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이데아, 김 씨의 금형

ep.3 '딸깍'과 '또옹' 사이의 전쟁

by 김멀똑


딸깍. ...아니, 이건 너무 경박해.


탁. ...이건 너무 둔탁해.


경기도 부천의 금형 공장 회의실. 성인 남녀 넷이 모여 앉아, 플라스틱 크림 용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다. 벌써 4시간째다.


이곳은 지금 대한민국 뷰티 산업의 최전선이자, 가장 기이한 청음회(Listening Session) 현장이다.


“공장장님.”


조이(Joy) 대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샤넬 트위드 재킷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녀는 마치 바이올린의 튜닝이 나간 것을 발견한 지휘자처럼, 용기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소리가 너무... ‘날티’ 나지 않나요?”


공장장의 눈썹이 꿈틀 했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그는, 이 당돌한 MZ 디자이너의 언어를 해독하느라 혈압이 오르고 있었다.


“날티? 아니, 꽉 잠기면 된 거 아니야? 안 새면 그만이지 소리가 뭔 상관이야!”

“상관있죠! 이건 30만 원짜리 럭셔리 라인이라고요! 고객이 뚜껑을 닫을 때 ‘딸깍(Light)’ 하고 닫히면, 내 30만 원이 가볍게 날아가는 기분이라고요. 우리는 좀 더... ‘도-옹(Deep & Heavy)’ 하는 느낌을 원해요. 아시겠어요? 묵직한 신뢰의 소리!”


조이가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도-옹’ 하는 소리를 묘사했다. 공장장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도옹? 똥 싸는 소리 하고 있네. 플라스틱이랑 플라스틱이 부딪치는데 어떻게 쇠 종소리가 나? 이게 무슨 에밀레종이야?”


“아니, 벤츠 문 닫을 때 나는 소리 있잖아요! ‘철커덕’ 말고 ‘쿱-’ 하고 진공 상태로 빨려 들어가는 그 소리! 그걸 구현해 달라고요!”


플라스틱 쪼가리에서 벤츠의 감성을 찾다니. 나는 끼어들 타이밍을 재며 마른세수를 했다. 이건 공학(Engineering)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신학(Theology) 논쟁이다. 보이지 않는 믿음(감성)을 증명하라는 디자이너와, 눈에 보이는 물성(플라스틱)만 믿는 공장장의 종교 전쟁.


그때, 조 상무가 핸드백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소음 측정기였다. 그녀는 역시 샤머니즘이 아니라 데이터의 신봉자였다. (물론 그 데이터의 출처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자자, 감정적으로 싸우지 말고. Data로 합시다.”


그녀가 뚜껑을 닫으며 측정기를 들이댔다. [65 dB / 2,000 Hz]


“봐요. 주파수가 너무 하이 톤(High-tone)이에요. 우리 타깃 고객인 4050 여성들은 고주파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15% 증가한다는 논문 못 봤어요? 이 소리는... 고객의 뇌세포를 공격하는 소리예요.”


공장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뚜껑 닫는 소리가 뇌세포를 공격한다니. 그는 나를 쳐다봤다. '저 여자 미친 거 아니냐?'는 눈빛이었다.


나는 21년 차 통역사로서 등판했다.


“저.. 공장장님”


나는 공장장에게 담배 한 개비를 찔러주며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아니, 강 팀장. 너네 회사 단체로 약 먹었냐? 뚜껑에서 벤츠 소리가 나게 하라니, 내가 마법사야?”

“형님, 진정하세요. 쟤네가 원하는 건 소리가 아니에요.”

“그럼 뭔데?” “손맛(Haptic)이죠.”


나는 연필을 깎듯 나직하게 설명했다.


“소리는 핑계고, 닫을 때 너무 헐렁하게 닫히는 게 싫다는 겁니다. 마지막에 꽉 물리는 저항감(Friction). 그걸 원해서 저러는 거예요. 형님, 금형 수정할 필요 없어요.”

“그럼?”

“나사산(Screw) 쪽에 댐핑 그리스(Damping Grease). 그 끈적한 거 있잖아요. 그거 좀 듬뿍 바르시죠.”


공장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야, 그거 바르면 단가 올라가. 그리고 먼지 붙어.”

“단가는 제가 결재 올릴게요. 먼지는... 뭐, 고객이 닦아 쓰겠죠. 일단 저 벤츠병 걸린 사람들 귀부터 만족시켜야 납품할 거 아닙니까.”


공장장은 피식 웃으며 담배연기를 뿜었다.


“너 진짜 사기꾼 다 됐다? 그래, 구리스칠 한번 해보자.”


30분 후. 공장장이 댐핑 그리스를 잔뜩 바른 샘플을 들고 왔다. 끈적한 점도 때문에 뚜껑이 돌아갈 때 묵직한 저항감이 생겼다.


조 상무와 조이 대리가 긴장된 표정으로 뚜껑을 잡았다. 돌린다. 스으으윽... (저항감) 그리고 마지막 순간.


두-둠.


경박한 ‘딸깍’ 소리가 사라졌다. 그리스의 점성이 충격을 흡수하며, 마치 고급 세단의 문이 닫히듯 낮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사실은 그냥 기름칠 떡칠한 소리였지만.


“Oh my god...”


조이 대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거예요! 들리세요? 이 깊은 울림(Resonance)! 마치 심해에서 올라오는 듯한 중후함!”


조 상무도 소음 측정기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파수 500Hz 대역. 완벽해. 이 정도면 고객의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힐링 사운드’ 야.”


공장장과 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봤지? 이게 예술이 아니라 기름칠이라는 거.'


우리는 플라스틱 뚜껑 하나에 4시간을 태웠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이제 고객들은 30만 원짜리 크림을 사서, 뚜껑을 닫을 때마다 벤츠를 타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 안에 발린 50원짜리 공업용 그리스 덕분에.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 나는 운전대를 잡고 무심코 창문을 내렸다 올렸다 했다. 위이잉- 턱. 창문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거슬렸다.


‘이거 소리가 왜 이래? 엣지가 없네.’


빌어먹을. 직업병이다. 세상 모든 소리를 의심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남들이 보면 "미친 거 아니야?"라고 할 만큼 사소한 디테일(뚜껑 소리, 폰트 자간 등)에 집착해 본 적이 있나요? 그 집착은 과연 '품질'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취향'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디자이너의 언어(느낌, 엣지, 시크)와 엔지니어의 언어(수치, 금형, 단가)는 다릅니다. 당신의 조직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부서 간에 소통이 막힐 때, 당신은 어떤 번역기(해결책)를 사용합니까?


결국 고급스러운 소리의 정체는 '기름칠'이었습니다. 당신이 소비하는, 혹은 만들고 있는 제품의 '프리미엄'이라는 이미지 뒤에 숨겨진, 지극히 현실적이고 시시한 비밀을 알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