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언니의 전화에 나도 울컥했다. 실력향상이 멈춰있다고 C언니가 말했다. 마치 부루마불에서 무인도에 세 번 주사위 던지기를 쉬는 차례 같았다. 실은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발가락이 회복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조금만 차면 불편한 감은 여전했다. 오늘 같은 날(약 10도 이상) 운동을 하면 가슴팍으로 흐르는 땀 한 방울 한 방울이 느껴진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쌀쌀했던 날씨가 급격하게 따뜻해졌다. 기온이 급격하게 오르는 만큼 내 몸도 급격하게 이상 신호를 보냈다. 오른쪽 발가락뿐만 아니라 왼쪽 무릎이 만지면 저릿했다. 작년에 다쳤던 부분이었다.
회복 중이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축구 훈련 시간에 골대 앞에서 슈팅을 했다. 작은 박스선에 일렬로 축구공을 쭉 늘어 세우고 각자 두 개씩 슈팅을 했다. 일정한 줄 서기가 없어 순서 없이 차면 되는 훈련이었다. 유난히 뒤로 물러서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C언니와 나였다. 차는 순서는 없지만 나서는 순서는 대부분 자신감의 순서다. 나는 급격하게 자신감이 떨어져 먼저 차라고 C언니에게 손짓했지만 결국 내가 먼저 슈팅 했다. 맥없이 굴러가는 공. 디딤발이 맞지 않고 스텝은 엉켜서 엉망진창의 슈팅이었다. 그런 모습을 남들 앞에서 보이니 내 모습이 창피하고 속상할 노릇이었다. 남들은 내가 다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프냐고 물어보지만 나는 아프지 않았다. 약간 불편할 뿐. 부상자가 회복기에 있어서 못한다는 핑계는 듣고 싶지 않았다. 발등을 축구공 밑으로 넣어야 하는데 잘못해서 엄지발가락에 맞을까 두려웠다. 엄지발가락이 또 땅을 차 뼈가 부러질까 괜한 걱정이 앞섰다.
C언니의 힘찬 인사이드 패스
리턴패스를 삼각형과 사각형으로 만들어서 돌아가는 훈련도 있었다. 순서대로 안 되는 사람도 나와 C언니였다. 언니의 어깨가 축 쳐져있었다. 나이를 속일 수 없었다. 지친 모습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같이 뛰는 B언니도 오죽하면 C언니를 불러주며 파이팅을 외쳤을까(B언니는 언제나 파이팅을 외쳐주신다). C언니의 인사이드 패스는 최고다. 어릴 적 배구선수를 했었다. 느리지만 정확하고 힘찬 패스. C언니에게 배울 점이다.
C언니는 치킨집 사장님이다. 언니네 집에는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모이는 곳이다. 그래서 어제 국가대표 축구 경기로 손님이 붐볐고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해서 유난히 피곤해했다. 곧 60세를 바라보는 C언니가 몸이 마음대로 안된다고 속상해했다. 욕심이 있는 사람만이 발전한다. 옛날 어르신 말이 틀린 게 없었다. 욕심이 있어야 잘 산다는 그 말. 여기에도 적용됐다.
나만 정체기를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C언니의 전화에 나도 모르게 동질감의 안도가 생겼다. 나만 그런 느낌을 갖는 게 아니라는 것. 누구나 실력의 정체기는 오고, 그런 시기에 봉착했을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어 감사했다. 나도 잘하고 싶다는 부러움과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노력으로 이어질 때 즈음, 축구 부루마불 무인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같은 숫자 두 개의 주사위가 나오는 순간, 준비되어 있다면 훨훨 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