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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Jun 08. 2024

오이, 땀, 똥

<걸리버 여행기> 읽고 텃밭에서 하는 뻘 생각


농장 텃밭에서 오이를 땄다. 점심으로 먹을 것이다. 유월의 햇빛과 비, 바람은 텃밭 채소를 아주 맛있게 키워낸다. 차가운 지하수로 씻어낸 오이를 대충 잘라서 하나 날름 집어먹었다. 달다. 아삭거린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어느 학술원 학자가 연구했던 '오이에서 햇빛 추출하기 실험'이 생각났다. 햇빛은 달고 아삭거리는 것일까.


짬을 내서 이천 농장에 왔다. 한 참 복숭아 봉지를 씌워줄 때이다. 복숭아에 종이봉지를 씌우면 벌레 먹는 것도 방지하고, 복숭아가 햇빛을 받아 새빨갛게 변하는 것도 막는단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복숭아는 크고, 벌레 먹지 않고, 붉은색보다는 노란빛이 도는 것이라 그렇게 한다. 유월말 시작되는 장마 전까지 봉지 씌우기를 마쳐야 한다.


땀이 난다. 한낮의 기온이 꽤 오르고 햇빛이 따갑다. 시아버지께서 은퇴 후 시작하신 농장이다. 규모가 작고 일당을 주고 사람을 쓰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가족들이 동원된다. 짬짬이 동원되는 가족들도 복숭아며 각종 텃밭 채소를 충분히 받아간다. 세상 공짜 없다. 농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땀이 난다. 코로나 시국에는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놀이터이기도 했다.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똥냄새가 실려온다. 시골냄새. 나무에 퇴비를 뿌려주는 것은 이미 초봄에 끝냈다. 이 냄새는 저기 설치된 간이 화장실에서 오는 것이다. 농장에는 상하수도 설비가 없다. 간이 화장실을 설치하기 전에는, 삽을 들고 아무 나무 밑으로 가서 볼일을 해결하곤 했다. 이제 농장 주변에 집들이 들어서고 환경이 달라졌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이용해야 한다.


걸리버여행기에서 걸리버가 참을 수 없어하는 것이 사람 똥 냄새다. 인간 사회를 비꼴 때 꼭 분변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마지막에 여행한 후이늠의 나라가 유토피아가 될 수 있었던 것 이유 중 하나는 후이늠의 분변 냄새가 그나마 좀 나았기 때문이다. 후이늠은 말과 똑같이 생겼으나, 이성적이고 양심적이며 욕심이 없고 거짓말도 과식도 하지 않는 존재이다.


농장에서 나의 배설물을 대면하면, 어쩐지 겸손해진다. 주제파악을 하게 된달까. 인간이란 어쨌든 먹고 싸는 존재, 나뿐 아니라 이재용 대표도, 김건희 여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다. 먹는 것도 나를 이루고 내가 배출해 낸 것도 내 안에 있던 것. 먹고, 싸고, 걱정하고, 으스대면서도, 감동하는, 일련의 행위가 한 사람 안에 있다는 게 느껴진달까. 그러다 겸손을 넘어 혐오의 느낌이 기어 나오기도 한다. 분명 우리가 만든 것인데, 그 주변을 배회하는 파리떼까지 너무 적나라한 것도 같다.  


대도시 아파트의 수세식 변기와 화장실이 그리워진다. 물론 이때의 배설물은 눈앞에서 이동했을 뿐이긴 하다. 많은 물과 전기를 소모하는 대규모 정화시설을 거치는 것. 설치 및 유지에 많은 비용이 든다. 상하수도가 설치되지 않은 소규모 공장도 상당히 많다. 지구상에서 약 39퍼센트의 사람만이 상하수도 시스템에 연결되고, 프리이빗 하게 관리되는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런 화장실을 쓸 수 있다면 운이 좋은 편인 거다.


프리이빗 한 화장실이 귀한 이유. 도시가 아닌 시골에 대규모 상하수도 설비를 끌어오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발니바비 학술원 어느 학자가 연구했던 '오이에서 햇빛 추출하기 실험'도 그랬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오이가 비쌌다. 영국은 햇빛이 귀해서 본래 오이가 비싸다고 들었다. 세상 공짜 없다.


뻘생각에서 돈을 추출할 순 없을까. 갑부가 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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