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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뎅뎅 Oct 27. 2022

내가 거쳐온 약국들

 일반적으로 로컬 약국의 페이 약사는 근속 일이 짧은 편이다. 규모가 큰 약국이 많지 않은 탓에, 체계가 잡혀있거나 제대로 된 복지를 누릴 수 있는 근무 환경이 적어서 대부분 적당히 일하다 그만두고, 쉬고, 다시 적당히 일하다 개국하는 루트를 탄다. 특히 막 졸업한 새내기 약사의 경우 "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일단 날 불러준다면 어디든 일할 테야!" 마인드로, 1년 내내 팜 리쿠르트에 구인 글 올리는 약국에 지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 1년 내내 구인하겠는가? 들어오면 다 빨리 그만두니까 그렇지ㅠ)  2월 말 정도에 약사 국가고시가 끝나고 새내기 약사들이 대거 배출되면, 겨우내 구인난에 시달리던 약국들이 인력 호황을 맞아 페이를 깎고 근무 조건을 비트는 경우가 많고, 그 환경에 투입된 순수한 삐약 약사들은 현실 세계의 쓴 맛을 제대로 맛보게 되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다.



1. 첫 직장, 시골 대형 약국


 졸업 후 내가 처음 근무하게 된 약국은 지방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약국이었다. 비록 시골에 위치했지만, 주변 군 단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몰리는 교통 허브인 시외-군내버스 터미널 바로 앞에 위치한데다 엄청난 규모의 인력, 시골에선 찾기 힘든 서비스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지역뿐 아니라 주변 군, 시의 환자들이 멀리서도 처방전을 가지고 오는 약국이었다. 실제로 사업적 면에서는 배울 점이 많기는 했다. 가본 적 없는 생소한 지역이었지만 배울 점이 많아 보여 첫 약국을 그곳으로 선택했는데, 학교 선배 몇 분이 계시기도 했고 대다수 약사들이 또래라서 좋아 보였던 점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복병은 그곳의 보스였다. 약사-직원의 수직 관계가 뚜렷해 보이는 건 사실 약사 입장에서는 장점이었지만 그곳은 보스 미만 공산국 인민의 관계 비슷했던 것이다. 게시판에 마음대로 근무 시간 내일부터 이렇게 변경! 하면 다들 군말 없이 따라야 했고, 나는 첫 1주일이 지나고 묻는 질문에 대답 못했다고 꿀밤을 맞았다. (다들 귀엽다는 식으로 가스 라이팅 했지만 집에 가서도 아플 정도로 세게 맞음) 본인이 출근하면 모두 멈춰 서서 인사를 해야 했는데 바빠서 온 줄도 모르고 일한 날에 다 같이 불려 가서 수치플 당하고.. 출, 퇴근할 때 구호를 외쳐야 하는데 구호 안 외쳤다고 방송으로 호출당해서 망신당하고.. 난 정말 21세기에 이런 세계가 존재하는 게 신기했을 따름이다.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유리 가슴이던 나는 처음에는 밤마다 울다가, 주변 선배와 동기들에게 이야기를 털어놨더니 여기저기서 빨리 탈출하라는 연락을 받고 3개월 만에 그만두고 서울로 오게 되었다. 알고 보니 악명 높은 곳이었음. 직원들은 너무 좋으셨고 근무 환경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그 모독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의미로.. 난 그곳에서 1년 이상 버티신 분들 존경한다.


2. 두 번째 직장, 대형 소아과 약국


 두 번째 약국은 상경하고 급히 구한 소아과 약국이었다. 처음에는 귀여운 아이들 많이 보겠다^^라는 되지도 않는 순진한 마음을 가졌는데, 나중에는 너덜너덜해져서 애기들이랑 기싸움함..

특히 소아과가 힘든 이유는 엄마들 상대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호자 중에는 젊은 여자 약사에게 매우 무례한 사람이 많다. 바로 옆에 있는 남자 약사에게는  소리도  내고 " 선생님" 하다가, 똑같이 가운 입고 있는 나에게는 "언니, 봉투  줘요" ㅇㅈㄹ.. 말투가 맘에  드니까 사과하라 (유명한 진상이었음),  설명 필요 없으니까 빨리 주기나 해라 (90% 확률로 다시 약국으로 전화 . 냉장 보관해야 하는 항생제 냉장고에  넣고 다시 지어달라 ),   넉넉히좀 줘라 (항생제는 저울로 무게 달아서 용량 고려해서 정확히 조제해야 합니다..) 정말 인류애가 소멸되었다. 게다가  이곳은 약국장님의 가족   사람이 와서 관리를 하는데 (약사 아님) 약사들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되지도 않는 갑질을 시전 하고, 비약사가 이런 행동을 약사들에게 텃세 부리고 개판이어서 여기도 5개월만 일하고 울면서 나왔다.


3. 세 번째 직장, 난이도 극악의 메디컬 센터 약국


 이렇게 인류애 소멸하고 쉬다 들어간 곳은 난이도 극악의 메디컬 센터 밑 약국이었다. 여기는 병원이 5개임에도 ATC기계 없이 옛날 손 조제 방식으로 그 많은 약을 나 혼자 (국장님 부인이신 여자 약사님이 5시간 출근해서 같이 일해 주심) 직원 없이 관리하고, 주문하고, 조제하고, 정리하고 다 했었다. 그러나 사람에 치여서 온 곳이라 몸만 힘들면 그것으로도 감지덕지다 하고 2년을 버텼지만, 결국 몸이 아작 아서 그만두었다. 근무 난이도는 동기들끼리 '누가 누가 최악의 약국을 다니나?'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정도이다. (1위는, 나와 비슷한 업무 강도의 약국을 다니며 중간에 월급까지 깎였지만, 누가 그만두라고 하면 "여기 나 없으면 안 된다고!!ㅠ"를 시전 하며 계속 다닌 어떤 오빠 ㅋㅋ)


 현재 다니는 약국도 물론 100% 만족도 아니고, 처음 들어왔을 땐 직원들 텃세에 엄청 스트레스였지만.. 저 약국들을 거치고 기존쎄가 된 나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곳도 2년 넘게 다니는 중이다.


 복기하면 굳이 겪지 않았어도 될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이 과정들 덕에 단련되고 일에 대한 이해도와 정확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다양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경영 면에서도 배운 것이 많기도 하다. 훗날 나의 약국을 차리게 되겠지만 서러웠던 초보 약사 시절을 되새기며 좋은 약사 이전에, 좋은 인간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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