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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Oct 25. 2022

꿈꿔본 적 없는 정원

벌레를 무서워하거나 흙먼지 뒤집어쓰기를 싫어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이 싫다고 단언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연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본능에 가깝다. 목이 타면 물을 마시고, 가슴이 답답하면 숨을 크게 들이쉬는 것처럼.


아파트에서 태어나 평생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해서 그 본능이 어디 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도시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안타까움의 메들리는 종종 들려왔다. 도시는 고독하고 삭막하다고? 도시 애들은 시골 애들 정서를 따라갈 수 없다고? 나는 뼛속 깊이 아파트 키드다. 하지만 초록과 갈색의 식물, 비 온 뒤 흙에서 나는 냄새, 탁 트인 하늘, 햇빛 조각을 싣고 울렁이는 강에 취하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


물론 도시의 편리함을 포기한 나를 상상하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현대 문명을 포기하지도 못하면서 자연을 싫어할 수도 없는 내게 정원은 묘책이었어야 했다. 도시를 포기하지 않고도 가까이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묘책. 그런데도 과거의 나에게 정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아주 남 일인 양 “글쎄?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 하고 금방 다른 데로 말을 돌렸을 것이다. 그러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집 안에 화분 몇 개 정도 놓을 수는 있지만 정원씩이나 만들 땅이 없었다. 정원이라는 단어를 쓰려면 적어도 식물들이 모여 있을 수 있는 어떤 공간이 있고, 사람이 거길 거닐 수 있어야 하는 데 말이다.


둘째, 정원을 가꾸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나는 파워 귀차니스트였다. 잊지 않고 때맞춰 물을 주고, 건강 상태를 체크해 부족한 영양소를 추가해주고, 해충을 잡아주고, 가지치기해서 수형도 잡아주고? 글쎄요, 저는 제 밥때도 가끔 잊어버리고, 비타민 하나 꾸준히 챙겨 먹는 데도 성공한 적이 없는데요.


셋째, 정원이라는 말이 자연 분위기만 낸 소품 같아서 끌리지 않았다. 자연이 산에 있는 나무라면, 정원은 테이블에 장식으로 올려놓은 작은 인조 화분 같달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따뜻하지만, 왠지 모르게 너무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어서 ‘아, 얘는 진짜가 아니라 흉내다!’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 하면 흙과 나무가 떠오르는데, ‘정원’ 하면 밀짚 모자를 쓰고 주머니가 있는 앞치마를 두른 정원사가 전지가위를 들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내가 벌써 삼 년 넘게 옥상 정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 정원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전혀 닮지 않았다. 정원사부터가 허술하다. 밀짚 모자와 앞치마는 무슨. 그런 아이템은 내 옷장에 없다. 대신 해가 너무 뜨거운 여름이면 가족 중 누군가가 베트남 여행 기념품으로 사 온 고깔모양의 농라를 슬쩍한다. 주머니 있는 앞치마는 정말로 대체품이 없는데, 운동복 바지를 입어도 일하기 편하니까 상관없다. 농라니 운동복이니 하는 것도 그나마 준비성이 좋을 때 이야기다. 비몽사몽 잠옷 바지를 입고 올라가 맨발로 슬리퍼만 신고 돌아다니는 날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시커메진 발바닥에 옷에는 흙먼지와 나뭇잎 부스러기를 잔뜩 붙이고 돌아오기 일쑤다.


허술한 정원사 탓에 정원도 깔끔하게 다듬어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인공의 냄새를 지우고 자연에 가깝게 가꾸겠다는 야심 찬 설계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다. 그저 게으른 정원사가 자연의 생명력을 따라잡지 못했을 뿐이다. 허술한 정원사가 가꾼 허술한 정원의 화분에는 키우려던 식물 말고도 다른 애들이 늘 함께 자랐다. 어디선가 날아온 잡초, 장마철 습기에 힘입은 버섯, 벌레와 곤충의 출몰은 일상이 되었다.


정원을 꿈도 꾸지 않았던 이유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흙냄새 나는 땅이 없고, 게으르며, 뜰이 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 셋 중에 어떤 이유로도 정원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무슨 큰 결심을 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더라? 돌이켜보면 우연에 우연이 겹쳤던 것 같다. 이 우연들은 내가 늘 보던 평범한 세상 속에 완전히 다른 세상을 끌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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