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시들어 떨어지고서야 꽃을 보았습니다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고서야 꽃을 창가로 끌고 왔습니다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고서야 꽃을 마음 끝에 매달았습니다
강은교 시 ‘꽃을 끌고’ 중에서
강은교 시인은 시에 곁들인 짧은 산문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라”라고 썼다. 작년이었을까 신문을 보다가 마음에 닿아 담아둔 글귀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하고 있지 않나. 다이아몬드와 금과 같이.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는 것에 가치가 크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사라지지 않는 것에 가격을 높이 측정해 둔 누군가의 틀에서 우리는 당연한 듯이 살아가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일상의 사라짐에 후회한다
운동장에 있어도 축구를 할 수 없음에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시험 공부할 때 방문 너머로 들리는 모든 것들이 궁금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왜 나왔는지. 지금쯤 나오는 음악 소리는 아침창에서 흐르는 것인지. 평소 누리던 행복에 새삼 감사해하곤 했다. 집에서 남편이 키우던 식물의 수가 줄었을 때도 안타까웠다. 누구나 강은교 시인처럼 없어지고 나서야 후회한다. 나 역시 엄지발가락에 금이 가고 나서야 부상 예방과 방지에 힘썼어야 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 다 나았어! 고작 2개월이었다
뼈가 붙기까지 3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2개월이 지나자 정상처럼 느껴져서 마구 돌아다니기 시작했으며 운동을 슬슬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뼈는 다 나은 상태가 아니었다. 무리를 하면 역시나 부어오르기 일쑤였다. 운동선수들은 최상의 몸 컨디션을 위해 부상 방지 훈련을 해내고 부상 뒤에도 재활한다. 하지만 생활체육으로 하는 일반인들은 이런 훈련에 게으르다. 그러니 다쳐도 보살피지 않아서 만성 고질병으로 이어진다. 발가락같이 구부러지는 부위는 더욱이나 뼈가 붙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래서 축구를 했었지
축구공이 발에 탁! 하고 부딪히는 느낌은 명쾌했다. 속력이 붙은 축구공이 오른쪽 인사이드에 정확히 맞아 내달리는 순간. 행복의 전율이 몸을 휘감았다. 숨이 턱밑 가득 차도록 미친 듯이 뛰며 공을 받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땀이 몸을 적시기 시작하는데 한 방울 한 방울이 기쁨이었다. 운동을 했으면 땀을 흘려야 정상이지. 온몸에 노폐물이 빠지는 상쾌한 느낌이 오랜만이었다. 이래서 축구를 했었지. 2개월 동안 잠자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2개월을 쉬었어도 몸의 감각은 살아 있었다
쉬었어도 내 실력이 바닥을 치진 않았구나! 몸이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1년이 넘은 몸의 기억이 사라질까 내심 두려웠다. 훈련을 밖에서 지켜보다 보니 안에서도 어느 정도 빠르게 이해됐다. 훈련 방법을 익힐 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초고도의 집중을 모두 끌어올려서 봐야 겨우 한 번 이해됐다. 어설프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훈련을 보기 시작했다가는 열 번을 보고 몸으로 겪어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아직 발가락이 온전한 상태는 아니어서 테이핑을 두르고 공을 찬다. 이리저리 내 나름대로 발가락근육을 푼다고 하지만 아직 왼쪽 엄지발가락처럼 온전히 구부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오른 엄지발가락을 구부리고 돌보는데 게으르지 않아야겠다. 변하지 않음이 높은 값어치를 하는 거라면 변하는 모든 것에도 의미가 있음을 기억하겠다. 남들이 정해놓은 틀이 아닌 내가 정하는 일상의 소중한 보석을 잃지 말았으면 한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상태라는 건 건강하다는 증거다. 앞을 볼 수 있고 달리는 다리가 있으며 드로잉을 할 수 있는 손도 정상인 거다. 축구를 할 수 있음에 신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감사했다. 매일을 지내며 사라지는 일상을 더 열렬히 살고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