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by 정안
당신에게 기다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마흔즈음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기다림이란, 오늘보다 나쁘지 않을 내일이 오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을 되풀이 하는 일이다. 그럴때마다 오지 않을(지도 모를) 것을 기다리는 <위대한 게츠비>의 헛될지라도 희망을 등대삼아 살아가는 모습에서 위대함을 읽는다. 희망을 품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 다행스러운건. 오늘보다 나쁘지 않을 내일이 오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진 문 닫고 돌아서 버린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열어둔 문 사이로 미풍이 불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일상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삶의 활력이 되는 기다림들이 있다는 걸 느낄 때도 많다.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것,

하루 일과를 끝내고 뻗을 시간을 기다리는 것,

아이가 선물을 받고 즐거워할 모습을 기다리는 것,

읽고 싶은 글을 기다리는 것,

흘리고 따뜻한 물에 씻을 시간을 기다리는 것,

최선을 다한 일에 대한 결과를 기다리는 것,

어떤 것도 수용하겠다 하는 마음의 기다림.

나쁘지만은 않은 기다림.

아니, 설렘이 있는 기다림.


작고 귀엽고 때론 소중한 기다림의 의미를 모르지 않지만, 일상의 작은 구석이 모이고 모여 빚어지는 커다란 나의 시간, 나의 삶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뻔히 예상되는 결과 혹은 경험적 확률이 '기다림'의 끝을 기대하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해도 해도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들 때면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며 발끝을 향하는 시선에 조금은 힘을 실어 하늘을 본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자우림, '샤이닝') 조금만 더 편안해질 수 있는 날이 올까.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중략)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 김승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나에게 주어진 매일을 성실하게 보내는 일도 힘이 부칠때면 홀로 작은 점 위에 서있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지, 버티다보면 조금 더 나은 어떤 날이 오기는 할런지. 그럴 땐 그 점도, 그 점 위에 서있는 나도 지우개로 지워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우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 점 위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하루 또 하루 기다리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기다림 끝에 내가 가보지 않으면 알 수없다.


마흔즈음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기다림이란, 나하나 잘 버티고, 우리 가족이 잘 버틸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끝을 알 수 없는 어떤 기다림 속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빠듯해야 하는지 막막함과 답답함에 한숨이 나올 때면, 한숨 한 번에 그냥 숨도 한 번 같이 쉬어 본다. 기다린다는 것은 그 끝이 어떨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내가 숨쉬고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매일 자신만의 무언가를 기다리는 각자의 전쟁을 치르며, 작더라도 즐겁고 근사한 순간이 한번이라도 더 있기를, 그렇게 하루만큼씩은 버틸 힘을 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 사진 - 영화 <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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