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형수 「해바라기 비명(碑銘)」김광섭 「생의 감각」

자연지향성 시의 생명

by 김지숙 작가의 집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 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 오르는 나의 꿈 이라고 생각하라

함형수 「해바라기 비명(碑銘)」


여명(黎明)에서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것이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그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 빛은 장마에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荒野)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生)의 감각(感覺)을 흔들어 주었다.

김광섭 「생의 감각」





생명은 특정한 환경에서 유기물화합물과 같은 무생물에서 자연발생한다 이 생명은 38억-41억년 전에 이 지구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기원은 원시의 바다에 밀려든 유기물이 해안가로 밀려들고 웅덩이를 만들렀다가 웅덩이 속 바닷물이 햇볕으로 증발되어 농축되면서 그 속에서 최초의 생명이 탄생했다는 가설과 외계물질에 의힌 배종발달설 해저 열수구 주변에 황철석의 촉매작용으로 축적된 유기물이 반응해 초기의 고미생미생물인 초호열성 메탄 생성균에서 생겨났다는 가설도 있다 암석가설 진흙가설 작은 연못가설 운모시트사이 가설 용암가설 등 다양한 생명의 발생설이 있어 왔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관심은 그 시작을 어디에 두느냐의 가설 그 이상의 관심으로 시인들은 시에서 생명성을 느끼고 다루어왔다 시에 노출된 생명에 대한 특정한 성향은 시가 지닌 공간적 의미를 배제하지는 못하며 또한 그 공간은 대체로 자연 속에 공생하며 살아가는 동안 이루어진다

대개의 생명성을 다루는 시들은 독자와 친숙한 이미지를 가지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자연으로 시의 공간이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화가 L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해바라기의 비명」에서는 생명을 추구하는 열정을 힘찬 어조로 보여준다 비 자연적으로 생성된 비석의 차가움과 자연물인 태양의 뜨거움을 대조시켜 생명에의 강한 의지를 열정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그 생명성은 죽음을 전제하고 그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강인한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반면 그의 「개아미와 같이」『인문평론』(1940.10)에서는 비극적 삶을 인식한다

「생의 감각」에서 화자는 절망 속에서도 다시 살아나려는 부활을 보여준다 이 시에서 생의 감각이란 생명의 자각과 부활의 양면 절망에서 희망으로 전이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1연에서는 부활을 2연에서는 깨달음을 3연에서는 절망을 4연에서는 생명 의지를 드러낸다 화자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음으로써 삶에 대한 강한 미련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게 되고 이를 통해 내면에 남아 있던 생에 대한 감각이 되살아나게 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혹은 일체화되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시적 형상화에 대하여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고유한 생명성을 어떻게 다루고 생각하고 표현하느냐에 생명에 대한 애정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되었던 시들은 자연 혹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비자연이라는 인공물 속에서도 생명의 의지를 드러내며 이는 주로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준다 특히 바위 구름 원뢰 일월 성신 비 바람 사구 태양 황야 강물 등의 자연물을 통해 삶에 대한 강인함을 지니려 한다 외관상 조금씩 변하겠지만 그 근원적 성향은 불변하며 결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다 그들처럼 강인하고 항구한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는 화자를 보여준다

시에 표현된 비자연물들은 주로 경제개발의 이면에 숨겨졌던 잘못된 현상들 가운데 하나는 자연파괴로 말미암아 인간의 삶이 위협을 당하는 폭력성을 드러내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자연과 비자연의 상충되는 모습을 시에 표현하는 과정에서 변질된 환경 폐해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한편 현실을 직시하면서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가려는 시적 인식을 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자연교감 자연예찬에서 만물과의 유대감 유기적 관계유지 과도한 문명에 대한 저항 자연복원에 대한 희박함 자연경시 풍조 등에 시적 관심이 옮겨간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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