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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승철 Dec 04. 2022

<서평> 벗

- 북한 소설 - 


<벗> - 백남룡(살림터)


함경도 함흥시 출생에 김일성 대학을 나온 북한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의 작품으로, 북한에서는 1998년에 나왔고(함께 실린 단편소설 '생명'은 1985년에) 이 책은 1992년에 처음 나왔다. 대부분 북한 맞춤법을 따랐지만 우리의 표현을 병기하여 읽기에는 별 불편함이 없다. 이 같은 표현의 '통일'을 위해서라도 남북한의 적극적인 교류는 필요하다. 북한에서도 이혼은 자유롭고 재혼까지 자유롭다는 현실이 새삼스러운 것은 우리가 얼마나 북한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곳도 사람이 사는 세상일 거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이혼은 우리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고 보다 인간적이고 계몽적인 요소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인민재판소에서 이혼을 막아보려는 정진우 판사의 희생적인 노력은 인간애를 소중히 한다는 개념에 관료주의를 비난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인민재판소에서 일하는 정진우 판사는 채순희와 리석춘이 이혼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신중하게 대한다. '북한판 사랑과 전쟁'(우리 TV 드라마 '사랑과 전쟁'과 비교)이라 부를 만한 내용에 정 판사는 자신의 결혼생활도 돌아보면서 이야기는 두 개의 구조로 돌아간다. 결혼생활이란 무엇일까? 사회주의적 세계관에서 바라본 결혼이란? 여러 가지 숙고하게 만드는 내용이 도덕과 윤리에 대한 관념으로 동심원처럼 퍼져나간다. 당의 목적에 맞게 투쟁하고 생활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는 그들의 사고 경직성에 인간애와 계몽적인 요소가 스며든다. 이광수나 심훈의 소설에서 느낀 계몽적인 감정이 인간에 대한 무한 신뢰와 따뜻한 애정을 발휘하려는 이 소설들('벗'과 '생명')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역시 문학은 삶의 동력이고 삶을 치유하는 기능을 하는가 보다.  



<벗>


33살에 채순희는 시 인민재판소를 찾아 정진우 판사와 이혼 문제로 대화를 한다. 도 예술단 성악 배우이며 중음 가수인 그녀는 일곱 살 아들(리호남)이 하나 있고, 10년 전에 결혼하여 지금의 35살 남편은 강안기계공장 선반공으로 일한다. 성격 차이에 생활리듬이 맞지 않다고 하소연하는 채순희는 재판소 오는 걸 수치로 여기는 남편 역시 이혼에는 동의했다고 말한다. 6년 전 이혼 판결을 내린, 당시 전기문화용품공장 판매과장인 채림에게서 정 판사에게 전화가 오는데, 사실은 채순희의 6촌 오빠이며 도 공업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 동명이인이다. 정 판사는 채순희 네 집에 가 보지만 부모들은 없고 아들 호남이만 있어,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다가 목욕도 시키고 몸에 열이 있어 감기약도 먹여 재운다. 리석춘이 찾아와 애만은 자기에게 달라면서 정 판사의 요구에 자신의 결혼 스토리를 이야기한다.   


초산군 철제일용품공장에 이동작업 갔다가 그곳 마찰프레스 운전공이었던 채순희를 만나는 석춘은 그녀에게서 뜨거운 감정을 느끼며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 리석춘에게 선반을 배운 후 선반공으로 일하던 채순희는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에 지원하여 도 예술단 가수가 된다. 채순희가 가수가 되면서 남편과의 사이가 조금씩 벌어진다. 대학도 안 가고 발전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아내의 마음에 자라지만 남편은 현재의 위치에서만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뿐이다. 틈새가 벌어진 마음 사이에는 커다란 구명이 생기고 생활리듬이 맞지 않는 둘은 이혼을 결심한다. 정진우가 사는 아파트의 2층에는 중학교 여교사와 건설 기능공이 함께 사는 데, 둘의 사이가 꽤나 좋다. 


20년 전 가을, 정진우는 법학부 5학년으로 '인류 혼인사에 관한 법률적 고찰'이라는 소논문을 발표하는데, 법학부 동급생이며 '벌침'이라는 별명을 가진 고향 도시 처녀인 윤희의 친구 한은옥을 소개받는다. 그녀는 생물학부 통신생임에도 정진우의 논문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간략한 자신의 의견까지 내놓으며 정진우의 관심을 받는다. 1년 반 후 고향 도시의 인민재판소에 배치된 정진우는 교외에 있는 남새분 연구소로 은옥을 찾아가 교재를 시작한다. 은옥은 자신의 고향인 연수덕에 남새 재배에 매달리고 진우는 은옥의 일을 도와주겠다는 약속까지 하며 은옥과의 결혼에 성공한다. 진우는 남새 재배가 얼마나 힘들고 오랜 세월이 걸리는 것인지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곪을 대로 곪은 순희와 석춘 부부 사이는 서로 증오를 품는 냉정한 사이가 된 지 오래다. 도 공업기술위원회 위원장인 채림이 정 판사를 찾아와 둘의 가정불화 원인은 남편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이혼을 조속히 판결해달라는 요구를 한다. 하지만 정 판사는 신속한 결정보다는 당사자들의 주위를 살피며 신중하게 판결할 것이라는 말을 하며 실행에 옮긴다. 강안기계공장을 찾아간 정판사는 석춘의 옛 기능공 아바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성실한 석춘과 허영심의 순희, 아바이의 평가를 들은 정 판사는 도 공업기술위원회에서 석춘이 창안한 '다축리사 가공기'에 대해 허술히 평가한 사실을 알게 된다.  


기술 축전에서 석춘이 창안한 기계가 3등을 했지만, 도자기 꽃병 하나와 창안증서가 전부였다. 아바이 말을 통해 사회의 부정의를 발견한 정 판사는 도 공업기술위원회 직원들도 만나 기술축전 관련한 내용을 들으며 위원장 독선으로 시상자들에게 부여된 상금을 위원회를 위해 전용한 사실을 밝혀낸다. 채순희는 석춘이 상을 탄 날 석춘에게 상금도 없다는 것에 대해 심한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결국 둘의 불화에는 채림 위원장의 판단도 한몫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정 판사는 순희가 속한 도 예술단의 부단장과도 만나 순희에 대한 평을 듣는다. 부단장은 예술단이 순희의 우월감을 방관시했고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 순희를 비난하면서 조만간 탈퇴시키는 것도 고려 중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정 판사는 가정불화를 너무 야박하게 생각한다고 부단장에게 따진다. 조리 있고 논리 있는 정 판사의 지적에 부단장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순희는 정 판사가 강가 모래를 떠보다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 모래를 퍼담는 광경을 멀리서 목격한다. 양동이에 고은 모래를 담은 배낭을 짊어진 정 판사는 석춘에게 갖다 줄 생각이다. 석춘이 주물사 용으로 고은 모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듣고 난 다음에 한 행동으로, 어떡하면 이혼을 막을 수 있을지 진심을 다해 고민하는 정 판사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2층 여교사라 13살의 채영일이 6년간 계모 밑에서 자라면서 엉망인 채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정 판사에게 말하자, 정 판사는 그 아이가 자신이 6년 전에 이혼 판결한 채림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정 판사에 마음에는 일곱 살 난 리호남이 떠오른다. '어떡하든 이혼은 막아야 한다.' 


채림 위원장에게 창안품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왜 위원장 마음대로 처리했냐고 따지는 정 판사에게, 채림은 당선된 사람들도 명예만을 중요시하기에 상금을 청사 비품과 울타리 공사에 썼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정 판사는 채림의 그런 행동이 온갖 노력 끝에 결과물을 만든 이들을 모욕하고 짓밟았다고 항변한다. 특히, 리석춘의 '다축라사 가공기'는 5년 동안 피나는 노력 끝의 작품이라고 강조하면서, 위원장은 직권 남용에 따른 범죄를 저질렀기에 형사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석춘의 가정불화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정 판사의 주장에 채림은 자신의 행동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느끼며 당황하기 시작한다. 


정 판사가 강에서 캔 모레를 석춘에게 갖다 주자 석춘은 모래가 좋다고 말하는 동시에 큰 고마움을 표시한다. 아내의 주장에는 세월과 시대의 요구에 합당한 면은 없는지 되돌아보라는 정 판사는 자신이 나이 많은 '벗'으로서의 충고를 받아들이라고 석춘에게 조언하면서, 자신만이 공장이나 사회에 헌신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내를 무조건 경멸의 대상으로만 여기지는 않았는지도 반성할 것을 권유한다. 남편을 자랑하고픈 마음을 헤아리고 멋쟁이 기능공으로 거듭나면서 공장대학도 들어가고, 아내의 공연도 가면서 보수성과 결별하라는 충고다. 


정 판사의 노력은 고맙지만 이혼하겠다고 눈물로 호소하는 순희에게 정 판사는 지금까지 자신이 알아본 바로는 기각될 확률이 높다는 말을 한다. 흐느끼는 순희에게 정 판사의 입바른 소리는 계속된다. 지성이나 인격은 결코 직위, 직업, 자격, 외모에서 나오지 않으니 자만심을 거두라는 말과 함께, 당의 목적을 위해 투쟁하고 생활하는 이가 진실한 인격자라는 말도 한다. 자료를 검토하다가 돌아오는 일요일(5월 10일)이 둘의 결혼기념일이라는 사실을 안 정 판사는 벗으로서 놀러 가겠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아내의 연구 사업을 뒷받침하면서 집안 살림도 거들었던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던 정 판사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가지게 된다. 순희와 석춘의 결혼생활을 빗대어 보니 자신의 잘못도 드러나게 된 것이다. 채림 위원장에게는 진정한 반성과 더불어 순희네 부부에게도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사과도 하라고 말하는 정 판사는, 2층 여교사 남편인 연공을 만나 그에게도 아내를 위해 술을 적게 마시라고 권하는 등의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열흘 동안 출장 갔다가 돌아온 아내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정 판사, 지나온 세월까지 돌이켜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아내인 은옥 역시 그런 남편의 진실한 마음을 느끼며 감사의 마음을 품는다. 서로 다독이는 둘은 더욱 따뜻한 감정을 나누며 애정을 돈독히 한다. 정 판사의 말로 인하여 가슴을 난도질당한 순희는 그의 말이 자신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처럼 들렸기에 더욱 공허와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석춘이 정 판사의 배낭을 내밀며 빨아달라고 하면서 정 판사의 마음 씀씀이가 목이 멜 정도로 고마웠지만 모래를 쓸만한 정도는 아니었고, 그렇지만 정 판사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 순희는 또 한 번 정 판사의 노력을 생각한다. 일요일, 순희가 이동공연을 마치고 복귀하는 열차 역에 남편과 아이는 물론 정 판사까지 마중을 나오자 순희는 목이 멘다. 결혼 10주년 된 날이다. 둘만의 시간을 보내도록 하기 위해 정 판사는 호남을 자신이 데려가고, 호남은 화원에서 함께 있는 신랑 신부를 보더니 자기 엄마 아버지도 저렇게 결혼식을 올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결혼식을 하면 저렇게 사이가 좋아지니까!" 



<생명>


리석훈 학장은 소장이 꼬여 대수술을 받은 후 삼 개월 만에 복귀하여 소공원에서 평서 알고 지내던 관리원의 안부 인사를 받는다. 참 성실하고 자신의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관리원이다.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던 중 시병원 복부외과 과장이 살린 덕분에, 아내는 그 과장을 집에 초청하라는 권유를 받고 그를 찾아간 리 학장은 외과 과장이 자신이 아들이 학장 네 대학 입시에 떨어진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생명까지 살린 과장에게 동정심이나 어떤 의리 같은 것이 불타오르는 학장이다. 


외과 과장 아들 이름이 정철욱임을 기억한 학장은 과장을 도우라는 아내의 말까지 듣는다. 대학 교무지도원은 인물심사를 통해 한 명을 추가 합격시켜야 한다는 말을 들은 학장은,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자신의 딸인 송순희의 합격을 원한다는 압력까지 듣자 고민에 빠진다. 일생 단 한 번 양심을 속이자고 생각한 학장, 입학 정원의 맨 마지막 합격생을 불러 인물심사를 하면서 불합격시키려는 마음이다. 강안 고등학교를 졸업한 오경남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지 의외로 여물고 정확한 답변이 나온다. 


오경남의 아버지는 도로경영사업소 도로관리원이란다. 학장이 알고 지내던 소공원의 관리원 바로 그 사람이다! 당황하는 학장의 양심이 요동친다. 소박하고 꾸밈없으면서도 성실하기 그지없는 소공원 관리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 그의 아들을 불법으로 탈락시켜야 한다니. 결국 오경남을 그대로 합격시키고, 압력을 받은 인민위원회 부원장 딸인 송순희는 불합격시킨다. 원래대로 처리한 것이다. 수험생의 합격 여부를 부모 직업과 연관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교무지도원에게 말하는 학장은 입학 여부는 나라의 장래와도 연결된다고 강조한다.  


석훈을 만난 외과 과장은 자신의 아들의 합격을 은근히 기했지만 공정하게 잘 처리했다는 마음의 표시가 드러나는 말을 학장에게 한다.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외과 과장에게 그런 말을 듣자 한결 마음이 놓이는 학장이다. 자식들의 교육 문제는 북이나 남이나 혹은 그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도덕과 윤리가 발휘될 수 있는가, 그것이 문제 될 뿐이다.  중편소설 '벗'과 단편소설 '생명'을 통해 1980년대의 북한의 사상이나 문화 혹은 사고방식을 일면 감상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궁금하다. 북한 소설을 읽으며, 맞춤법은 좀 다르지만 번역이 안 된 소설을 읽으면 다시 한 번 하나 된 한반도를 떠올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완전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할까. 도대체, 사람들은 통일을 바라고나 있는 것일까.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을 접으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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