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와 빗소리

조용한 외침

by 정안

친정은 바다가 펼쳐지고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다. 부모님이 태어나고 자라신 땅이고 바다이다. 낚시터도 생기고, 몇 년 사이에 펜션도 하나 둘 들어섰지만, 지금도 슈퍼 하나 없는 작고 조용한 동네다. 앞마당에서도 바다내음과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몇 발짝 떼어 자갈이 펼쳐진 바닷가로 가본다. 바다의 수분을 머금은 공기와 바람과 파도소리를 온몸으로 느낀다. 몽돌 위에 누워도 본다. 강아지마냥 뛰어다니기 바쁜 아들과 조카는 작은 돌멩이들을 한 움큼 야무지게 쥐고는 있는 힘껏 바다를 향해 던진다. 뭐가 그리 좋은지 '잘 봐' 하면서 지치지도 않고 던진다. 하루종일, 매일 마주해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소리를 들려줄 것 같은 곳이고, 언제든 나를 받아줄 것 같은 곳이다.


조용하지만 시끄럽고, 가득 찬 것 같지만 텅 빈 마음일 때면 그곳을 찾고 싶다. 비어 있는 마음을 희망으로 메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희망은 노력하면 생기는 걸까, 찾다 보면 가까워지는 걸까. 세상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지만. 마음을 어떻게 먹으면 희망이 생기는거지.


바다와 함께 희망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본다. 수영도 못하는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바닷속을 상상하면 무섭기도 하지만, 파도는 알지 못한다고 마냥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를 해줄 것 같다. 지금은 방향도 알지 못하겠고, 두렵고, 갈 수 없다고 여겨지는 길들도 내가 모르기 때문에 겁내고 포기하고 싶진 않다. 파도는 폭풍이 치든 해가 내리쬐든 언제나 멈추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러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지만, 멈추지 않는다. 파도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나가고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희망도 만나게 될 거라는 마음만은 그래도 아직 내 안에 남아있는 것 같다. 다행이다.


비가 내려서 빗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들리는 날, 조용하지만 조용하지 않은 내 마음이 오랜만에 글을 쓰게 한다. 내 마음의 조용한 외침을 받아 적으며, <아름다운 비명>을 오랜만에 읽어본다. 마음 한 구석에서 조용히 숨어 떠드느라 지쳤던 나의 작은 어떤 부분들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 같다. 고맙다.



아름다운 비명


박선희


바닷가에 앉아서

파도소리에만 귀 기울여 본 사람은 안다

한 번도 같은 소리 아니라는 거

그저 몸 뒤척이는 소리 아니라는 거

바다의 절체절명,

그 처절한 비명이 파도소리라는 거


깊은 물은 소리 내지 않는다고

야멸치게 말하는 사람아

생의 바깥으로 어이없이 떠밀려 나가본 적 있는가

생의 막다른 벽에 사정없이 곤두박질쳐 본 적 있는가


소리 지르지 못하는 깊은 물이

어쩌면 더 처절한 비명인지도 몰라

깊은 어둠 속 온갖 불화의 잡풀에 마음 볶이고 발목 잡혀서

파도칠 수 없었다고 큰소리 내지 못했다고

차라리 변명하라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저 파도소리 때문인 것을

너를 사랑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이미지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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