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 나는 지금 청소를 하고 싶다.
바닥에 지근지근 밟히는 먼지들을 시끄러운 기계 속으로 당장 잡아넣고 싶다. 기분이 엿같을 때는 이상하게 청소를 하고 싶다.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머리카락이라든지, 어느새 무리를 만든 먼지덩어리라든지, 밤하늘에서 뚝 떨어진 손톱이라든지.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든 간에 모조리 없애고 싶다.
사실 없애고 싶은 건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다른 것들이다. 오래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것들, 요즘 새로이 나를 괴롭히는 것들. 모두 다 그냥 다 사라져 버리면 좋을 것들이다. 언제든 증발하고 싶은 나를 포함해서.
인사 발령이 있었다. 원하던 자리가 아닌 생뚱맞은 자리로. 저번 주 금요일 낮에 불려 가 관리자의 압박 속에 선택한 자리였다. 선택이 맞나 싶다. 왜 하필 나였을까. 난 왜 거부의사를 밝히지 못했을까. 억울하다. 그런데 비겁했다. 순간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인가 보다. 싫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치킨이 먹고 싶다 했다. 치킨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 서글프다나. 토요일 저녁에 한 시간 반 거리나 떨어져 있는 나에게 전화해서 치킨을 먹고 싶다 한다. 어쩌라는 거지. 배달 어플을 켜서 포장 주문을 하고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제발 앞으로는 이렇게 살지 말자고 괜한 화풀이를 하며 상처를 날린다. 싫다.
집에 도착하면 현관문에 걸쇠를 꼭 건다. 내 요새는 빗장이 굳게 맞물려서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언제부턴지 복도바닥이 발을 붙들고 놓지 않는 소리가 난다. 쩌억쩌억 소리가 가까워지고, 부엌 창문으로 복도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보며 숨을 죽이고 소리에 집중한다. 혹시나 우리 집으로 오는 걸까. 다행이다. 옆집 사람이다. 싫다.
골반이 아프다. 천장을 보고 한참을 누워 있자니 허리가 뻐근해서 왼쪽으로 돌아누워 본다. 몇 달 전 자동차 사고로 다친 골반이 찌릿하고 아려온다. 도대체 언제까지 아플 건지. 몇 십 번이나 치료를 받았는데 왜 나아지지 않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내 몸이 돌팔이일까, 눈썹이 절반가량 흩어진 의사가 돌팔이일까. 싫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붓으로 까맣고 큰 점을 찍는다. 모든 시작은 점에서부터다. 점을 찍고 가만히 기다리면 붓을 종이에서 떼더라도 점은 점점 퍼져 나간다. 좋든 싫든 그렇다. 화선지에 찍힌 점처럼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크기가 커지고 옆으로 퍼진다. 34년 동안 커진 점은 가운데가 시커멓고, 테두리는 연하다. 어느 순간 연한 테두리는 시커메질 것이다. 싫다.
왜 내 화선지는 수묵화용일까? 수채화용이었다면 다채로운 색으로 내 인생도 채워졌을 텐데. 동양인 패치가 너무 잘 되었다. 인생이 흑백영화처럼 명과 암으로만 나뉜다. 명암으로 살아온 30년 인생에 빨간 리본을 달아주고 싶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고된 시작이어도 마지막까지 힘껏 살 필요는 없다고. 조금은 좋다.
00:58. 바닥에 닿은 발바닥으로 평일의 고된 점들이 모인다. 주말엔 일찍 일어나 청소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