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회사 생활을 해보지는 않아서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이 다를 수 있으나, 하드코어 로컬 약국 근무약사 n년차인 내 기준 일 잘하는 약사는 어떤 능력을 갖췄나 기록해본다.
1. 꼼꼼함
-아주 사소한 실수도 나비효과로 (오바하면) 인생 파국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약국이다.
1) 한 포에 7알짜리 30일 처방 약에 한, 두알 로스가 났다? '에이 한 두알 가지고 뭘~'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그 약이 뇌전증 환자나 기타 신경과 환자같이 한 두번만 빠져도 신체 조절 능력이 저하되고 항상성 유지가 어긋나버리는 약이라면 결과는 내 책임의 범주를 벗어나게된다.
2) 비슷하게 생겼지만 용량이 다른 약이다? 혈압약을 예로 들어보면 엑스포지 10/160을 복용하시는 분이 5/80을 며칠 드시게 되어버리셨다. 그러면 혈압 조절이 되지 않고 혈압상승은 뇌출혈로도 이어질 수가 있다. 실제로 비슷한 사례가 몇 번 있었고 환자는 사망한 사례까지 있었다.
3) 아침, 저녁 복용법을 다르게 적었다? 저녁에 졸음이 올 수 있는 약을, 아침에는 각성효과가 있는 약을 바꿔서 내어버린다면 환자의 생활은 무너진다.
4) 병원에서도 처방 오류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소아 타미플루 용량 (일반적이 유아~초등 저학년 몸무게 기준 60mg) 인데 용량 기입 오류로 3배 많은 용량을 처방하고, 내가 그걸 캐치하지 못하고 그냥 투약한다면? 물론 1차 책임은 병원이겠지만 나에게도 책임은 있다.
그래서 약국에서는 정신 바짝 차려야한다.
2. 출제자의 의도 파악하기
-병원마다 처방은 제각각이다. 같은 질환이라도 의사들마다 내는 약들과 방식은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처방약만 보고 환자가 어떤 질환인지 알 수는 있는데 용법 기입이 잘 안되어있거나 뜬금없는 조합의 처방이 나올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고혈압이 없는 분의 처방전에 NSAID+근이완제+AAP+트라마돌 (이것만 해도 엄청 쎔) 조합에 혈압약이 같이 처방되었다. 환자 확인 결과 혈압은 전혀 없으시다고 하고 처방 일수도 위의 약들과 같다. 이럴 때 매우 고민에 빠진다. 클릭을 잘못하신 걸까 아니면 검색해도 안나오는, 내가 모르는 이 약의 오프라벨(원래 허가받은 질환에 대한 효과가 아닌 사이드 이펙트가 효과를 발휘할 때 쓰는 약)일까? 환자에게 한 번 더 확인하니 본인이 아프면 혈압 오른다고 했더니 주신 거 같다고 하신다.. 그래서 드리긴 했는데 지금도 이게 맞나..
아무튼 이러한 일들이 부지기수이므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약학 지식은 약사가 노력해서 갖춰야한다.
3. 직원들과의 거리감
-너무 친해지면 반드시 누구의 잘못이든 대부분 탈난다. 약국에선 사생활 이야기는 최대한 감추는 게 좋다.
4. 정보 업데이트
-생각보다 약들의 정보는 자주 바뀌는 편이다. 일반약도 그렇고, 유행타는 건강기능식품들도 그렇다. 세상엔 내가 학교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다양한 약들이 존재하며 계속해서 생겨나고, 이슈가 생겨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오프라벨로 쓰이는 약들도 부지기수다. 뇌전증 약으로 허가받은 가바페닌은 신경통 치료제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허가 안나서 보험이 안됨) 다양한 학회약들도 수업을 제대로 듣고 임상 적용 사례도 많이 들어봐야 써먹을 수가 있다.
5. 연상력
-하지만 실생활에 가장 쓸모 있는 능력은 이것이다.
손) 그 노인들 그려진 약 줘! 약) 변비있으세요? 메이퀸큐요? (신구 김영옥님 말하는 거임)
손) (들어오면서) 정관장 냄새 안나는 거!! 약) 여기 정로환 당의정이요~
손) 그 일본 양배추요~ 약) 카베진이요?
손) 그 핑크색 생리통약~ 약) 이지엔식스이브요?
손) (다른 약 받으시고) 나 근데 속쓰려서 내과 위장약 하루에 한번 아침에 먹는데~ 약)하루에 한번 아침 식전에 까서 드셨죠? (대부분 PPI제제임)
손) 갤럭시!! 약)..겔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