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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ice Five Dec 02. 2022

고가의 커피 수업을 들었지만 아직은 취미 생활자인 이유

아직 한 끗을 찾지 못했을 뿐

에스프레소 한잔을 내리기 위한 원두를 가는 정도와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기 위한 원두 가는 정도 차를 알게 되기까지 나는 도대체 얼마의 시간을 커피에 시간을 투자한 것일까?


'올핸 춥지 않네?'라는 말을 날씨가 들었는지 며칠 사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 추위가 몰려오니 에스프레소 한잔에 생크림을 얹어 호로록 마시고 싶어 진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딱 한 모금을 호로록 마실 수 있는 만큼만의 양.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립으로 진하게 내린 커피 한잔에 스킴 밀크를 더해 따뜻한 카페라테가 딱 좋다고 느껴진 걸 보면 커피 취향도 확실히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럼에도 '얼죽아아'들의 한결같음이란 ㅎㅎ


어떤 것에 관심이 생기고, 그 관심이 좀 더 알고 싶다는 욕망에 관련 산업이나 기술, 원재료를 공부하게 되고, 더 나아가 직접 만드는 기술을 습득하고 싶다고 느껴지면서 덕질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그 덕질의 완성은 아마 원래의 직업에서 취미와 관심사로 시작된 관련 산업으로의 직업 전환이지 않을까.


처음 에스프레소 한잔을 경험했던 스무 살 무렵이 생각난다.

작은 잔에 칠흑 같이 까맣지만 그 위에 놓인 크레마가 얹어진 한잔을 마시면서 목 넘기기 힘들 정도로 쓰디쓴 그 한잔이 그 당시 참 멋있는 커피 맛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마시던 미제 ‘초이스’ 커피의 그 맛과 달라 내가 경험한 이 한잔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커피맛이 좋다는, 우리나라에 3대밖에 없다는 프로밧으로 로스팅했다는 원두가 있다는 커피 전문점에, 이탈리아의 유명 카페가 서울에 오픈했다고 달려가 그 한잔을 마시며 멋진 커피 경험을 했었다. '맛'보단 '겉멋'에 시작했을지 모를 커피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 이어져 몇 년 전에는 진지하게 카페를 차려볼까, 아니면 커피 비즈니스의 한켠에 투신해볼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이상스레 나의 도전은 커피에서는 취미 그 이상을 가지 못하고 있다.

그저 즐거움의 한편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맘 반절, 그리고 이 일이 과연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일까에 대한 두려움 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커피를 마시고 있고,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도 그 도시나 동네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카페에 방문하여 바리스타와 이야기를 나누고, 원두를 구매해와 나의 일상 속에서 경험하기를 반복한다. 특히 핸드드립을 배우고 난 이후론, 핸드드립 키트는 항상 나의 일상과 함께한다.

핸드드립용 케틀부터 고성능 수동 그라인더, 드리퍼를 챙겨 굳이 아침에 일어나서 손수 내린 커피 한잔에 잠시 명상 시간을 갖는데, 이런 리추얼들이 내 집이 아니어도 낯설지 않게 하는 내 공간의 풍경을 만들어주니까.


지난주에는 우리나라 전시 중에서도 손꼽히게 흥행이 잘된다는 카페쇼에 다녀왔다.

예전에 비해 커피 아이템 그 자체에 집중되어 있기 보단 효율적 운영에 필요한 관련 부자재나 시스템, B2B 냉동 베이커리 등 전반적인 카페 비즈니스와 관련된 제품과 브랜드, 서비스의 참여가 더 많아 보였다.

커피나 베이커리 산업의 한몫을 담당하고 싶은, 관련 전공 학생들과, 현업 종사자, 그리고 이 아이템으로 자영업을 해보려 탐방 온 중장년층과 나처럼 커피가 좋아 전시까지 오게 되는 일반인들까지…

대한민국 사람들은 정말 커피에 진심이다.


"우리 카페나 할까?"

홍대 카페 'B-hind'비하인드' 대표들이 만든 카페 비즈니스와 관련된 책으로 2005년, 우리 같은 직장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봤을 ‘재미있게 일하면서 돈도 벌고 싶은데…’라는 친구끼리 맘이 통해 시작한 동업 카페.

홍대 비하인드 골목이라 칭할 정도로 개인 카페로는 꽤 성공했던 그들처럼 시작한 커피매니아가 차린 작은 동네 카페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현재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커피 맛 좋은 곳이라고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커피 한잔의 퀄리티가 그 어느 동네 카페에 가서도 일정 수준 이상인, 치열하게 커피 비즈니스가 잘 이뤄지고 있는 곳이다.

이렇게 성장하고 활발한 이 분야를 일찍이 알아챘음에도 발 담그지 못한 채 관찰자로 지켜보는 게 때론 아쉽다.


내가 너무나 애정하고 열망하고 스무 해 넘게 커피를 마시며 덕질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다해 커피에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나는 중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일이 발생하면 이전 글에서 다룬 ‘질문 전략의 질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커피라는 아이템을 나의 직업으로 삼을까 말까 고민하던 무렵에도 역시 당연했다.

다음은 질문 전략을 활용한 나의 정리 내용이다. 정답은 아니지만 그 당시 마음 가는 대로 나의 미래를 결정하고 싶지 않아 꽤 오랫동안 하기의 질문들을 생각하고 또 되뇌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커피를 누구보다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 마신 시간도, 그리고 나의 관능은 누구보다 발달했다고 생각한다. 또 어렸을 적부터 질 좋은 농산물을 많이 먹어왔고 F&B 제품과 브랜드의 광고와 신제품 개발을 해왔기 때문에 커피라는 아이템으로 직업을 갖는 것이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커리어 측면으로 나만의 비즈니스를 할 만한 시기상 적절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유명하다는 커피 선생님을 찾아 커피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커피 생두에 대한 공부, 커피 추출법, 핸드드립, 기구 사용법 등)를 익혔다. 적지 않은 시간과 돈, 열정을 투자했다. 하지만 공부하면서 내가 커피 하면 첫 번째로 떠올리게 되는 카페 및 바리스타와는 맞지 않는 신체적,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한 곳에 오래 머물러(오피스 공간과는 다르다) 손님을 접객하는 것이 성향에 잘 맞지 않는다(물론 성향에 맞아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는 점과 바리스타가 굉장히 육체적인 일이라 결코 젊지 않은 내가 지금 시작하여 얼마나 해 낼 수 있을까 해보지도 않고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카페 창업이 아니라면? 나는 커피와 관련하여 어떤 일을 해 볼 수 있을지 관련 직업들을 찾아봤다. 생두 무역업, 큐그레이더 등… 화이트 컬러로서 도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고 관련된 논문이나 출간된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읽어서 자신감보단 부담감으로 마음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2015년 무렵 우리나라의 커피 비즈니스가 성장하려고 꿈틀거릴 무렵이었다. 특히 스페셜티 커피란 새로운 비즈니스 프레임이 우리같은 사람들에겐 기회로 읽혀졌다. 알 수 없는 미래지만 커피가 좋다는 열정만으로 뛰어든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 역시 언급한 일들을 하려면 해외로 나가거나, 새로운 세상을 내가 만들어야만 하는, 커피 비즈니스의 새로운 파이오니아시기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관심 갖던 직무들은 나처럼 커피를 좋아해서 직업을 바꾸려고 하는 초심자보단 이미 경력이 쌓여야 하는, 내 나이와 직무적 경력이 맞지 않았다. 기존 조직에 내가 들어가기엔 낙타가 그야말로 바늘구멍 들어가는 일보다 어려운 현실이었다. 관련 자격증을 딸까도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왜 그리 고민의 고민으로 시간을 보냈을까 아쉬움이 남지만 그렇다고 지금 해 보고 싶은 것은 또 아닌, 당시 도전했더라면 딱이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이다.

 

‘어떤 것부터 실행해볼까? 어떤 실행이 내게 중요한 걸까, 의미 있는 걸까?’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보기로 했다. 일단 배운 대로 열심히 집에서 근사한 커피 한잔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 같이 수련이라면 수련의 시간을 갖었다.

그리고 새롭게 오픈한 카페나 맛있다고 소문난 로스터리 카페나 유명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들은 놓치지 않고 다녔다. 물론 인스타에 꾸준히 관련 정보와 사진들을 올렸다. 친한 후배가 오픈한 카페 피드를 자주 하다 보니 내가 오픈한 것으로 소문나기도 할 정도로 커피 사랑이 인스타에 가득했다. 그리고 홈카페, 홈 바리스타 콘텐츠에 맞는 장비와 기물들이 집 안에 가득했다. 재밌었지만 허무했다. 뭔가 커피가 쇼퍼홀릭인 나에게 쇼핑할 구실 제공인 것만 같았다. 나는 인플루언서 재질과 재능이 부족하고, 성향은 맞지 않았다.

 

‘실행 결과는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엄마가 '이럴 거면 그냥 카페나 하지?'라며 카페 창업에 관심이 있는 지, 만약 그러하다면 로스터기는 얼마면 살 수 있냐며 몇 번이나 물어보셨다. 커피와 함께 비싼 소비 생활을 하는 게 잉여로워 보였는 지 뭐라도 생산성 있는 걸 해보길 바라셨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기대나 예측과는 달리 몇 년 커피 덕질을 하다 보니 오히려 커피란 내게 개인의 취미 생활, 일상에서의 리추얼 그 이상이 못될 것 같았다. 마케팅이 너무 좋아 마케팅을 전공할 때의 내 모습을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선 찾을 수 없는 한 가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모함


관련 비즈니스에서 찾을 수 있는 직업의 다양성, 신체적 특징과 라이프스타일, 현재의 경제력을 감안한 ROI를 고려하여 굉장히 논리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몇 년 동안 커피 덕질의 시간은 꿈을 꾸고 이루기 위해 필요한 커피에 대한 ‘무모할 정도의 사랑’ 또는 ‘몰입’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나 정도는 누구나 좋아하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정도의 모습이었다.

 

‘이 실행은 다시 시도할 가치가 있을까? 왜 그럴까?’

그렇다고 내가 커피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을 아예 접은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 언젠가 커피를 더 많이 마시게 되어 커피 블러드로 가득 차 흘러내리는 순간을 기대하며 오늘 아침에도 에스프레소 커피 바에서 갈아온 강배전의 원두를 모카포트에 내려 지난주 카페쇼에 출점한 라마르조꼬의 에쏘 잔에 마키아또를 만들어 마셨다.

아직은 내가 갖고 있는, 커피에 대한 한 끗 다른 경쟁력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커피 사랑은 여전하고 갈수록 내 커피 라이프는 깊어지고 풍부해질 테니까.

그리고 나의 '질문 전략'은 계속 업데이트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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