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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을 아는 사슴 Jul 26. 2023

자력구제기

7. 쉽게 팽팽해지고 다시 쪼그라드는 마음에 대하여

우연히 오늘 밤에 <캐나다 체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이효리 씨가 입양을 보낸 강아지들을 만나러 캐나다에 다녀오는 여정을 담았다. 그 강아지는 캐나다로 간 지 몇 년이 지나도, 지금은 그 먼 나라에서 전혀 다른 영어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도, 이효리 씨와 공길 언니가 강아지를 그전처럼 부르자, 모두 그전처럼 응답했다.

누가 유기견을 보호하라고 시켰는가. 누가 주 3회 보호소에서 일을 도우라고 시켰는가. 누가 캐나다에 데려오라고 시켰는가. 누가 이미 내 손을 떠난 이들의 안부와 건강을 물으라고 시켰는가. 아무것에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자유의지로부터 뿜어 나오는 그 선함에 대해서 나는 정말 쉽게 쪼그라들었다. 강아지의 안녕을 확인하며 잘 지내줘서 고맙고, 내가 키우지 못해 미안하고, 임시보호하던 기간 동안 잘 해주지 못해 후회되어 순간 흐르는 눈물에는 나도 모르게 같이 울었다. 그들이 겪은 일 중 내가 똑같이 겪어본 일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그냥 났다.

오프리시(반려견이 목줄을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구역)가 많은 캐나다의 공원에서 목줄도 그 아무것도 착용하지 않은 강아지가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달릴 때에도 나도 몰래 눈물이 났다. 그 장면의 모든 존재들은 신의 계시를 받아 잠시 이 지구를 구원하러 온 지구용사들처럼 여겨졌다.

그들의 다정함에 마음이 금방 쪼그라들어 글썽했다가, 그들의 앞에 놓은 일에 비해 나의 사사로운 돈벌이나 감정싸움이 되게 가볍게 느껴져서 내일의 월요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금방 팽팽해졌다.

언젠가 내가 자주 지침 삼는 가수 아이유의 인터뷰와 수상소감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저를 많이 사랑해 주시고, 또 저를 많이 미워해주세요. 그게 다 저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줍니다'라고 했다.

사랑만 받을 때의 나는 어떠한가, 나는 쉽게 강해질 수 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강해지지 않았으면, 아니 강해지지 않아야 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나보다 마음이 더 큰 사람을 앞에 두었을 때, 내가 쉽게 강해지면 나는 그만큼 우스워질 수 있다. 그 큰 사람을 뛰어넘듯 급하게 강해져버리면, 그 사람이 또 급하게 초라해질 수 있다. 그런 마음을 늘 내 마음속에 지니고 살아야 하니 어쩌면 나는 가장 쉬이 약해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미움만 받을 때의 나는 또 어떠한가. 나도 모르는 나를 남이 함부로 재단할 때, 나의 존재가 부정당할 때, 진심이 곡해될 때의 나는 누가 봐도 약하다. 이 약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거나 극복하고 싶다는 그 어떤 생각조차 들 수 없을 만큼 나는 약해진다. 그러다가 미움이 과해서 그 마음을 토해내듯 던져버리고 나면 나는 하늘로 솟는 이무기처럼 가볍기 날지만 그만큼 강해진다. 때로는 미움을 원료 삼아서 더욱 강해지고 싶고 그렇게 끝끝내 강해져왔다.

약해지고 싶지 않을 때에는 강한 이들의 어깨와 언어와 품 속을 이용했다. 내가 나도 너무 하찮은 날에는, '울지 말고 모든 새로움을 설렘으로만 받아들였으면 한다'라는 오래된 친구의 오래전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본다. 언제 전화를 걸어도 호들갑 떨거나 나를 쉽게 가여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나의 일기장을 뒤적여 (두려울 것이 없이 강하던) 지난 나에게 위안도 얻는다.

강해지고 싶을 때에는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크게는 동물과 아기, 그리고 나의 신념을 나에게 다시 다독인다. 나와 말도 통하지 않는 동물들이 이유도 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는 분하기 때문에 강해져야 하고, 사촌 언니의 아기가 점점 자라나며 내가 부르는 이름에 '옹?'하고 배시시 웃을 때 나는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강해져야 한다. 그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나의 신념에 대해서는 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해서이고 그 설명 외에 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

종교도 없으면서 기도는 열심히 해와서 그런가, 크리스마스엔 내 기도가 더 잘 닿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날을 애정한다

10분 남짓 남은 오늘,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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