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현관 문위에 말벌집?"
"괜찮다. 사람한테 안 와. "
"....!"
지금은 초등학생인 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 쯤이었을 때의 일이다. 아이와 둘이 시골에 있는 친정에 갔다.
도착하자마자 말벌의 공격의 있었다. 다행히 아기도 고령자도 아닌, 가장 덜 노약자인 내가 쏘였다.
친정 엄마는, 말벌들에게 현관문 위에 집을 짓지 말라 한들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동안 한 번도 벌에게 공격당한 일이 없어 그냥 두셨다. 그런데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기의 엄마이자, 엄마의 딸인 내가 도착하자마자 말벌에 쏘인 것이다.
딸이 말벌에 쏘이자 친정 엄마는 곧바로 장비를 챙기셨다. 바닷일 할 때 쓰는 갑바(전신 장화)를 입고, 머리와 상반신에는 그물을 뒤집어쓰고 손에는 장대를 들고 벌집으로 향하셨다. 우당탕 우당탕. 벌집이 있던 자리가 휑해졌다. 그 안에 있을지 모를 아기 벌이나 어미 벌, 먹고사느라 바삐 날아다니던 일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이제라도 사람 손 안타는 곳으로 가서 서로 편히 지내자 빌어 줄 수밖에.
말벌에 쏘인 허벅지는 부기가 가라앉자 손바닥만 한 빨간 흔적이 생겼다. 빨갛던 흔적이 연분홍이 되었다가 사라지기까지 3년. 일부러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아닌데, 그동안 그 흔적은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다. 대중목욕탕이나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는 뜻이고,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지 않았다는 뜻이다. 남편은 해외나 지방 출장 중이었고, 간혹 집에 있을 때도 내 허벅지를 볼 일은 없었다는 뜻이다.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내 상처를 누구도 몰라주는 것 같아 서운했다.
남편은 연애기간과 결혼기간 대부분 타지에서 일했다. 우리 부부는 주말 부부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 월간(에 한번 정도 집에서 만나는) 부부 정도 되는데, 평소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연락 없이 지낸다. 어느 날 저녁,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운동하다가 개한테 물렸다."
"...?! 개한테 물렸다고?"
숙소 근처에서 운동을 하다 모르는 사람의 개에 발목을 물렸다는 것이다. 남편의 일터와 숙소는 바닷가 인근 외진 곳이었고, 해가 넘어가는 시간에 갈만한 병원은 없었다.
'개에 물렸을 때'
전화를 끊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남편이 머무르던 곳엔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는 병원이 없었다. 개에 물린 다음날, 조금 큰 옆동네에 있는 대학병원에 가야 했다.
개에 물린 날도, 광견병 예방주사를 두 번 맞으러 갈 때도, 상처가 아물어 가는 동안에도, 나는 그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
돌아보면 내가 말벌에 쏘인 즈음 남편도 개에 물린 것 같다.
내가 말벌에 쏘인 곳이 욱신거릴 때 남편도 개에게 물려 상처 난 곳이 따끔했을 텐데. 내 허벅지에 남은 벌에 쏘인 진분홍 흔적이 그라데이션되듯 옅어지는 동안 나만 아팠던 게 아닐 텐데. 아프다고 좀 봐달라 하고 싶으면서도 제대로 말할 줄 몰랐던 건 아닐까. 쌍방과실을 연속하면서도 '나만' 손해 보는 것 같고, '내 마음만' 아무도 몰라 주는 것 같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난 외로웠던 걸까, 이기적이었던 걸까. 우린 외로웠던 걸까, 서로 이기적이었던 걸까.
남편의 개물림 흉터와 내 허벅지에 벌에 쏘인 흔적이 있는지 없는지 서로 알아주지 않은 채 3년이 흘렀고.
어느 날, 둘만 차에 타게 된 날이 있었다. 서로에 대한 애증과 서운함 같은 뜨거운 감정들이 내 속을 한가득 채우고도 넘칠 만큼 많았지만, 나만의 고집이나 욕심도 있었겠다는 조그마한 찝찝함과 뜨뜻미지근한 미안함 같은 것들도 고물거리고 있던 즈음.
아이 어린이집 픽업 시간까지 짬이 생겨 한숨을 돌리다 둘만 있는 차 안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고, (아주 가끔 귀신같은 촉을 발휘하는) 남편은 샤워코롱 향이 진하게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오다가 멈춘 채 나의 반응(허락?)을 기다리는 게 아닌가. 남편한테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지만, 연애 초반 나를 배려해 주려 신경을 곤두세우던 그의 모습이 스쳤고, 그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서로 잘 알지 못하면서도 자세히 보려 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몰라준다고 느낄 때가 있다. 서로에 대한 무심함으로 벽을 쌓고, 답답해하면서도 해결 방법은 찾지 못하기도 한다. 어느새 높아진 벽 앞에서, 좋은 마음과 결심으로 답답한 벽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생각지 못한 우연으로 넘어갈 때도 있다.
'나'의 이야기라면 '내'가 '쓰는' 것일 수 있지만, '우리'의 이야기라면 '우리'가 '쓰이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주어로 등장하는 서사에서, '나'혼자 아무리 원하는 과정과 결말을 쓰더라도 '우리'의 과정과 결말은 내 마음과 내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우리'라는 서사가 펼쳐진 노트는, 덮어버리든 펼쳐진 채로 두든 '함께' 결론을 쓸 수밖에 없지 않을까. 빨리 어떤 마침표를 찍어버리고, 그 노트를 덮어버리고 싶을 때도 많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가 주어인 이야기 노트를 '함께'에 방점을 찍으며 펼쳐놓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 같다.
여전히 우리 부부는 주말 부부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 월간(에 한번 정도 집에서 만나는) 부부 정도다. 그래도 언제 집에 오는지 기별도 없이 불시검문처럼 집에 와서는 '내 집에 내가 왜 연락하고 와야 돼?' 하던 남편이, 요즘에는 밖에서 집으로 출발할 때 톡을 보내기도 한다.
"이제 출발."
더디지만 서로 알아봐 주려 하는 마음이 조금씩 더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살다 보면 또 개에 물리거나 말벌에 쏘일 수도 있다. 여전히 이기적으로 굴기도 하고 서로를 외롭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의 심장소리가 또다시 설렘으로 느껴질 어느 날을 일부러 기다리지 않더라도 기대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