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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세베리아 Oct 30. 2022

4. 한국 국제학교

중국으로 떠나다.

나는 매주 주말에 억지로 소개팅을 하였다. 그 남자들 앞에서 나는 28년 산 결혼 적령기 한국 여자라는 상품을 팔기 위해 홈쇼핑의 쇼호스트처럼 상품의 매력을 어필하며 고객들의 전화를 기다렸다. 어떤 고객은 가진 것이 많아 건방졌으며 또 다른 고객은 상품을 사기도 전에 주인인 듯 행세하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고객은 30대 중후반의 하와이에서 온 박사님 이이셨다.  그 고객은 나라는 상품이 맘에 들었는지 자신과 함께 하와이에 가서 같이 살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날 밤 나는 이불속으로 들어가 밤새 고민했다. 하와이? 결혼만 하면 나는 하와이에 집이 생긴다. 내가 평생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날 받아주지 않은 한국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알코올 중독 아빠와 또 그와 싸워대는 엄마의 구속에서 독립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유혹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고 다독이기까지 해 봤다. 사랑 없는 결혼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앞의 설렘의 단계만 생략한다 뿐이지 살다 보면 결국 정도 생기고 그럼 대충 살아지지 않을까?


어느  하와이 박사님은 오전에 갑자기 전화를 해서 수업을 땡땡이를 치고 함께 바다를 보러 가지 않겠냐고 졸랐다. 나는 철없는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박사님을 진정시키고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지난밤 이불속 나의 고민을 던져버렸다. 나는 나의 삶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에 곧바로 인터넷 해외 고용사이트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교육 카테고리를 검색란에 한국 국제학교 영어 교사 모집이라는 글을 발견했다. 한국이랑 가까운 위해라는 중국 도시에 있는 국제학교였다. 자격조건은 사범대 졸업생이었으며 영어 중국어 회화 능력자와 복수전공자를 우대한다고 나와 있었다.


대학교 시절 영어뿐 아니라 사회교육 정 2급 교사 자격증을 딴 나로서는 '어? 이거 딱 나인데?'라는 생각에 그날 바로 지원서를 냈고 그로부터 며칠 후 국제학교 행정실장님이라는 사람이 한국외국어대학교 기숙사에서 교장 선생님과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기숙사에서 교장 선생님 내외분이 소파에 앉아계시다가 나를 반겨주셨다.. 이 학교는 크리스천 학교였으며 교장 선생님은 미국 국적의 선교사 이셨기 때문에 교장선생님께서는 내 종교에 관하여 궁금해하셨다


다행히도 나는 기독교였기 때문에 그분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드릴 수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다음 달에 중국에 와서 근무가 가능한지도 물으셨다. 어학원 1년 계약이  달 말까지라  가능하다고 말씀드린 후 나는 면접을 마쳤다.


나는 부모님께 면접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들을 수 있는 말은 뻔했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면 그때 말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결과는 일주일 후 문자로 왔다. 다음 기회에 만남을 기대해본다 라는 문자였다. 나는 서운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어학원에도 방학이 찾아왔다. 일주일간의 방학 동안 재스민과 윈디 그리고 나는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우울한 마음도 달래고 그동안 못해봤던 여름 스포츠를 모두 다 즐겨보리라 작정 하였다.


평창을 시작으로 정선 영월 제천을 돌며 래프팅, 산악 ATV와 패러글라이딩을 했으며 밤에는 그 지역 야시장을 돌며 메밀전병 등 지역 맛집을 탐방하였고 밤이 되면 시골 펜션 주위를 산책하며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재스민과 윈디랑 함께할 때면 나는 항상 세상이 친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남자들은 우리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었고 심지어 옆방 펜션 손님들은 우리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매일 밤 기다리기까지 했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환대에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예쁜 여성이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윈디와 재스민은 내가 봐도 상큼했고 귀여웠다. 혹시 나도 남자들에게 그렇게 보이나? 하고 거울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른다. 거울에 비친 나는 예전과 같았다. 달라진 건 그들과 같이 있을때 짓는 내 표정이었다. 환하고 예쁘게  반짝거리며 웃는 내 얼굴이었다.


비록 스스로 빛을 내진 못하는 행성 같은 존재지 윈디와 재스민이 내게 준 긍정적 에너지를 반사해 나온 빛이 마치 내 빛 인양 세상 사람들의 달라진 대우를 받으니 마냥 행복했었다.


그렇게 반짝였던 우리들만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는 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느주말 나는 불합격의 아픔을 주었던 국제학교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선생님 한분께서 한국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혹시 바로 출국이 가능한지를 어쭤보셨다.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당장 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부모님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했었다. 행정실장님께서는 만약 추가합격 예비 1순위인 선생님께 포기하시면  다음 2순위 선생님께 바로 연락을 드려야 하니 늦어도 다음 주말까지는 연락을 주라고 하셨다.


난 그날 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부모님께 그간의 일을 말씀을 드렸으나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노를 하셨다. 이유는 내 나이가 30살을 1년 앞둔 29살 결혼 적령기 여자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중학생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쭉 기숙사 생활을 한 심화반 소속 엘리트 오빠의 부재 이후 알코올 중독 아빠의 폭력을 엄마로부터 막아준 방패는 나였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붙잡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후진국이라는 중국의 낙후된 인식 때문이었다.  


두 눈이 퉁퉁 불 정도로 밤새 울고 나서 나는 국제학교에 추가합격을 포기한다는 메일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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