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년필 Jan 20. 2023

4인용 소파를 살 걸 그랬어

19년 10월 16일 작.


 익숙한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다. TV소리가 들리고 눈앞에 나이키 운동화가 보인다. ‘집에 있구나.’하며 신발을 벗고 코너를 돌면 소파에 누워있는 신랑이 보인다. “ 누워있나 소리하며 가방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고 좁은 소파  누울 자리를 눈으로 스캔한다. 그리고 잽싸게 신랑의  뒤로 파고든다.  

 신랑을 만나기 전까지 스스로에 대해 에너지 넘치고 밖으로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주말이면 늘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났고, 약속이 없으면 카페에라도 가서 책을 읽었다. 혼자 국내여행도 다니고 아무튼 집에 잘 붙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신랑을 만나고 나서 내가 게으름뱅이에 ‘집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말 이틀 중 하루는 12시간 이상씩 죽은 듯이 잠자고 만나자고 하면 약속시간 전까지 방바닥에서 꾸물거리다가 나간다.  (아마도 신랑을 만나기 전에는 외로워서 밖으로 돌았던 것 같다. 그리고 집을 좋아하지만 신랑 없이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한 후에도 변함없이 게으르게 살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신랑과 집에 느긋하게 늘어져있는 시간이다. 특히 둘이 소파에 앉아 맥주나 막걸리를 마시며, 적당한 안주를 먹으며 멍하니 TV를 바라보는 때다. TV 프로그램을 보며 신랑은 그때그때 알맞은 개그를 선보이고, 나는 꺄르르 웃는다. 가끔씩은 신랑을 따라하기도 하고 함께 알 수 없는 춤도 춘다. 술과 안주를 전부 먹어치운 후 신랑이 소파에 드러누우면 나는 그 옆으로 가서 찰싹 붙고, 신랑은 귀찮다며 나를 소파 밑으로 슬며시 민다.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신랑의 팔과 몸통을 잡고 버티지만 결국 스르륵 바닥으로 떨어진다(쿵, 떨어지면 화를 내기 때문에 최대한 살살 바닥에 내려놓는다). 바닥에 누운 나를 보며 신랑은 ‘여긴 내 자리야’하고 승자의 미소를 짓는다. 나는 다시 신랑 위로 몸을 던진다.  

 가끔은 생각한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하는 것이 아닌가. 부지런한 개미가 되어 1분 1초마다 할 일을 정하고 실천해가며 앞으로 나아가야 성공한 삶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 8시 전에 집에서 나와 9시부터 6시까지 고되게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7시가 넘어간다. 집 밖에서만 12시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과 멍하니 보내는 시간을 갖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다.

 우리 집 소파는 3인용이다. 신혼이니까 큰 소파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작은 것으로 샀다. 둘이 눕기에는 매우 비좁다. 소파에서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생각한다. 다음에 이사 갈 집에는 4인용 소파를 놓아야지

작가의 이전글 소비의 기준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