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계시의 종교 | 오늘날 특별계시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엡 1:17-18)
■ 계시와 관련된 핵심 질문
- 계시란 무엇이고, 어떤 것인가?
- 계시를 받았다고 가끔씩 주장하는 이들이 받았다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 왜 그들은 계시를 받아야 한다고(받았다고) 생각할까?
- 오늘날에도 '계시를 받았다'는 말을 계속 사용해도 괜찮은가?
- 이런 계시 주장이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계시(revelation)의 사전적 의미는 '깨우쳐 보여줌' '사람의 지혜로써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신(神)이 가르쳐 알게 함'과 같다. 일반적으로 '알려준다' '감추어진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신의 뜻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다만 기독교는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먼저 인간을 찾아와 계시를 주심으로 시작된 것이다.1) 그러므로 기독교의 출발점은 인간의 성찰이나 사색, 그리고 깨달음과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부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고 한다. 계시만큼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가진 단어도 드물다. 그러므로 '계시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은 기독교 신학을 시작하는 출발선에 해당한다고 하겠다.2)
하나님과 인간의 본질적 차이로 인해 계시는 반드시 필요하다. 피조물인 인간과 존재 그 자체인 하나님3)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고전 2:11)라고 했다. 이런 차이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그의 뜻을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뜻을 보여주고 알려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계시라는 형태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알려주고 자신의 뜻을 보여주어서 친밀한 관계를 맺기로 작정하신 것에서부터 기독교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계시는 기독교가 그 인식적 기원을 하나님에게 두고 있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하나님의 '자기 노출' 수단이다. 따라서 계시는 온전히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만 발현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인식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한에서만 그 인식이 하나님의 현실성에 부합되는 참된 인식일 수 있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1. <기도의 응답>으로 계시를 받았다는 주장
- 언제나 밤낮으로 기도에 열심인 전도사
- 어느 날 성도들을 모아놓고 지난밤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시하셨다고 밝힘
- 모든 성도가 기도원에 가서 3일간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선포
- 성도들은 그 말을 거역 못하고 따라나섰다는 것
→ 이것이 '계시'일까? No. 그저 '기도 응답'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계시는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사건'이기에 극히 제한적인 것으로 사용되어야 할 용어이다.)
2. <계시를 받기 위한 특별기도>가 필요하다고 하는 경우
3. <성령의 은사>로 계시를 이해하는 경우 (방언 등을 통한 계시 및 특별 예언)
-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로 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침을 전하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고전 14:6)을 근거로 성령의 은사 중의 하나로 이해하는 경우
- 여기서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 <지식>은 '그 계시를 깨닫는 것', <예언>은 '그것을 선포하는 것', <가르치는 것>은 '선포된 계시를 풀어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함
- 바울이 이 편지를 쓴 1세기에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성도들이 직접 계시를 받았던 것으로 볼 수 있음
→ 완성된 성경이 이미 주어진 오늘날에도 초대교회 성도들의 경우와 같은 특별계시가 필요하나? 글쎄.
(이미 완성된 성경이 주어짐에 따라 오늘날 이러한 은사는 필요하지 않아 중단되었다고 말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4. <카리스마 목회>의 근거로 일부 목회자가 이용하는 경우
- 자신의 주관적 종교적 체험을 하나님의 특별계시라고 주장하는 경우
- 이런 목회자는 반드시 주의하고 경계해야 하며, 다각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 이와 같은 신비적, 극단적 계시주의자들 때문에 한국 교회에 끼친 악영향이 결코 적지 않았던 것
5. <이단적 종말 신앙>의 근거로 이용하는 경우
- 대부분 이단적 시한부 종말 신앙과 연결됨
- 목회자의 개인적 특별계시를 근거로 제시한 사례들이 대다수
. 1992년 9월 28일 휴거를 주장했던 부산 <서머나교회(K목사)>
. 1992년 10월 28일 휴거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미선교회(L목사)>
6. <이단의 열린 계시 및 성경관> 직통계시 및 왜곡된 성경해석
- 몰몬교 창시자 조셉 스미스는 천사 모로나이로부터 계시를 받아 몰몬경을 번역했다고 주장
- 안식교 설립자 엘렌 G. 화잇 또한 “성경의 거룩한 예언자가 받았던 계시를 회상케 하는 방식으로 계시를 받게 되었다”라고 주장. 이를 예언의 신으로 규정
- 에덴성화 이영수는 1961년 8월 예수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
- 신천지는 성경의 '비유풀이' '짝풀이' 등으로 해석하며 이를 통해 교주 이만희를 구원자로 지목
- 전도관 박태선은 성경의 '동방'을 한국으로 해석하는 등 자의적으로 해석 시도
- 통일교주 문선명은 초4년 때인 1936년 4월 17일 예수가 나타나 '인류 구원사업의 소명이요 공식하명'이라는 메시아 사명을 맡겼다고 주장
- 많은 이단들의 요한계시록의 왜곡된 해석에 따른 잘못된 종말론 주장
(출처 : http://www.kport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249&t 퍼플렉시티 등을 통한 조사 자료를 근거로 함)
하나님의 계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님이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자신을 알려 주시는 '일반계시'가 하나이고, 특별한 목적에 의해 특정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구원 계획에 대해 총체적인 지식을 제공해 주시는 '특별계시'가 그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이름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 정의 ]
"일반계시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서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어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과 역사 그리고 인간의 내적 의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웨인 하우스)
"자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스티븐스)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칼 헨리)
"자연과 역사 그리고 인간의 내적 존재를 통한 하나님의 자기 현시이다" (밀러드 에릭슨)
[ 목적 ]
일반계시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가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나님의 일반계시 정의를 통해 알 수 있게 하는 '일반계시 요소 세 가지'
- 자연(창조물)(시편 19:1)
- 인간의 역사
- 인간의 양심과 내면 의식(로마서 1:18-32)
즉, 인간의 이성과 감성의 인지활동을 통해 알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주신다.
하나님의 창조와 영광의 선포 (시편 19:1-4)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증언 (사도행전 14:16-17)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하심에 대한 선포 (사도행전 17:26-27) (로마서 1:19-20)
각 사람의 삶을 판단하게 하는 근거 (로마서 2:14-16)
1) 제한적 범위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증언만 할 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못함
하나님의 본성 등 중요한 '인격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체성' 만을 드러낼 뿐임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조직적 서술을 위한 견고한 토대를 제공하지 못함
2) 제한적 이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반계시에 대한 인식이 더욱 희미하게 되어 버림
-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과의 교제가 단절되어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기 어렵게 된 것(고전 1:21)
- 인간의 지혜도 사탄의 방해로 마치 어두운 그림자 속에 머물게 된 상황이 됨 (고전 4:4)
하나님이 인간의 눈높이 맞춘 계시를 통해 알려 주어도 인간의 이해 한계로 인해 이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
3) 제한적 기능
일반계시 만으로는 구원의 길을 발견하거나 구원에 이를 수 없음
오직 '특별계시'를 통해서만 구원의 길을 알 수 있음
1) 불신자와의 접촉점
불신자를 포함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한 존재, 따라서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흔적을 가지고 있음. 이러한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는 일정한 종교성으로 나타나기도 함
신 존재에 대한 관념 및 도덕과 윤리에 대한 인식은 그 자신을 하나님께 이끌어주는 매개체가 됨
2) 사회의 유지
인간에게 도덕적 관념률의 형태가 남아 있어 이를 통해 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게 함
3) 일반은총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은총의 성격도 포함하고 있음
-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경이, 조화와 균형, 계절의 주기적 변화, 눈 비, 생태계 균형 등 (시편 136:25) (사도행전 14:17)
4) 특별계시를 위한 보조 역할
일반계시는 특별계시를 더 잘 이해하게 해 줌, 아울러 일반계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별계시가 필요
특별계시는 일반계시를 토대로 해서 세워짐. 따라서 "성경만으로는 성경을 모른다"는 경고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님.
당연히 일반계시와 함께해야 완전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 유의해야 함
특정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구원 계획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특별계시는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들을 하나님과 구속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 (밀러드 에릭슨)
일반계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것, 특별계시는 일부 사람에게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
"특별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영적 관계이며, 초보적 계시와 종국적 계시로 구분됨"(윌리엄 스티븐슨)
- 초보적 특별계시 = 구약
- 종국적 특별계시 = 신약 (특히 복음서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약됨)
→ 구약보다는 신약이, 신약에서도 복음서가, 복음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의 결정체임
계시의 세 가지 양태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방식으로 유비 (칼 바르트)
- 계시의 주체 = 계시자이신 성부 하나님
- 계시의 행동 = 계시 자체인 성자 하나님
- 계시의 결과 = 계시됨이신 성령 하나님
계시는 하나님 말씀과 동일시됨
- 계시된 말씀 = 예수 그리스도
- 기록된 말씀 = 성경
- "하나님이 당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사건"(데일 무디)
. 특별계시는 하나의 인격적 사건임을 의미
→ 결국 특별계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직접 자신을 특별한 사람들에게 인격적으로 나타내신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음
1) 하나님의 신현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불): 미디안 광야의 호랩산에서 모세를 부르심 (출애굽기 3:5)
마므레 상수리나무 곁에 있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인간의 모습) (창세기 18:2-16)
2) 예수 그리스도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요한복음 1:1)
-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나타내심: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
하나님이 하려는 일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알려주심: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심
3) 하나님의 말씀
세 가지 형태로 말씀하심
- 하나님의 직접적 말씀
- 선지자를 통한 대언의 말씀
- 기록된 말씀 즉 성경
성령이 우리의 눈을 열어줄 때,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별계시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하는 것을 통해 영적인 생명을 얻게 하는 것 (요 20:31)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믿어야 만 함 (롬 10:13-15)
특별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그의 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욥기 38:5-6, 16-18)
인간 지식의 불완전함은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있어야 완전해질 수 있다.
<계시와 역사의 관계>
⁍ 구속사로서의 계시 (오스카 쿨만)
. 구약의 약속 vs. 신약의 성취라는 구도하에서 성경의 계시 사건을 이해
.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
: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이 땅에 구현되었으나 아직 미완으로 재림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
⁍ 보편사로서의 계시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드러내심
. 자기 계시는 역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나며, 역사의 끝에 가서 완전히 드러나게 됨
. 역사적 계시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다.
계시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계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것이다. 그것이 곧 성육신 사건이요 십자가 사건이고 복음의 사건이다.
성경이 완전히 기록되기 이전 시대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셨다. 때로는 천사를 동원해서 때로는 예언자를 통하였고 때로는 방언과 그 통역을 통해서 또 때로는 환청이나 환시를 통해서 당신의 의도를 인간에게 전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은 계시의 결정이었다. 이 구속 사건이 끝난 뒤에도 하나님은 그 사건의 의미를 명백히 밝혀주기 위해 사도들과 초기 복음 전도자들을 통해 여전히 계시를 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을 통해서 완성됨에 따라 더 이상의 새로운 계시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오늘날 성경 이외의 새로운 계시는 필요치 않다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 특별계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새로운 특별계시는 없다.
만일,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1) 성경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셈이 된다. 이는 매우 심대한 신학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2) 계시의 최종적 형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 또한 부인하는 격이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늘날 자칭 '재림 예수'라 불리기를 바라는 자들은 모두 이런 오류를 안고 있는 이단 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종말론적인 완성자이시다. 따라서 계시는 오늘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오늘날 새로운 특별계시는 없다고 봐야 한다.
이상으로 계시론의 정리를 마치며, 내용상 오류 발견 시 언제든 연락을 요청드린다.
아울러 차회에는 성경론을 정리하여 공유할 계획이다.
[참고자료]
1) 김형원, <기독교 신학의 숲 1>
2) 김용복,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3) 김용규,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 문명 이야기)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