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2>
소크라테스는 인문학이 동물 상태의 본능적인 인간을 인격과 교양을 갖춘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학문이라 했고, 키케로는 인문학은 인간 본성에 관한 학문이라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학문으로 출발한 인문학은 문법, 수사학, 변증론, 산술, 기하, 음악, 천문학을 기본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과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학문이 탄생하면서 과학은 진정한 학문으로 취급되는 반면, 인문학은 비실용적 학문으로 여기는 바람에 인문학에 속해 있던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등이 빠져나간다. 수학과 천문학은 과학에, 음악은 예술에 뺏기고, 결국 인문학에는 소위 말하는 ‘문(문학), 사(역사), 철(철학)’만 남았다.
인공지능의 기대와 위협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는 모든 학문을 실용과 비실용의 구분을 떠나 인간 삶의 정신적 풍요로움의 여부에 맞출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 기아를 극복하고 전쟁과 테러가 없는 평화적 지구촌을 만드는 노력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 모든 학문에 인문학적 소양이 반드시 필요한 까닭도 마찬가지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적이고 혁신적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정신이 풍요롭게 되면 자연히 일상생활도 풍요로워질 것이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 파악과 함께 우리의 사고와 행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성찰을 선사하는 인문학은, 소비와 배설에 의한 향락만을 추구하지 않고 풍성하고 고귀한 삶의 행복을 제공한다.
오늘날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모호한 취업분야와 낮은 취업률로 인해,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등에 비해 비전문적으로 보이는 지식 때문에 천대한다. 굳이 노벨상 같은 거창한 외형적 판단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학은 기초학문으로써의 인문학을 중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전문적이고 직업적 능력은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되었을 때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며, 다양한 분야 간 원활한 소통과 융합이 이루어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능력 함양은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 없이는 쉽게 이룰 수 없다.
아직까지 문과와 이과가 벽을 쌓듯 나뉘어 있다면, 문과생들에게는 교양 수준의 자연과학과 수학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컴퓨터 활용 능력을, 이과생들에게는 역사인식과 사회 인식을 바탕으로 소통과 비판적 사고 및 글쓰기 능력을 함양시켜야 한다.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어떻게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사고파는 일이 아니다. 무한 경쟁에 내몰려 승자독식 구조의 성취는 극단적 불평등으로 인해 머지않아 한 사회 혹은 인류 전체를 파멸로 내몰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만이 작동하는 사회는 서열화를 굳게 하고 대물림되어 각박함만이 남아 인간관계를 해체시킨다.
오로지 성적에 매달려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오르기만 하려는 공부는 지적 즐거움은 물론 지적 호기심과 성찰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정신을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가로막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겉으로 보기만 해서는 제대로 된 진실들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수많은 진실들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한 사고와 실천 방안은 외형만으로는 절대 구분 혹은 파악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유사 이래 남겨진 수많은 인문학 고전은 바로 그러한 숨겨진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이며 깊은 사유의 결과물인 까닭에, 우리가 꼭 체험하면서 새로운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도구로 삼아야 할 인류의 유산이다.
인문학은 또한 진실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 및 사건을 인간의 본성과 연결한다. 인문학을 읽고 배우면 어떤 특별한 목적을 성취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맹목적인 삶이 아닌 모든 사고와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다양하고 풍성한 가치로 가득 찬 삶을 지향하게 하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지를 잃지 않게 하고 때로는 어려움을 버틸 수 있게 한다. 인문학을 가까이하는 인생은 꿈과 목표를 향해 주체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는 데에 주력하면서 성공과 실패 여부도 상관하지 않고 달려갈 수 있게 한다. 남에게 보여주는 식의 행복 실현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말이다. 정말 그럴까?
오늘의 현실은 인문학을 매우 냉정하게 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은 '상품'이 되도록 강요받는다. 과정보다는 분명한 결과를 요구한다. 결과물이 좋지 못하면 인문학은 아무 쓸모가 없고 즉시 버려질 뿐이다. 속도와 효율 면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인문학 역시 '포장'을 하지 않으면 상품성이 떨어져 팔리지 않는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결과는 대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인문학 역시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 현대 사회는 그런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잘 '팔리는' 인문학은 '거짓' 인문학이다. 정신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면서 진통제를 던져주는 꼴이다. 일시적인 효과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런 싸구려 인문학에 열광하기도 한다. 자기 계발 장사꾼들은 그런 현상을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자기 계발 사업은 영원할 것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절망과 허무에 빠질 때가 많다. 언제쯤이나 세상을 의연하게, 혹은 대범하게 대할 수 있을까. 어쨌든, 나는 거짓의 외피를 두른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