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러려고 귀농했나보다

전지적 농부아내 시점

by 농부아내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에 머리가 닿기만 하면 곧바로 잠이 들곤 하던 2019년, 바로 그 해 "흑미"가 나에게 왔다. 우리집에 잠깐 들른 길냥이에게 사료를 주기 시작했더니 창고에서 7마리의 아깽이를 낳았다. 6마리의 아깽이는 어느날 아침 소리소문없이 독립을 했고, 마당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냥이가 그때 태어난 "흑미"이다.


"너를 오늘부터 "흑미"라고 부를께. 흑미야~ 안녕!"

머리를 다리에 부딪히고 온몸을 내 다리에 비비면서 친근감을 표시하는 모습이 마치 나의 인사에 화답하는 것 같다. 이름을 지어줘서 그런지, 밥 챙겨 주는 사람이 나여서 그런지 흑미는 하우스에서 일할 때도, 텃밭에서 놀고 있을 때도 항상 내 곁에 있었다.





하우스에서 일하고 있으면 옆에 와서 만져달라고 온몸을 내게 맡긴다. 일이 급해서 손으로 살짝 밀치면서 "미안해, 이따가 놀아줄께"라고 말하면 이녀석, 신통하게도 한발짝 떨어져서 잠을 잔다. 내 말을 알아들은걸까. 말 안 듣는 딸램들보다 낫다. 한창 일하다보면 허리와 무릎이 아파온다. 잠깐 쉴까 싶어 일어나 평상으로 걸어나가면 나를 보호하듯 앞서 나간다. 마당냥이에게 경호를 받다니, 기분이 묘하다. 평상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쓰다듬어 주면 흑미도 그릉그릉 기분좋은 소리를 내고, 보드라운 감촉이 주는 느낌에 나도 힐링한다.


귀부인처럼 다소곳하고 얌전한 흑미가 마당냥이의 삶을 산지 벌써 6년째다. 젊은 시절 흑미는 고온의 하우스에서도 요령껏 호박 잎 그늘에 앉아 쉬기도 하더니 나와 함께 늙어가는 처지가 되면서부터는 잠깐 따라 들어왔다가 하우스 열기에 화들짝 놀라 나가버린다. 일하다가 잠깐 쉬려고 평상으로 걸어가다 보면 세상 부러운 팔자의 녀석들이 보인다. 6년차가 된 흑미의 곁에는 이제 아깽이 "하찮이"가 함께 하고 있다. 하찮이는 2024년 6월에 태어나 어미인 흑미의 곁을 떠나지않고 마당냥이로 살고 있다.





비닐 하우스의 햇살은 뜨겁다 못해 따갑지만 지붕이 드리우는 그늘 아래 햇살은 따사로움 그 자체라 평상은 마당냥이들의 낮잠 명소가 된 지 오래다. 평상에 앉아 물 한 잔과 초코파이를 먹으며 녀석들을 보고 있으니 부러워서 슬쩍 건드려 본다. 쓰다듬으면 못 이기는 척 일어나 내 팔에 머리를 부딪히고 온몸을 내게 맡긴다. 심장이 쿵 내려 앉는 듯 사랑스러움에 미칠 것 같다.


두 녀석의 밥을 챙기다보니 그릇에는 늘 사료를 넉넉히 담아 준다. 인심이 후한 나머지 사료가 남으면 오가던 길냥이들의 휴게소가 되어 소리소문없이 그릇의 사료들은 사라진다. 가끔 처음 보는 길냥이가 마당에 누워서 그루밍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러움에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내가 이러려고 귀농했나보다.


길냥이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지만 힘든 농사일 중에 마당냥이들이 주는 위로와 힐링은 딸들이 주는 것과는 또다른 무언가가 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좋아해 준다. 엉뚱한 행동들로 웃음을 주기도 하고, 대나무밭이 되어주기도 한다. 내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은 마당과 사료가 전부이지만 주고받음을 재지 않고 손 끝으로 마음을 전하며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우리는 공생관계이다.


아침, 집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동시에 현관문 앞에서 마당냥이 흑미의 소리가 들린다. 냥냥거리는 흑미의 소리가 밥 달라고 하는 것 같아 사료통을 들고 현관문을 열면 문 앞에는 다소곳한 흑미와 냥아치같은 하찮이가 앉아 있다. 사료통을 들고 나갈 때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말이 생각난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넌 내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아이이고, 나도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여우이고.."


흑미야, 넌 내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마당냥이이고, 나도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집사였으면 좋겠어. 건강하게 오래오래 내 곁에 머물러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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