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와인으로 바꾸는 연금술

ep. 4 악취는 진정성의 다른 이름이다

by 김멀똑


킁킁.


회의실 문을 열자마자 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래된 곰팡이 냄새 같기도 하고, 비 오는 날 젖은 강아지 냄새 같기도 한, 불쾌하고 쿰쿰한 향.


“팀장님, 이게 무슨 냄새예요? 어디 하수구 터졌나?”


박 대리가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테이블 중앙에 놓인 작은 갈색 병을 가리켰다.


“아니. 저기서 나는 거야. 우리 하반기 주력 상품. ‘더마 리페어(Derma Repair) 시카 앰플’ 최종 샘플.”


연구소에서 보낸 샘플은 효능 면에서는 완벽했다. 피부 진정 효과 200%, 붉은 기 완화 임상 완료. 문제는 ‘원물취(Raw material odor)’였다.


핵심 성분인 고농축 발효 추출물이, 하필이면 ‘숙성된 청국장’과 ‘발 냄새’의 중간쯤 되는 기괴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조 상무가 들어왔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손 소독제를 평소보다 두 배로 짜서 발랐다.


“K. 이게 무슨 냄새죠? 내 코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회의실 환기 시스템이 고장 난 건가?”

“상무님, 그 샘플... 원료 고유의 향입니다. 향료를 넣어서 덮어보려고 했는데, 그러면 효능이 30% 떨어진다고 연구소에서 결사반대합니다.”


조 상무가 앰플 뚜껑을 열어 살짝 냄새를 맡았다. 0.1초 만에 미간이 구겨졌다.


“Oh, Sh...”


그녀는 황급히 뚜껑을 닫았다.


“K. 미쳤어요? 이걸 얼굴에 바르라고? 남편이 옆에 오려다 도망가겠네. 이걸 누가 사요? 12만 원 주고 내 얼굴에서 메주 냄새나길 원하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


맞는 말이다. 팩트다. 보통의 클리셰라면 여기서 "어떻게든 향을 덮어라"는 지시가 내려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화학 향료를 들이부어 ‘라벤더 향’으로 위장하겠지.


하지만 박 대리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그녀의 눈빛이 레이저 거리 측정기처럼 번뜩였다.


“잠시만요, 상무님. 제가 지금 ‘화해(화장품 성분 분석 앱)’랑 뷰티 커뮤니티 데이터를 보고 있는데요...”


그녀가 맥북 화면을 띄웠다.


[소비자 리뷰 키워드 분석]

“향기가 너무 좋아서 의심스러워요. 인공 향료 넣은 거 아님?”

“무향이라고 했는데 알코올 냄새남. 찐 득템은 아닌 듯.”

“진짜 효과 좋은 약국 화장품은 원래 냄새 구리지 않음?”


박 대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상무님. 요즘 소비자들은 똑똑해요. 아니, 똑똑한 척하고 싶어 해요. 좋은 향기는 ‘화학성분(인공)’이라고 의심하고, 오히려 나쁜 냄새를 ‘천연(Natural)’이나 ‘고기능성(Medical)’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적. 조 상무가 탄산수 병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Logic(논리)과 Smell(악취) 사이의 줄타기.


“...그러니까, 이 구린내를 숨기지 말자?”

“숨기는 게 아니라, 마케팅 포인트(Selling Point)로 삼는 거죠.”


박 대리가 키보드를 두드려 카피를 띄웠다.


<인공 향료 0%. 자연이 만든 날것의 향>

<코를 찌르는 이 냄새는, 당신의 피부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향기를 포기하고, 효능을 선택했습니다.>


와우.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것은 연금술이다. ‘발 냄새’를 ‘효능의 증거’로 둔갑시키는 언어의 마술. 단점을 숨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뻔뻔하게 드러내어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가장 비싼 가치로 포장하는 전략.


조 상무가 입꼬리를 올렸다.


“섹시해... 아주 도발적이야.”


그녀는 다시 앰플 뚜껑을 열었다. 아까와 똑같은 악취가 났지만, 이번엔 그녀의 표정이 달랐다. 마치 최고급 트러플(송로버섯) 향을 맡는 미식가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맡아보니까 좀... ‘오가닉(Organic)’한 느낌이 있네. 흙내음 같기도 하고.”

(아까는 메주 냄새라면서요.)


“K. 이걸로 가요. 제품명은... ‘더마 로우(Raw) 앰플’. 날것 그대로라는 걸 강조해. 그리고 상세페이지 최상단에 경고문 박아줘요. ‘냄새에 예민한 분은 구매하지 마세요. 오직 피부만 생각했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 이 경고문은 사실상 “이거 진짜 찐이니까 빨리 사세요”라는 호객행위나 다름없다.




한 달 뒤. ‘더마 로우 앰플’은 대박이 났다. SNS에는 인플루언서들이 코를 쥐고 앰플을 바르는 챌린지 영상이 도배됐다.


“와, 냄새 진짜 실화냐? ㅋㅋㅋ 근데 바르고 나면 피부 광남. 이게 찐이지.”

“남친이 발 냄새 난대요 ㅠㅠ 근데 피부 좋아져서 헤어지고 그냥 이거 바름.”


소비자들은 12만 원을 내고 기꺼이 악취를 얼굴에 바른다. 그리고 그 냄새를 맡으며 ‘나는 화학물질에 찌든 가짜를 거부하고, 불편하지만 확실한 진짜를 선택했다’는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킨다.


퇴근 후, 집 서재. 나는 커터 칼로 연필을 깎는다. 사각, 사각. 향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이 냄새는 진짜다. 나무가 잘려 나가며 내는 고통과 향기의 혼합물. 하지만 회사에서 우리가 파는 냄새는 무엇인가. 그것은 악취를 진정성으로 둔갑시킨, 자본주의의 가장 고약하고도 달콤한 향기다.


문득, 박 대리의 말이 떠오른다.


"팀장님, 사실 냄새가 좀 더 구려도 될 뻔했어요. 리뷰 보니까 냄새가 약해서 아쉽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무서운 세상이다. 사람들은 이제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진실처럼 느껴지는 ‘강렬한 자극’을 원할 뿐.


잘 깎인 연필 끝을 본다. 오늘 우리가 판 것은 화장품이 아니다. 우리는 대중의 ‘의심’을 역이용해, ‘맹신’을 팔았다.


돈 냄새 한번 지독하게 구린 밤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치명적인 단점(악취)이 '진정성'이라는 프레임(Frame)을 만나니 최고의 장점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가진 단점이나 콤플렉스 중, 관점을 바꾸면(Re-framing) 오히려 당신만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소비자들은 효능 때문이 아니라, "냄새가 나니까 효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제품을 삽니다. 당신은 비즈니스나 관계에서 상대방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을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팩트만 나열하고 있습니까?


돈이 되는 일에는 가끔 악취(비도덕적이거나 찜찜한 구석)가 날 때가 있습니다. 강팀장은 그 냄새를 맡으며 자괴감을 느낍니다. 당신의 양심은 자본주의의 냄새 앞에서 얼마나 무뎌져(혹은 날카로워)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