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옥상의 화분 몇 개가 아니라 진짜 정원다워지기 시작했을 무렵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현실 같지 않았다. 마스크를 사지 못해 줄을 서고, 마트 식료품과 생필품 코너 선반이 텅 비는 건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으니까. 현실감이 없으니 ‘할머니가 되면 손녀에게 해줄 얘기가 생겼다!’ 하고 관찰자 모드로 이 생소한 풍경을 구경하기 바빴다.
그러나 역사를 겪고 있는 나사 빠진 관찰자 놀이를 계속하기에는 코로나가 너무 길었다. 유행이 지나가나 싶으면 “힝! 속았지!” 하고 다시 유행이 시작됐다. 무슨 변이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백신을 맞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거리두기 수칙을 잘 지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무력하고 지쳤다. 너무 오랫동안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니 그제야 이게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서운 깨달음이었다.
나는 갇혔다. 내향인에 파워 집순이라 집에 갇혀도 아쉬울 거 하나 없을 줄 알았는데, 집에 머무는 것과 집에 갇히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답답했다. 사람을 덜 만나는 건 덜 만나는 거고, 집에서 노는 것도 노는 거지만, 마스크를 쓰고는 왠지 제대로 숨 쉬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정원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 한 층 올라가는 게 뭐라고 숨통이 트이더라.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판타지 영화 속 어린이 주인공이었다. 덩굴 속에 숨어있는 문고리를 돌리면 마법 세계가 나타나는 세상의 주인공. 평범한 벽돌벽의 가로 몇 번째 세로 몇 번째 돌을 두드리면 벽이 양쪽으로 열리면서 나에게만 보이는 공간이 나타나는 세상의 주인공.
정원은 자연 흉내만 낸 장식품 같다더니 간사하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그 말을 했을 때는 몰랐다. 정원이라는 데는 그냥 보기 좋으라고 나무 몇 그루 가져다 놓고 예쁘게 장식해 놓은 곳인 줄 알았다. 정원은 인공적이니까 내가 심어 둔 그 나무만 오도카니 있는 건 줄 알았다. 가짜라고 생각했다.
정원에서 산 공기나 도랑물을 찾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정원을 가만히 들여다본 결과, 여기에도 나름의 생태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시 애들은 시골 애들만큼 감수성 있지 않다는 소리를 지금까지 기억할 만큼 내심 상처였으면서, 정작 나는 정원에 대고 너는 가짜 자연이라고 말하고 있었네. 이제야 보였다. 여기에도 살아 숨 쉬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데려다 둔 애들 말고도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까지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이곳은 이미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동네 하천길이나 공원을 산책하면서 “하! 좋다! 이게 다 우리 정원이다!” 한다. 나는 심통 맞게 “이게 무슨 우리 거야. 진짜 우리 거면 다른 사람은 다 나가라고 할 거야.” 하고 대꾸했었다. 그나마 내 정원 비슷하게라도 느껴지는 때는 폭우나 폭설, 또는 지독한 한파로 아무도 거리에 나오지 않는 때뿐이었다.
이제는 진짜 ‘내 거’라고 부를 수 있는 정원이 생겼다. 그런데 솔직히 내가 이걸 가졌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동네 공원처럼 사람이 통과해 가는 건 아니지만, 드나드는 곤충도 새도 너무 많았다. ‘이 손님들을 손님이라고 부르는 게 과연 맞는 호칭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칠 벗겨진 초록 옥상에 진짜 초록을 모으기 시작한 사람은 나일지언정, 정원의 본체는 저 손님들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핵심은 장소의 소유가 아니라 거길 채우는 구성원들이었나. 애들 웃음소리가 봄을 불러온다는 것을 깨닫고 담장을 허문 거인처럼 나도 정원을 가질 생각을 포기해버렸다. 해충 한 마리, 잡초 한 포기, 새똥 자국 하나 허용하지 않겠다는 내 안의 열성 깔끔쟁이는 장기 휴가를 보내버렸다. 덕분에 우리 정원은 허술해졌고, 나는 그 허술한 틈으로 밀려들어 오는 낯선 존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빈 옥상이 심심했었고, 그다음에는 발아병에 걸렸고, 그다음에는 코로나가 터져 집에 오랜 시간을 머물면서 정원을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를 여기까지 이끈 건 순전히 계속되는 우연들이었다. 여기 내 자의가 조금이라도 끼어들었다면 그건 호기심 정도일 것이다. 내 쓸데없는 호기심은 누군가의 눈에는 한심한 소꿉장난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씨앗은 새싹을, 새싹은 나무를, 나무는 곤충과 새들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나는 그들 속에 꼽사리 껴있는 게 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