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요청에 할머니는 할 이야기가 없다며 걱정하셨다. 폭우 후 맑게 갠 수요일 오전, 할머니의 이야기에 40분이 금방 지나갔다.
"쓸 게 없지? 이야기를 많이 덧붙여서 써야 돼."
"덧붙일 게 없는걸요. 말씀을 정말 잘하셔서 그대로 쓰면 돼요."
인터뷰가 끝나고, 가게 오픈 준비를 마치고 한 움큼 싸주신 떡볶이, 순대, 튀김. 먹을 만큼만 덜고 담았는데도 어마어마한 양이다.
인터뷰 후 담아주신 떡볶이, 순대, 튀김
사당1동, 사당로 20길과 동작대로 11길이 교차하는 곳.
그곳에 바로 할머니의 떡볶이 가게가 있다. 간판은 없다.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 떡볶이, 오거리 떡볶이"라고 부른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한결같이 있었기에, 간판이 없어도 모두 이곳을 안다. 인근의 남사초, 남성중 학생들, 그리고 동네 주민들이 단골 고객이다.
떡볶이 가게 정경, 지금은 오픈 준비 중
"아이들이 정말 많이 와. 한 번은 학교에서 글짓기 대회를 했대. 4학년 학생이었지. 우리 동네에서 절대 없어지면 안 되는 것에 대해 썼대. 글쎄, 우리 떡볶이 집을 썼다지 뭐야. 상을 받았나 보더라고. 가져와서 보여주는데... 좋지. 그럴 때 기쁘지. 아이들 데리고 온 부모님들도 종종 그런 말을 해. 오거리 떡볶이 집 없어지면 큰일 난다고. 오래오래 하시라고."
"단골? 4,50대 된 친구들이 일부러 차 가지고 여기를 와. 어린 시절에 먹었던 그 떡볶이 생각이 나서. 멀리서 일부러 왔대. 먹으면서 좋아해. 그때 그 맛이랑 똑같다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볶이 가게의 오전 풍경
"와, 언제부터 가게를 하신 거예요?"
"한 29년 됐나? 원래는 여기에서 과일 가게를 했어. 지금 이 자리 앞에서 하다가 자리가 나서 들어왔지. 4년 정도 했나. 그러다가 떡볶이를 하게 됐지. 떡볶이 가게를 한 지는 25년 된 것 같아."
"그럼 1999년쯤이겠네요."
"응, 아마 그럴 거야. 벌써 그렇게 됐나? 나도 내가 떡볶이 가게를 하고, 또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지. 어렸을 때 먹었던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서 오는 거지. 그럴 때 참 기분이 좋아. 일부러 왔다고 하더라고. 가게가 열려있어서 너무 좋대. 맛도 같고. 그때랑 지금이랑 똑같이 하니까."
할머니 떡볶이, 푸짐한 1인분
"저도 비 오는 날, 퇴근길, 출출할 때 매번 생각나요. 떡볶이는 어떻게 만드세요?"
"고춧가루는 시골에서 직접 가져오고. 양념장은 직접 만들지. 내가 좀 우직해서, 옛날에 만들던 거랑 똑같이 만들어. 안 바꾸고 재료로 안 아껴. 다행히 다들 맛있다고 해주니까 고맙지."
"어묵 국물도 정말 맛있어요. 새우가 듬뿍 들어있는 것 같던데."
"파도 넣고 무도 넣고 이것저것 넣어서 만들지. 나는 만드는 방법 물어보면 다 알려줘. 저번에 자주 오는 손님이 물어보길래 자세히 다 알려줬지. 떡볶이 가게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바로 옆에다가 차려서 당황했어. 2년 정도 하다가 보니까 없어졌더라고. 나중에 우리 집에 떡볶이 먹으러 또 왔는데, 이제는 다른 거 한다고 하더라고. 참 많은 손님이 있었네."
25년 동안 한결 같이 만드신 떡볶이
"가끔 진상 손님은 없나요?"
"있지.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늘 많으니까. 가끔 그런 사람이 있긴 했지. 돈 가지러 간다고 차에 다녀온다고 했다가 그대로 가는 사람, 여러 명 왔다가 한두 명씩 일어나더니 다 가버리기도 하고. 외상 달고 안 오기도 하고. 난 그런데 뭐라고 안 해. 그냥... '다른 데 가서 저러지는 말아야 할 텐데' 생각하지. 좋은 사람이 훨씬 많아."
"양도 많이 주시는 것 같아요."
"응. 배부르게 먹고 가라고. 가끔 배고파 보이고 잘 먹을 것 같고 힘들어 보이고 그러면, 그런 사람한테는 양을 좀 많이 주기도 해."
언제 먹어도 맛있는 순대
"전에는 도넛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응, 예전에는 옥수수도 팔고, 빵도 팔고 그랬지. 그런데 이제 힘들어서 다른 건 안 하고, 딱 이렇게만 해. 많이 줄였지. 우리 딸은 이제 그만하라고 그러는데 계속하는 게 더 좋아. 저번에 아파서 쉬었는데 더 죽겠더라고. 의사 선생님도 하던 거 그대로 하시라고."
"그렇죠. 딸들의 마음은 그렇죠."
구석구석 할머니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응, 아이들도 잘 크고 해서 좋아. 내가 남매가 있거든. 딸은 미국에 살아, 결혼해서. 아들은 사업하고. 뿌듯하지. 나도 꾸준히 일하는 게 좋고. 바깥양반도 나랑 같이 매일 나와서 일하다가 들어가. 집에만 있으면 오히려 힘들어. 건강이 나빠졌을 때도 나와서 1년 꾸준히 하니까 회복이 되더라고."
"맞아요. 오래오래 하셔야죠. 한 여름에는 쉬시는 것 같던데, 곧 아닌가요?"
"응. 온도가 34도 넘어가면 그때는 순대도 너무 많이 익고. 어묵도 그렇고. 다음 주부터 쉴 거야. 2-3주 정도. 사실 지금이 손님이 제일 없을 때야. 더워서 사람들이 적지. 겨울에 가장 많고."
할머니 가게의 메뉴
"제가 정말 적절한 시기에 잘 왔네요. 댁은 여기서 가까우세요?"
"응, 근처야. 옆 동네에 살아. 전에는 사당동 이 앞에도 살았었어. 그러다가 다시 갔지."
"사당동 자랑 한 번 해주세요."
"나도 잘 몰라. 가게만 해서. 근데 사람들이 다 좋아. 근처 가게 하시는 분들도 다 좋고. 고맙지. 전에는 여기 상권이 좋았어. 남성역이 생기면서 시장 쪽으로 많이 이동했지. 여기가 오거리이고 가게도 다 잘 됐지."
할머니의 정성이 모든 곳에 담겨 있다.
"29년 동안 이곳에 변화해 가는 모습을 다 보셨겠네요. 간판을 다셔야겠어요. since1999. 가게 이름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아유, 뭘 달아. 그냥 이렇게 하는 거지. 사람들은 뭐 오거리 떡볶이, 할머니 떡볶이 다 이렇게 부르니까 없어도 돼."
작고 푸릇한 떡볶이 가게 정경. 아름답다.
"아유, 근데 쓸 게 없어서 어떡해. 내가 말주변이 없어. 얘기도 할 게 없고."
"말씀 너무 잘해주셔서 전 그대로만 쓰면 될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야, 할 게 많겠어. 이거 가져가. 진짜 조금만 쌌어."
할머니의 조금은 남다르다. 이틀 동안 점심으로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음식을 건네주시고 비로소 활짝 웃으시는 할머니,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