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by 김지숙 작가의 집

시집詩集 『거침없이 내게 왔다』





소나기



그날은 종이우산을 쓰고 있었다

귓바퀴 속에서 비로소 소리가 되는 우레

소나기 둘레에서 외침은 들리지 않고

신기한 문자만 떨어져 내린다


어떤 음계와도 어울리지 않는 황홀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디로든 떠나는 중이다

종이우산 은밀한 비상구 아래서

감당하지 못하는 너를 만난다




살면서 우리는 비를 맞는다 예기치 못할 때에 이지만 때마침 값비싼 튼튼한 우산을 가지는 행운이 있을 때도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우산을 살 돈이 없거나 혹은 파는 곳이 없어 길거리에 놓여 있는 전단지를 쓰고 뛸 때도 있다 어차피 다 맞을 텐데 모양 빠지게 뭐하러 종이우산을 쓰냐는 핀잔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머리만은 젖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종이를 머리 위에 쓰고 뛰는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종이우산을 쓰면 글자들이 녹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그 내용들은 삶의 내용들이 담겨 있다 비 내리는 날 비에 대처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가치관도 읽게 된다 젖은 종이를 쓰고 달리는 모습에서 삶의 임기응변을 보기도 하고 멋진 우산을 확 펼치는 모습에서 준비된 자의 여유를 보기도 하고 그냥 내리는 대로 다 맞으면서 초월한 모습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비 사이로 막 뛰어가는 모습도 보게 된다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날도 내리지 않는 날도 어디론가 떠나는 중이다 감당되지 않는 힘든 상황 속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 역시 힘든 상황을 살고 있다면 반갑기보다는 감당되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이 그런 거지 그 사람이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닌데 여유 없어 상대를 껴안을 수 없어 그렇기 하다

도를 통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아픔보다 타인의 아픔이 더 크게 와닿을 수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아픔이 제일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타인의 슬픔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런 날 만나는 반가운 사람에 대한 반갑지 않은 마음이 묘하게 느끼는 상황을 겪으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이 시에서는 그런 묘한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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