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기름도, 수고도 모두 날아갔다
지금까지 300건이 넘는 배달을 하면서
딱 한 번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보통 가까운 픽업지 두 곳에서 음식을 받아,
또 가까운 배송지 두 곳에 배달하는 걸 ‘멀티’라고 한다.
앱에서 자동으로 추천해주는 시스템인데
잘만 하면 높은 시간당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다.
이런 멀티 배달을 할 때는
순서에 맞게 배달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초집중을 하게 된다.
그런데 딱 한 번 이 순서를 헷갈린 적이 있다.
치킨과 피자를 서로 크로스해서.
잘못 배달한 걸 조금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하필 두 번째 배송을 마친 후
두 번째 배송지 고객이 오배송으로
고객센터에 컴플레인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다행히 그 고객은 잘못 온 것을 인지하고
음식을 그대로 집 앞에 내놓아 두었다.
나는 고객센터의 전화를 받고
첫 번째 배송지에 전화를 했다.
사실 배송이 이미 완료되어
주소 정보가 보이지 않고
‘고객에게 전화하기’ 버튼도 사라졌지만
그 첫 번째 집이 인근에 있는 주점이어서
네이버에 상호로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원래는 피자를 받았어야 했던,
그러나 내가 치킨을 전달해버린 첫 번째 배송지.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드셨어요?”
“네”
당황했지만 겉으론 평정을 유지하려 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오배송했습니다.
피자는 다시 픽업해서 전달 드리겠습니다.
치킨은 회수해야 해서,
남은 건 모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
“다 먹었는데 음식물 쓰레기라도 모아서 드릴까요?”
너무 얄미웠지만, 어쩌겠나.
잘못은 내 쪽이었다.
그제서야 퍼즐이 맞춰졌다.
피자가 아닌 치킨을 전달했을 때
“우리가 시킨 적 없는데...”
들어보니 아마 누가 선물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드셨던 것 같다.
결국 치킨을 받아야 했던 두 번째 고객은
주문을 취소했고,
다음 날 나는 그에 상응하는 배상금을
배민 측에 송금해야 했다.
물론 배달비도 못 받았다.
시간도, 기름도, 수고도 날아갔다.
다행히 그 이후로 배달 사고는 없다.
음식물 쓰레기 얘기를 들었을 땐
진심으로 뒷목이 당길 뻔했지만
지금 와선 그냥,
값비싼 교훈이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고작 두 건이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동안 수없이 해왔던 단순한 순서였다.
그런데도 그날은 왜 그렇게 헷갈렸을까.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인생도 그렇다.
그 순간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난 뒤에야
놓쳐버린 게 얼마나 뚜렷했는지 보이곤 한다.
사실 그날도, 그냥 그런 날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