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 「공간 그 너머에 10」

by 김지숙 작가의 집



이근호 「공간, 그 너머에·10」


회복실에서 막 돌아온 아내는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다

모든 침묵과 모든 공간을 넘어

숨소리를 매달고 있는 링거를 지나

가만히 병실을 나서면

무언가 점액질 같은 당김이 있다

바깥은 병실과 다르게

채칼에 썰어진 공간이 가지런하다

공간도 교환이 가능할까

뜬눈으로 새벽의 창을 열면

정맥류를 앓는 강물소리 보인다

시간이 매달린 공간 그 너머에,

-이근호 「공간, 그 너머에·10」




우리는 시공간의 범주에 존재하며 살아간다. 생활하는 공간은 사물에 내재된 총체성을 담고 있어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며, 부지불식간에 그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고 성장한다. 따라서 추억 속에서 변화된 장소는 어떤 상황이나 실재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특별한 경험은 특정한 장소로 바뀌기 마련이다 그것은 밝고 어두운 혹은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풍경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공간의 본성이 직접 질서에 현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정의한 N. Hartmann은 실재하는 자연이 전개하는 차원으로 경험적 가시공간에 해당하는 실재공간, 자연을 직관하는 우리 의식의 형식에 해당되는 직관공간, 생각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의식공간 등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이 실재공간과 직관공간 의식공간은 하나로 한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기하학적 이념 공간 등으로 나뉘고 그 유형이나 특질을 달리한다.

시에서 실재공간 직관공간 의식의 공간영역까지 함축되어 있다. 실재(實在)공간은 이념이나 이상적 실체가 전제된 이데아적 공간과 실제세계나 현실세계의 공간을 가리키는 실제공간이 함께 드러난다. 병원이라는 장소는 시대적 개인적 사회적 배경과의 관계성 속에서 유형화되고, 공간적 이미지를 표상한 채 의미가 확장되어 장소화 된다. 화자는 아내가 수술을 끝내고 돌아온 병실에 있다. ‘회복실’ ‘링거’ ‘병실’ ‘정맥류’ 등과 같은 어휘들은 병원이라는 장소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실재(實在)의 공간이다. 병실을 나서도 여전히 잘 썰린 실제(實際) 장소에 서서 눈앞에 보이는 공간을 직관적으로 바라보며 서있는 직관적 의미 공간이다.

화자는 ‘공간도 교환이 가능할까’라고 하여 현재 자신이 처한 장소에서 벗어나 ‘공간 그 너머’의 의식 속에 내재된 공간을 바라보고 그 곳으로 장소 이동하기를 원한다. 불안과 우울의 시간들이 상존하는 병실이라는 아픈 장소 다르게 놓여 있는 장소로 떠나고 싶은 심정은 ‘공간이동’이라는 아픔이 사라진 장소들을 바라본다. 화자는 과거를 회상하기보다는 장소를 바꾸는 것이 현실의 상황을 떠날 수 있는 바른 길이라고 여긴다. 이동을 원하는 마음은 병실에서 아내가 느끼는 고통으로 충분히 동기가 형성되며 이를 직접적으로 실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식적으로나마 이동하여 고통과 아픔으로 상징되는 ‘줄줄이 달린 링거’에서 벗어나 편안한 장소로 돌아가 안정감을 찾으려는 스스로 심리적 위로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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