄마는 결혼하기 전에 이모들에 비해 집안일을 크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막내 이모와 종종 다투기도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막내라는 이름으로 부모님과 오빠들이 엄마 편을 드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런 막냇동생을 보며 집에서는 손도 까딱 안 하던 애가 고생한다며 이모들이 속상해하셨다고 했다.

엄마는 엄마의 속을 장난인 듯 웃으며 감추시는 일이 많았고, 내가 어렸을 때 걱정하듯 엄마를 쳐다보면 이상한 얼굴을 만들어 보이시곤 나를 웃게 하셨다. 이제 그 속임수는 나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결혼하고 나서는 외갓집에 자주 못 가셔서 엄마는 외할머니에 대한 마음이 그리운 마음이 더 크다고 하셨다.

외할머니의 이야기와 어렸을 적 이야기를 엄마와 나누다가 난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엄마. 엄마가 나이가 많아져서 아주 나중에 저승에 갔는데 저승사자가 엄마한테 이렇게 물었어.

'그래 사는 동안 고생했다. 이제 5분 뒤에 버스가 한대 올 거야. 그 버스를 타고 종착지에서 내리면 네가 그리워하던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버스를 타고 떠나면 아들은 못 볼 거야. 그렇지만 그 버스를 타지 않고 아들이 여기 올 때까지 기다리면 아들을 만날 수 있어'라고. 엄마 그러면 어떡할 거야?"

"엄마는 너 기다리지."

"외할머니는 어떡하고?"

"외할머니도 너무 보고 싶은데, 엄마는 너 기다릴 거야."


난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앞을 보기가 힘들어졌지만 엄마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막 불어오는 바람에 낙엽에 떨어지자 눈에 먼지가 들어간 척하며 눈물을 닦아냈다.


"외할머니 섭섭해하시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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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초의 정적을 깨고 난 말했다.

"난 엄마하고는 반대야. 아직은 그래. 엄마하고는 반대야."


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