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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무디 Nov 27. 2022

내 인생 최초의 독행

입학, 입사, 연애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었던 20대가 끝나간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들 중에는 청첩장을 건네는 친구도 있고 SNS에 새로 산 차와 명품 가방을 올리는 친구들도 있다. 다들 인생의 주인공처럼 승승장구하는데 그에 비해 나는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것 같다.

 

마음의 균형을 찾고 나를 리셋하는 쉼표의 시간을 갖고자 가까운 곳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생애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이라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뼛속까지 (MBTI)P 성향이라고 믿었는데 글쎄, 분단위로 일정을 짜더라. 자유로운 영혼은 개뿔.


가장 먼저 한 일은 연화도 행 승선권을 예매하는 일이었다. 연화도는 오래전 재밌게 본 드라마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드라마 속 연화도는 평화로워 보였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여행지라 생각했고  생각보다 간단하게 나의 첫 여행지가 선정됐다.


여행 당일 이른 새벽,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나왔다. 정해진 일정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새벽 탈출이 불가피했다. 동네는 가로등 불빛으로 어색할 만큼 환했으며 지나가는 택시의 엔진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일찍 일어난 새가 된 것 같아 내심 기분 좋았다.


두 시간쯤 달렸나,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어느새 통영 터미널에 도착했다.

연화도 행 배가 출항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고 근처 시장에 있는 시락국밥집으로 향했다. 미리 검색해 둔 맛집이었고 계획대로 착착 흘러가고 있었다.는 나의 오산. 반찬이 내 입맛에 하나도 안 맞았다. 가장 기대했던 일정이었는데 달걀말이에서 냉장고 맛이 났다.  잔반을 남기면 벌금 3000원을 부과한다는 무시무시한 문구 때문에 겨우겨우 다 먹어치우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출항 시간이 임박했다는 안내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배에 올랐다. 나처럼 혼자 온 여행객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가족이니 동호회니 자기네들끼리 행복해 보이는 무리들이 득실거렸다.

맛있을 거라 기대했던 밥집도, 한적하고 고요할 것이라 기대했던 여행 분위기도 내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반면 바다는 고요했다. 섬은 초록빛으로 물 위에 떠 있고 갈매기 떼는 넘실대는 물결 위를 비상하고 있었다. 야속할 정도로 평화로이 흐르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2년간 스스로 물어야 했지만 애써 외면해왔던 질문을 던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난 선택이 후회스러운가?’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갑자기 가슴 한편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더 이상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질 수 없다.’


진로에 대한 번민이 지금까지 나를 힘들게 했으면 됐지, 앞으로도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내 삶을 좌지우지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때의 심정은 능동적이고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난생처음 혼자 하는 여행을 결심했을 때보다 훨씬 단호하고 결연했다.


지금 내 눈앞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니 삶에서 부딪힐 큰 파도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지독했던 근심이 짠내 나는 바람에 씻기는 것 같았다.


“천국에 가면 살아생전에 바다를 본 이야기를 매일 한대.”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 나중에 천국을 가면 살아 있었을 때 바다를 던 이야기를 늘 하게 된다는 장면이 나온다.


‘죽어서 천국에 가면 바다 이야기를 한다고?’

바다에 크게 감흥이 없던 나는 영화를 봤을 당시천국에서 과묵해진 나를 잠시 상상했다.


하지만 이젠 나도 할 이야기가 생겼다.

오늘 내가 본 바다는 지금까지 받아왔던 크고 작은 위로들 중에서 가장 광활한 위로로 남 되었다고.


빛나는 자유를 얻는 그날까지 나에게, 그리고 같은 시간 속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에게도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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