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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을 아는 사슴 Jul 26. 2023

자력구제기

5.동의어 반복

 

이상할 만큼 나의 삶에는 죽음이 가까이 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죽음을 감지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민감하게 발달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죽음과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정말 끊임없이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이런 방면에서 간호사라는 나의 직업이 슬프게 느껴진다.

일을 하면서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나를 귀찮게 하는 환자와 보호자의 요구사항이 아니라, 상사의 눈치가 아니라 두 시간을 남아있는 오버타임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이다. 할머니와 아빠의 죽음, 소중하고 작은 친구들의 죽음, 막연한 나의 죽음만을 염려하며 사는 것도 나는 너무 벅차다.


환자의 임종이 다가오면 나는 그냥 증발해버리고 싶다. 이럴 때면 나는 쉽게 무너지고 직업의식이고 뭐고 그냥 이 죽음과 정말 무관한 사람만이 되고 싶다.

임종을 가까이하고 온 날에는 늘 마취에 걸린 것처럼 깊은 잠에 들었다. 이 세계를 버리고 싶어서 꾸역꾸역 잠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러고는 꿈속에서는 여전히 병원에서의 상황이 반복된다.


내가 처치실로 데려온 환자의 임종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꿈속의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의식을 잃고 병동 바닥에 쿵 하고 쓰러진다. 꿈속이지만 머리가 뱅뱅 돌고, 시야가 흐려지더니 바닥으로 그대로 곤두박질 떨어지는 느낌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쓰러진 나는 어느 침대로 옮겨져 누워있다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거리를 목적도 방향도 없이 걸어 다닌다. 거리를 떠돌다 갑자기 정신이 든 꿈속의 나는 '안돼 깨어나야 돼' 하면서 몸부림과 함께 그 잠에서 벗어난다.

10년도 지난 할아버지와 이모부의 장례식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고된 하루를 보내고 '아 죽고 싶다'라는 친구들의 푸념에도 몇 날 며칠은 가슴을 졸이는 나. 결국 그들의 입에서 '그냥 한 말이야~'라는 너스레를 끝내 듣고서야 그나마 긴장을 푸는 나.

죽음이 어쩌면 좋을 수도 있다는 것, 죽음은 그저 존재 양식의 변화이며 삶보다 나은 죽음, 죽음만큼도 못한 삶이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아직 나는 그런 내가 아니다.


나만 알고 있는, 오히려 약간 미워하기도 하는 누군가의 죽음이라도 죽음이라면 그 앞의 나는 마음 안에서 몇 번이고 죽는다. 죽음이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 손으로 도운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어딘가에 떠다니는 기분이 자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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