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삶

밤을 달린다

by EveningDriver

밤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다. 낮 동안 회사 책상 앞에서 보내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 시간 나는 배달기사님이니까.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이상하게도 정신이 더 맑아진다.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 환하게 불 켜진 창문들, 골목마다 다른 냄새. 이 도시에는 내가 모르는 삶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첫 배달은 동네 시장 안에 있는 작은 분식집이었다. 다들 그냥 ‘호떡집’이라 불렀다. 동네에서 몇 번 사 먹은 기억이 있어서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 괜히 웃음이 났다. 익숙한 아주머니가 익숙하지 않은 나를 못 알아보는 것도 이상했고, 그때 내가 배달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스스로 낯설었다. 배달 가방을 열고 포장을 확인하는 순간, 진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는 이태원.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대사관이었다. 정문 앞에 차를 세우고 주소를 확인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한 남자가 문을 열었다. 키가 크고 또렷한 금발에, 또렷한 발음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딱 한 마디였지만, 그 한 마디가 오래 남았다.
내가 무언가를 잘 전달했다는 느낌. 그건 생각보다 따뜻했다.

그 이후로 수많은 배달을 했지만, 첫 배달만큼은 늘 선명하게 떠오른다. 짧고 단순했는데, 묘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 처음이라는 건 늘 그렇다.

도시의 밤은 생각보다 고요하지 않다. 음악을 듣는건 아니지만 계속 픽업하고, 전달하고, 다시 목적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는 내비게이션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린다. 그게 이 시간의 리듬이다.

마지막 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 남은 음식 냄새는 아직 따뜻하고 나는 앞뒤 창문을 모두 내려 환기를 시킨다. 그리고 다시 내일의 나를 준비한다. 9시까지 출근하려면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하루에 두 개의 삶을 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다만, 이유를 설명하긴 좀 어렵다. 아직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이제 이 시간 속에서 마주친 일들을 하나씩 꺼내 써보려 한다.


어쨌든 나는 지금, 달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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