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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케미슈즈가 사라졌다

by 김지숙 작가의 집

케미슈즈는 1970년대를 여학생으로 보낸 사람이라면 잊히지 않을 것이다 진양화학 도날드 케미슈즈 말표 케미슈즈는 합성피혁으로 만든 반짝반짝 빛나던 깜장색 신발이다 당시에는 운동화만 신어도 나쁠 것이 없는 많은 것이 부족하던 때였다 그런데 나는 명절이면 거의 항상 새 케미슈즈를 사 주셨다

물론 학교에도 신고 가고 친척집에 갈 때에도 케미슈즈를 신었다 당시만 해도 케미슈즈를 신고 다니면 좀 더 뭔가 특별한 느낌을 갖곤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에도 중학교 다닐 때에도 나는 케미슈즈를 고집했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학교 신발장에는 보통 여섯 정도의 새 신발이 반짝반짝 놓여 있었고 나는 내 신발을 내 자리에 놓고는 다른 날처럼 수업을 끝내고 집에 가려고 신발장으로 갔다

그런데 내 케미슈즈가 사라졌다 중학교 교실을 다 뒤져도 신발은 없었고 선생님께 얘기했더니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교실에 있었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집으로 가야 하는데 신발이 없어 울상이 되었고 선생님은 자신이 신고 있는 슬리퍼를 내게 주면서 오늘은 이걸 신고 집으로 가라고 했다

맨발로 갈 수는 없어 선생님이 준 슬리퍼를 신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끄럽기도 했고 화도 났다 학교가 싫어졌다 여러 켤레의 케미슈즈가 신발장에 있었는데 내 것만 없어진 걸까 그대는 몰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서 생각하니 내 신발이 제일 예쁘고 새신이었으며 자신의 발에 맞았을 걸 것 같다

얼마나 신고 싶었으면 남의 것을 가져갔을까 이 도난 사건이 생기고부터는 전교생이 신발주머니를 만들어 책상 옆에 고리를 만들어 대부분 넣어 두었다

다행스럽게도 이후에는 실내화를 따로 신었기 때문에 신을 잃어버리면 실내화를 대신 신고 집으로 오곤 했다 새신을 사면 자랑스럽게 학교에 신고 가는 일은 없었다 몇 번 신을 잃어버리고 나자 이후로 케미슈즈를 자주 잃어버리면서 다시는 케미슈즈를 신지 않았다 운동화로 바꿨다

그래도 엄마는 새신을 신고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다 신발이 없어진 암담함을 너무 잘 알기에 나는 그 말을 따랐다 집에서 꽤 오래 한 달 정도 신고 나서야 비로소 새신이라는 느낌이 사라질 즈음 학교에 신고 가기도 했다

나는 가끔 지금도 내 신발이 없어진 암담함을 꿈에서 만난다 왜냐하면 케미슈즈를 신고 다니다가 잃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맨 처음 신을 잃어버린 날들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 있었나 보다 하지만 요즘은 꿈속에서 신을 잃어버리면 의도적으로 다른 신을 찾아 신는다

꿈에서도 신발 없이 다니기는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신발보다 더 나은 신발을 꿈속에서 찾기도 하고 없을 때에는 조금 큰 신발이나 짝이 다른 예쁜 신발을 찾아 신는 날도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설사 그것이 꿈속이라 할지라도 나는 신발을 잃어버리고 황당하게 맨발로 서서 선생님의 커다란 슬리퍼를 끌며 집에 가던 날 같은 암울함은 결코 만들지 않는다 설사 그게 꿈속이라 할지라도

이후 나는 가끔씩 식당이나 절의 법당 안에 들어갈 때마다 내가 새신을 신었나 비싼 신을 신고 오지 않았나 내 신을 탐내는 눈길은 없나라는 가벼운 공포를 느끼곤 한다 새신이고 비싼 신일 경우 그 마음은 더하다 하지만 그 날이후 단 한 번도 신발을 잃어버린 경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발을 벗어놓은 사람들이 남의 신발을 신고 가는 경우를 왕왕 본 적은 있다 물론 나의 경우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래서 케미슈즈는 나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맛보게 했으며 그다지 매력적인 기억을 주지는 못한 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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