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밥
길 가다 개미조차 밟지 못하고
그림에 능한 맘 여린 아비 영조
금주령 내린 지 넉 달 만에 낙선당에 행차한다
경패증 뇌벽증 의대증 앓아
휘청대던 사도세자思悼世子 의재毅齋
술 취한 줄 알고 뒤주에 가둔 9일 동안
아비인 왕은 불행 불망 불신의
허연 쌀밥 3첩 수라상을 받았지
의소세손懿昭世孫 정琔과 남편 선愃을 먼저 보낸
동갑내기 세자빈 혜빈 홍씨는
육포 다식에 하얀 쌀밥 붉디붉은 다반상을 받고
'밥'을 소재로 시를 쓰려던 생각에서 역사 속 인물 가운데 권력을 가진 왕족 중 굶어죽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에서 사도세자에 이르렀다 9일간 홍씨와 영조는 굶었을까 아니다 그러니 더 살아 있었을 것이고 세자를 그리 가두어두고 어찌 밥상은 받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사도 세자의 행적을 읽고 느끼고 시로 쓰게 되었다
아비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굶어 죽은 정치적 희생양인 세자의 자는 윤관允寬이고 호는 의재毅齋이며 이름은 선愃이다 영조가 40이 넘어 태어난 재능과 총기가 넘치던 천품이 귀한 아들 선은 비단보다는 무명을 사랑하고 부왕이 부르면 입안의 음식을 뱉고 대답하는 효성을 지녔다 15세에 청룡도와 쇠몽둥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활을 쏘면 명중 했고 말도 잘 타는 무인 기질이 강한 영특함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책을 멀리하는 아들과 책을 읽히려는 아비 사이에 갈등이 발단이 되고 아비의 대리청정으로 더욱 사이가 멀어진 부자관계는 결국 세 번의 사건으로 아비를 두려워 피하는 관계가 되고 급기야 임오화변이 일어나 세자가 기거하던 동궁에 있던 기괴한 물건을 모두 선인문 宣仁門 밖에서 불태우고 세자를 엄중히 가두고 自內嚴囚 그 속에서 9일 만에 죽음을 맞는다
사도세자가 가진 능력이나 인물 됨됨이를 봐도 빼어난 자식이었다 하지만 병을 앓고 있는 자식을 가진 아비의 심정이 어떻게 그렇게 비참하게 자식을 사지를 내몰 수 있는지에 대해 노론과 소론의 수장 간의 갈등에서 빚어낸 정치적 갈등의 정점에 서 있고 개인적으로는 광증 언교 등으로 나라를 이끌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처신에 대해 일견 그 심정은 이해되나 도무지 용서와 동의는 할 수 없다
국가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가린 모호한 판단에 마음이 아팠다 한국인이라면 사도세자의 죽음을 모르지 않고 세월이 지나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을 진실의 역사적 사실로 긴긴 세월 남아 후세인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백성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왕이었지만 어떤 이유로든 자식을 굶겨 죽인 아비, 왕의 이 행동은 태평성대를 이룬 무수한 업적에 가려져도 좋을지, 죽어가던 세자의 마음과 많은 부모의 마음에서 결코 가릴 수 없는 뭔가는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사도는 이 글월로 하여 내게 서운함을 갖지 말지어다.”-제4장·제5장
영조 자신도 세자가 죽고 나서 묘비에 긴 문장들을 남긴 그 의미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한다
학교 다닐 때에는 역사 시간이 너무 싫었다 조선왕조 연대표를 내밀고 그것을 외우고 확인하는 사지선다형으로 사건 중심 교훈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연대를 외우고 행적을 외우는 단순정보를 기억하는 내용확인 수준의 시험을 치는 그 수업들이 지루해서 늘 선생님 눈을 피해 딴 짓을 하곤 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역사는 알수록 많은 것을 생각하고 교훈 삼을 귀한 내용이 얼마나 많은데 재미없고 지루하게 외면 당하는 수업시간으로 각인되었던 것일까 요즘은 좀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