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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Oct 25. 2022

칠 벗겨진 옥상에
발아병 환자 한 명 입원이요

몇 년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파트가 아닌 주택으로 이사했다. 내 의사는 반영되지 않은 이사였다. 낡은 주택은 첫눈에도 썩 달갑지 않았다. 단독주택도 아니라서 아파트를 더 조악하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만 느껴졌다. 나는 철딱서니 없이 징징댔다. 이 집은 수평이 안 맞아. 이 집은 뭔가 지저분해. 이 집은 불편해. 이 집은 안전하지 않아. 싫어할 이유가 너무 많았다.


그런 구구절절한 거슬림을 빼고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꼭대기 층에 살게 되면서 옥상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그래, 아파트랑 다르게 이건 좋겠지. 옥상에 빨래를 널어 햇빛을 가득 머금게 할 수도 있고, 몸이 찌뿌둥할 때 올라가 하늘을 보면서 기지개 한번 켤 수도 있겠네. 기대를 잔뜩 안고 올라갔는데, 그냥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생초록이었다. 옥상이 온통 초록인 서울의 주택 사진을 보고 “한국에는 옥상 정원이 있나.”, “한국은 로맨틱한 나라다.”라고 한 외국 사람들도 있다던데, 과연 내가 선 이 자리에서 이 옥상을 보고도 낭만이란 단어를 꺼낼 수 있을까 싶었다.


이사가 다 끝난 지 한참이 지나고도 옥상은 방치되었다. 열정적으로 옥상 텃밭을 가꾸는 맞은편 집 아저씨 눈에는 우리 옥상 몰골이 영 이상해 보였나 보다. “그 집은 옥상이 아주 휑-해!” 하고 소문을 냈더라. 소문은 같은 동네 사는 외숙모 외삼촌을 거쳐 우리 귀에까지 들어왔다.


타인의 평가가 크게 중요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소문을 들었을 땐, 우리끼리도 이미 여러 차례 “옥상을 너무 놀리는 것 같지 않아? 나무라도 좀 심어볼까?” 하는 얘기를 나눈 뒤였다. 직장에, 학교에, 다들 자기 일이 바빠서 말만 “뭐 심을까?”하고 섣불리 나서지 못했던 일에 드디어 팔을 걷어붙일 때가 온 것이다.


마침 주민센터에서 상자 텃밭 신청을 받는 시기였다. 경쟁률이 무척 치열하다고 해서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는데 뽑혔다. 신기하네. 살면서 뭐에 당첨된 적이 없는데. 음료수 병뚜껑 안에 ‘한 병 더’가 없었던 것도, 오지선다형 보기 두 개 중에 고민하다 하나를 찍으면 꼭 나머지 하나가 답이었던 것도 결국 이날을 위해 아껴둔 뽑기 운 탓이었나?


바퀴 달린 상자들과 상토가 집에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이파리가 연한 상추 모종이 들어있었다. 잎 전체가 고른 톤의 초록색인 청상추와 끄트머리가 불그레한 적상추 두 종류였다. 자동 급수가 가능하게 심지를 넣어 상자를 조립하고, 흙을 붓고, 모종을 옮겨 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냄새 좋고 보슬보슬한 흙을 계속 만지고 싶어서 자제하기 좀 어려웠을 뿐이지.


정신 차리자. 흙을 파고, 모종을 넣고, 흙을 덮어준다. 너무 꾹 누르지는 말고 뿌리가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톡톡 두드려 주기. 그다음에는 물을 뿌려서 흙이 자리 잡게 해준다.


아기 상추는 너무 여리여리했다. 쌈 싸 먹는 튼튼하고 넓적한 애들만 보다가 얘를 보니까 먹을 것도 없어 보였다. 수확 욕심을 부릴 게 아니라 얘를 먹여 살릴 궁리를 해야겠는데? 옮겨 심다가 세 장뿐인 어린 상추 이파리를 찢어 먹을까 봐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걱정해야 하는 건 우리가 이파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아니라 이파리가 그 쪼끄만 세 손가락을 까딱이는 걸로 우리에게 미칠 영향력이었다.


홀렸다. 그게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엄마는 상추 말고도 당귀, 토마토, 고추, 미나리 모종을 사다가 심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 홀림 증상은 좀 더 이상하게 나타났다. 과일을 먹고 씨앗이 나오는 족족 [새로운 아이템을 얻었다!]와 함께 새로운 퀘스트라도 받은 양 신이 나버린 것이다. ‘나는 드루이드 지망생. 지금 손에 든 건 씨앗이지만 잘 키워서 커다란 나무를 만들겠다!’는 이상한 도전 의식이 차올랐다.


일단 씨앗이 생기면 심고 봐야 하는 이 병을, 식물 키우는 사람들은 발아병 또는 파종병이라고 부른다.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나와 비슷한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많다. 발아병에 걸려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진짜로 드루이드가 된 사람들도 있고, 다 나아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다가 주기적으로 재발해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내 발아병은 금귤에서 시작됐다. 금귤은 워낙 작으니까 먹다 보면 정신 놓고 여러 개를 후루룩 먹게 되는데, 먹은 개수만큼 씨도 엄청나게 쌓인다. 평소였으면 버렸겠지.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얘도 심어볼까?’


그저 호기심이었다. ‘귤테크를 해서 평생 금귤은 돈 안 내고 먹자.’가 아니라 ‘얘도 심으면 싹이 날까?’ 하는 정도의 호기심. 초등학교 때 강낭콩 관찰일기를 쓰던 호기심.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식탁에 앉아 스무 개도 넘는 금귤 씨앗을 까고 있었다.


막 뱉은 금귤 씨앗은 표면이 미끌미끌하다. 개구리알을 보호하는 흰 막처럼 생긴 게 금귤을 둘러싸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손에서 자꾸 미끄러진다. 흐르는 물에 잘 씻고 물기를 닦는다. 그러면 이제 딱딱한 연노랑의 겉껍질을 만나게 된다. 겉껍질을 조심스럽게 제거한다. 칼, 가위, 손톱깎이, 무엇을 쓰든 소독을 잘해야 한다. 씨앗을 위해서도, 사람을 위해서도. 그리고 흰 막을 제거했어도 여전히 씨앗은 둥글고 작기 때문에 손에서 잘 빠져나간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보석세공인처럼 섬세해져야 한다. 다소 딱딱한 겉껍질을 사사삭 들어내면 안에는 얇은 황금색 속껍질이 있다. 팝콘을 먹고 나면 바닥에 잔뜩 남는 까끌한 껍질처럼 생겼다. 얘도 벗겨낸다. 작업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노래를 틀어 놓는 것을 추천한다. 어쨌든 얘도 아기니까 세상이 궁금할 거다. 먼저 태어난 생명체로서 맛보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영광이다. 귀가 없다면, 뭐, 시도는 좋았다. 나는 즐겁게 들었으니까. 플레이 리스트가 끝날 때쯤이면 드디어 연두색 씨앗을 만나게 된다.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함에서 플라스틱 상자를 하나 꺼내온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존경한다. 내 롤모델이다. 그렇다면 남는 접시를 쓰자. 무엇을 쓰느냐는 당신의 현재 환경에 따라 다르니 융통성을 잘 발휘하시길. 발아병에 걸린 사람중에는 부엌에서 락앤락이나 반찬 그릇을 슬쩍했다가 등짝을 맞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무엇을 가져왔든 그것이 당분간 아기 씨앗들의 요람이다. 깨끗이 닦고 키친타월을 깐다. 분무기로 키친타월을 촉촉하게 적시고, 그 위에 금귤 씨앗을 올린다. 수분이 증발하지 않게 씨앗 위로 키친타월을 한 겹 더 덮어주고 물도 한 번 더 뿌려준다.


그러고 나면 쭉 기다리는 시간이다. 궁금하면 잠깐 들춰보는 것 정도는 상관없다. 들춰보고 깜박 잊고 키친타월 이불보를 활짝 젖혀두면 말라버리니까 그것만 주의하면 된다. 산 건지 죽은 건지 점점 초조해지겠지만 얘네도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엄마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시간을 생각하면 얘네는 무지 빠른 거니까 길다고 여기지 말고 기다려주자. 가끔 들여다보고 물이 말랐으면 분무기로 촉촉하게 적셔 주기만 하면 된다.


씨앗마다 속도는 다르지만, 며칠 지나면 거의 다 콩나물 꼴이 되어있다. 몸통이 그렇게 작은데 도대체 어디서 끌어와서 저 도톰한 뿌리를 낸 건지 신기하다. 온몸의 힘을 모아 어딘가로 향하는 뾰족한 뿌리 끝을 보고 있으면 강한 의지마저 느껴진다. 그 의지로 키친타월에 닻을 내리기 전에 흙에다 심어준다.


한 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면, 흙을 뚫고 올라와 줄기와 떡잎 두 장을 보여주는 건 금방이다. 처음 싹이 났을 때 그 형광 연두란! 진짜 살아있다는 건 이런 색깔에 이런 광택이구나.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목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금귤 발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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