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꽃
물 위에서
뜨고 지는 해처럼
느닷없이 몰려와서는
속절없이 부서지는
너
'놀'은 '노을'의 준말이다 16세기까지 '노을'은 '노올'로 사용되었고 제주말로 '노올'은 매우 세차게 부는 바람’ ‘바다의 크고 사나운 물결'을 뜻한다
노을은 노을霞과 너울波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을 의미한다 노을꽃은 해가 뜨거나 질 무렵에, 하늘이 햇빛에 물들어 벌겋게 보이는 현상을 말하기도 하지만 또한 너울성 파도가 부서지면서 꽃 모양을 그리다가 속절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말하기도 한다 내가 쓴 노을꽃은 후자에 속한다
낚시를 자주 다니다 보니 해 질 녘 갑자기 밀려오는 너울성 파도에 휩싸여 발을 헛디뎌 미끄러진 적이 있다 거제도 황포방파제 옆에서 일어난 일이다 해질녁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혼자 고동을 줍는 일이 위험하다는 것도 밀물이 순식간에 밀려든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도 그 날 처음 알았고, 인간의 한계를 꽤 모질게 경험한 때였다
조금만 더 몸의 중심이 흔들렸다면 갯바위에 머리를 부딪쳐서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갈 뻔했다 그나마 운동 신경이 아직은 꽤 쓸만했던가 아니면 운이 좋았던가 둘 중 하나이다
그때 기억은 그랬다 너울성 파도가 아무 기별도 없이 태산의 높이로 슬쩍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모질게 부서지더니 꽃을 만들고는 아무 미련도 없이 사라졌다 죽일 듯이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어이없이 사라지면서 거픔만 남고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건 죽다가 산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