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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뎅뎅 Oct 30. 2022

진상 열전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네이트 판 같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설마 주작이겠지..' 싶은 일들이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처음에는 이런 사람을 겪고 나면 눈물 주르륵 흘리며 현타 맞곤 했는데 이제는 네가 불쌍하지 내가 불쌍하냐.. 하고 넘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나만 알기 아까운 진상 일화들을 박제해본다.


1.

 소아과  약국 근무하던 시절, 병원 점심시간이라 한가한 틈에 다른 직원  남자 약사님은 담배 피우러(;)  나가고 나만 남아있었다. 그때 범상치 않은 인상의 여인이 들어온다.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관상 파악이 가능한데 확신의 진상상相 유형이  있다. 일단 10~20   초등학생 시절에 쓰던 스뎅 테두리 안경을 쓰고 마른 얼굴에 헤어스타일도 기교 없이 하나로 바짝 묶거나 단발로 풀고 눈빛부터 예민이라고 쓰여있는 상들이 그중 하나이다.

대충 이런 인상임

들어오는 순간 빨리 조제하고 보내야지.. 싶은 느낌을 받았고, 처방전 받고 후다닥 조제해서 나갔다. 조제 완료까지는 3분도 안되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조제하고 투약대에 나가자마자 "아니 왜 이렇게 안 나와요!ㅡㅡ" ㅇㅈㄹ.. 디렉트로 바로 나왔으나 이렇게 성질내는 걸 보고 나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이제 나왔어요~" 하고 약 설명 열심히 하고 나가기만 하면 됐는데.. 약 받고 "봉투 50원인데 필요하실까요?" 물어보니 발작을 시작함.

 "내가 이 약국을 몇 년을 다녔는데 봉투값을 받는다고? 아가씨 여기서 언제부터 근무했어요?" 하더니, 옆 직원들한테 "이거 50원 받는 거 맞아? 난 낸 적이 없는데? 50원을 내라고?!" 소리 지르기 시작.. 남자 직원이 안 받으면 우리가 벌금 낸다고, 원래 받았다고 했더니 그제야 50원 내고 나갔다.

 저 소동을 벌일 때 들어온 직원들이 황당하여있다가 저 사람 원래 유명한 진상이라고, 저분 엄마도 며칠 전에 와서 이상한 꼬투리 잡아서 난리 치고 갔다고 뭐라 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나는 한 마디도 안 했지만, 혹시 직원들 이야기를 들었나 싶어 뜨끔했는데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아니 저기요! 아까 제 말이 기분 나빴어요?"를 시전..

나: "네..? 무슨 말씀이세요?"

진: "제가 약 안 나오냐고 물어보니까 재수 없게'나왔는데요?ㅡㅡ' 이랬잖아요!! 기분 나빴냐고!!!"

나: "제가 언제 그랬나요? 약 나왔어요 하고 드렸잖아요?

진: (할 말 막힘) ".. 그럼 왜 늦게 나왔는지 설명을 하던가!!"

나: "아니 바로 조제해서 나왔고 늦지 않았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진: "나는 늦는다고 느꼈다고!! 그리고 말투 진짜 기분 나빴거든? 사과 안 해요?! 사과하라고!! %$@^#$"

 나는 아 이 사람은 감정 컨트롤에 문제가 있는 정신 이상자이다는 판단을 하고.. 발악하는 걸 지켜봤는데 기분 나빴던 것이 국장 행세하던 국장 가족 직원이 '제가 직원 관리를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내보내는 것이다. 아무리 상황을 무마하려 했어도 내가 본인의 직원이고 죄송하다고 해야 했나..? 싶었고 순간 나도 모르게 쿠라잉...



2.

 혈압, 당뇨약을 복용하시는 분들은 보통 기저질환에 따라 3-4알 이상의 약을 드시는 분들이 많다. 이 약들을 각각 따로 챙겨서 복용할 수도 있고, 한 번에 포장 조제해서 복용할 수도 있다. 만약 식전/식후가 나눠진 약이면 용법에 맞춰 따로 챙기는데 대부분은 흡수율 차이가 크지 않으면 그냥 한꺼번에 포장해드리는 편이다. 물론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메모를 해놓고 약이 변경된다면 환자에게 의사를 물어보고 상의해서 포장법을 변경해드린다. 그런데 이걸 묻는 과정에서 소통 오류가 생기는 일이 많은 편.

 

 환자 J 씨는 당뇨약을 4알을 드시는 분인데, 이 사람은 당뇨 혈압약에 위장약까지 종류가 많아서 확인을 했어야 했다.

나: "J님, 포장 조제 메모가 잘 안 되어있어서요. 당뇨약이랑 위장약은 한 번에 같이 드셨을까요?"

J: ".. 거기 써진데로 하면 되잖아"

나: (반말 쓰면 말 최대한 짧게 하고 끝내려고 하는 편) "..^^네.. 그럼 한 번에 포장해드릴게요. 여태껏 한 번에 다 같이 식후에 드신 거죠?"

J: "뭐??!!! 당뇨약을 식후에 먹어?? 장난해?? 당뇨약은 식전에 먹는 거야!!! 열받게 하네!!!"

 

뭐지 이 기승전결 없는 급발진은..


나: "이 당뇨약은 식전 식후 둘 다 복용 가능한데요..? "

J: "약국장 어딨어? 장난하냐고! 당뇨약을 내가 식전에!! 먹어왔는데!! 열받게 할래?? 당신이 날 열받게 했잖아!!!"

하고 나감. 엄청난 속도의 급발진에 당황+죄 없이 폭언 들은 상황이었지만.. 이제 눈물은 나지 않는 회복탄력성 높아진 나 자신이여..


3.

 보통 한 마디를 해도 화가 가득 차서 화낼 준비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들이 많다. 나잇대 있는 남자 직원에게는 그러지 않지만 만만한 손녀뻘 나에게는 자유롭게 화를 내심.


나: "이뇨제는 0.5알씩 드시게 나왔는데 쪼개서 통에 담아드릴게요?"

할 1: "그럼 내가 쪼개리? 그걸 물어봐? 너 몇 년도 약사야!!"


ㅠㅠ


나: "약 담을 봉투 필요하실까요~?^^"

할 2: "그럼 이걸 어떻게 가져가라고 그걸 물어보고 앉았나? (소리 지름)"


ㅠㅠ


코로나로 한창 혼돈의 카오스 시절.. 계산하는데 할아버지가 새치기하면서 계산이 꼬였다

할 3: "계산 하나 제대로 못해? 정신 똑바로 차려"


진짜 그렇게 살지 마쇼..



물론 훨씬 더 많지만 생각나면 시리즈로 더 쓰겠다.


 다행히 이제는 이런 진상 만나도 1시간 이상 기분 나쁘지는 않다. 깨달은 건 저런 사람들도 사람 봐가면서 저러기 때문에 만만하게 보이지 않게 항상 야무진 눈빛과 목소리를 장착하고 무례한 사람에게는 나도 기분 나쁜 티를 내면 다음부터는 덜 그런다는 것이다.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에게서 받은 기운으로 물리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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