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잊어버리기 전에, 귀농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후의 날들을 기록해두고 싶어 연재를 시작했다. 귀농 초창기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매일이 판타스틱했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상황들에 갈팡질팡하는 날도 많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농사는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2017년, 귀농인의 집에서 지내던 시절. 나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고, 남편은 혼자서 임대하우스에서 밤호박 농사를 짓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밤호박잎에 진딧물이 생겼다고 했다.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멘토 어르신께 여쭤보라”고 했고, 남편은 이미 물어봤다며 대답했다. “방제를 미리 했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지만, 남편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니, 벌레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약을 왜 쳐?” 지금 돌아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 순간이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서툴고 막막했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반복되었다. 작물은 사람의 손길을 많이 타는 존재였다. 언제 물을 줘야 하는지, 비료는 얼마나 필요한지, 벌레가 꼬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배워가야 했다. 농사는 자연과 함께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자연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된다는 말을 실감하는 시간들이었다.
연재를 준비하며 오래된 사진을 들춰보는데, 그 시절이 고스란히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농부님과 함께한 시간들은 농사라는 치열한 전쟁터 속 전우애로 가득했다. 익숙하지도 않고, 익숙해지지도 않는 버거운 농사일이었지만, 어느새 우리는 ‘전투적 생계형 농부’로 단단해져 갔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우리 집 농부님은 그리 전투적이지 않았다. 농사일하다가 “쉬는 시간”이라며 홀연히 사라지는가 하면, 사무장으로 일하면서 바깥일로 분주한 날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농부의 아내인 내가 농사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소를 키워야 하니까.
하우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돌아오면, 부엌에는 설거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은 내 눈에만 보이는 것 같았고, 녹초가 된 날에는 밥조차 하기 싫었다. 그래도 어쩌랴. 하우스 일은 하우스 일이고, 아이들 밥은 또 따로 차려야 했다. ‘농부의 아내’에서 ‘엄마’로 모드를 바꾸는 건 자연스러우면서도 고된 일이었다. 정말 집안에 우렁각시 한 마리쯤 살았으면 좋겠다고 수도 없이 바라던 날들이었다.
그 와중에 2023년에는 젤라또 사업까지 시작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디자인부터 운영까지 손수 해냈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집안일과 아이들을 챙기고, 밤이면 젤라또 공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슈퍼우먼’이 되어 있었다. 농사, 집안일, 육아, 사업—모두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악착같이 버텼다. 그러다 보면 번아웃이 찾아오기도 했다. 한계에 다다른 어느 날은 그저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에서 하루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기도 했다. 그런 날들을 견디게 해 준 것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마당에서 키우는 고양이들과의 교감,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 아이들이 “엄마, 맛있어!” 하며 밥을 깨끗이 비울 때의 뿌듯함. 그 작은 순간들이 쌓여 나를 버티게 해 주었다.
농사는 참 정직한 일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애쓴 만큼 자라고, 게으른 만큼 망가진다. 귀농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내려온 사람들 중 상당수는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버텼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눈물 흘렸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누군가 ‘귀농’이 로망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아니요, 귀농은 현실이에요.” 그리고 그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농부의 아내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 물론, 소소한 힐링을 찾아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