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우리 신앙의 기본을 만드는 최고의 선생이며 원천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령한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2-13절)
성경은 우리 신앙의 기본이 되는 창이자 거울이다. 성경을 통해 우리의 죄를 보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본다. 아울러 성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 기준을 갖게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성경은 신앙인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기초 토대가 된다고 하겠다. 이번 호는 그러한 우리 신앙의 토대가 되는 성경과 관련하여 살펴본다.
[성경의 기록 목적] 구원과 교육
▪︎구원: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하고 그를 통해 생명(구원)을 얻게 하고자 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복음 20:31]
▪︎교육: 또한 성경은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기본을 가르치는 목적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밝힌다. |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디모데후서 3:16]
앞의 <계시론>에서 밝혔듯이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다. 김형원은 <기독교 신학의 숲> 1권에서 '기독교는 인간이 먼저 시작한 종교가 아니다. 인간 스스로가 자기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서 득도하고 해탈하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라고 정리한다. 사람이 찾거나 필요에 의해 만든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찾아와 스스로를 나타내시고 그 뜻을 자연과 책을 통해 계시한 종교라는 의미이겠다. 그래서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 책의 종교, 성경의 종교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성경은 BC 15세기부터 AD 90년까지 약 1500년에 걸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다. 성경은 66권의 개별적인 문서들을 모아놓은 책이며, 약 36명의 저자가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2) (개신교 기준으로 분류한 것으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의미한다)
히브리 성서 : 구약성서는 기독교적 용어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이루어진 기독교 경전의 첫 번째 부분을 지칭한다. 그러나 성서학계에서는 중립적인 용어인 '히브리 성서'를 구약성서와 병행해서 사용한다. 3) 히브리 성서는 특정 종교의 관점에 상관없이 세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고대문서를 객관적으로 지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성서는 그 구성상에 차이가 있다.
유대교의 경전인 히브리 성서는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독교의 구약성서는 기원전 3세기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칠십인역(the Septuagint)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즉 개신교에서는 히브리 성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칠십인역에 추가되었던 책들을 '외경(Apocrypha: 숨겨진 또는 비밀의 문서들)'의 지위로 강등하여 별도로 구분하였다. 외경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이지만, 성서의 다른 책들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지는 않는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구약성서는 총 39권에게 공식적인 정경의 지위를 부여하였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이와 달리 70인역에 포함된 7권의 책을 모두 받아들여 총 46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4) (동방정교회에서는 30번에 속해있는 '예레미야의 편지'는 포함(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사람들이 기록한 책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 중에서 온 우주만물의 자연을 통한 '일반계시'와는 구별되게 하나님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사람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제시해 준 '특별계시'에 해당한다.
성경은 저자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누가복음(눅1:14)과 사도행전의 서두(행 1:1-2)에 저자임을 주장하는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역사가들은 그 글을 쓴 이가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다녔던 '누가(Luke)'라고 생각한다. 요한복음, 로마서 등과 같이 다른 성경에서도 유사하게 저자를 스스로 밝히는 책들이 있다. 즉 성경은 '사람들(성경의 기자들)'이 기록한 책인 것이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저자인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inspiration,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감'은 헬라어로 '테오프뉴스토스(theopneustos)'인데 이는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는다, 숨을 내쉰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숨을 내쉬듯이 말씀하셨다는 의미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즉 계시를 통해 당신의 뜻을 보여주신 성경의 원자자(제1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고, 성경기자는 성령의 영감으로 그 계시를 오류가 없도록 기록한 집필자이며, 우리는 성령의 조명에 의해 그 생명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독자인 셈이라는 것이다. 1) 2)
영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을 적절하게 반영한 글들로 번역해 내기 위해 (인간이 이해할 만한 수준이 되도록) 성경의 저자들 및 편집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성령의 사역"이라고 아우구스투스 홉킨스 스트롱은 그의 저서 <조직신학>에서 정리한바 있다. 아울러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특별계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성경은 <완료된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이다. 이는 추가적인 특별계시는 없다는 의미이고 또한 우리에게 성경 형성이라는 과제에의 참여는 더 이상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경의 내용을 취사선택하거나, 재편집하거나 혹은 내용을 변경하여 적용하는 많은 이단들의 행태는 신학적이지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다는 것임을 유념해야 하겠다.
영감(insriration)에 의한 성경 기록 = '완료된' 성령 사역
(추가적인 성경의 변경/변형, 보완, 재편집, 추가 등은 비성서적이며 이단적인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1) 기계적 영감 (구술)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불러준 것을 인간이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 성경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것을 '기계적 영감술'이라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 저자의 특성은 저술 내용에 전혀 반영될 수 없으며, 인간은 단지 기록하는 도구로만 사용되었다는 관점이다.
(관련 근거)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예레미야 1:7]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맡긴다." [예레미야 1:9]
이외 많은 구절에서 하나님의 직접 개입을 의미하는 표현들이 등장 (사 6:8, 겔 2장, 출 19:3-6, 출 20장, 삼상 9:15, 계 14:13)
그러나 성경의 모든 내용을 하나님이 직접 하늘에서 인간들에게 내려주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무리가 있다. 그러한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기계적 영감설은 부분적으로만 맞다고 본다.
2) 유기적 영감 (역동적)
이는 인간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아울러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담은 책을 썼고, 그 저술 과정에서 성령이 영향을 주어 하나님의 의도를 담게 하셨다는 것이다. 비록 인간 저자가 자신의 특성이 담기는 방식으로 성서를 기술하였을지라도 성령의 영감이 작용했음에 따라 이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이러한 이해가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게 약 1500년에 걸쳐 다양한 장소에 살던 36명 이상의 사람들을 통해 성경이 기록되었다. 그 것들은 교회 내에서의 논의와 협의를 통해 정경으로 확정한 것이다.
신구약중간기(BC5세기-AD1세기)의 유대인들은 히브리 성경의 정경화 작업이 이미 일찍이 끝났다고 인정한다. 신약 시대(AD1세기)에는 이미 구약의 정경성이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점은 예수님도 인정하신 바다. 예수님과 극심한 대립을 가졌던 유대인들 간의 정경과 관련한 대립이 전혀 없었으며, 예수님도 구약 성경을 생애 내에 295회나 인용할 만큼 구약성경(히브리 성경)의 신적 권위를 인정하셨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기독교에서는 AD90년 암니아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구약 39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다.
1세기 교회들에서는 다양한 책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중에서 일부의 책들만 성경으로 권위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사용중인 각각의 책을 정경에 포함할지의 여부는 엄격한 두 가지의 기준에 따라 행하여졌다. 5) 2)
▪︎ 사도성: 사도들이나 사도들에 의해 인정받은 사람이 쓴 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서, 바울서신)
사도들이 쓴 책 즉 초대교회에서는 "사도직을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쓰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던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으로 여겼다" 아울러 사도는 아니나 사도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성이 있고 사도들의 영향을 직접 받았던 사람들이 쓴 책(마가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 , 히브리서, 유다서) 등을 수용하였다.
▪︎ 보편성: "해당 책이 1-2세기 교회들이 세워졌던 동방, 서방, 아프리카 교회 등 모든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평가의 기준으로 하였다. 그 보편적 수용의 여부에 따라 정경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 175년 신약 성경의 목록을 작성한 최초의 시도가 있었다 (이를 '무라토리안 경전'이라 한다)
- 367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가 27권의 목록을 제시하였고, 이를 지중해 동쪽 교회가 받아들였다
- 397년 지중해 서쪽 교회를 대표하는 카르타고 공의회에서도 그 목록을 그대로 인정한다.
- 이 이후, 교회는 정경의 문제로 의견이 나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성경의 정경화는 성령의 영감에 의해 쓰인 글과 그것을 공동체가 인식하도록 한 성령의 조명 사역이 연합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교회가 성경의 영감을 고백하게 된 것은 초기 신자들이 성경의 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의 능력과 진리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신앙공동체의 산물이다. 성경의 편찬은 공동체라는 맥락에서 일어났고, 성경의 글들은 공동체의 자기 이해를 나타낸다."
(스탠리 그렌츠)
▪︎ 성경의 권위: 성경 스스로가 어떻게 권위를 가지는가 및 우리는 그 권위를 어떻게 인정하고 있는가 등과 관련한 논의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논제이다. 다만 성경의 권위를 말로 고백하는 것과 삶 속에서 성경의 가르침대로 행동하면서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하겠다. 신앙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고백을 바탕으로 함에 따라 본 고에서는 그와 관련한 별도의 해제는 생략하겠다.
이와 관련한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아래 제시된 서적 등을 통해 별도로 학습할 것을 권한다.
-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 _ 톰 라이트, 새물결플러스
- <역사비평의 도전과 복음주의의 응답> _크리스토퍼 M.헤이스, 크리스토퍼 B. 안스베리, 새물결플러스
- <성서를 열다> _토마스 머튼, 비아 등
성경의 해석권 즉 성경의 해석이 필요하다면,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신앙의 질'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 성경은 재해석되어야 하는가? (현시성 現時性)
• 성경은 누가 해석할 수 있는가? (해석권)
성경의 해석은 '성령의 조명에 의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성경을 통해 깨닫는 활동'이다. 즉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성령의 조명에 의해, 우리가 성경을 읽는 매 순간에 지속적으로 역사하시어 우리에게 알게 하신다는 성령의 사역을 감안하여야 하는 것이다.
조명(illumination)에 의한 성경의 해석 = '지속되는' 성령 사역
(인간에게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한 성령의 역사)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현재의 삶을 위하여 성경 본문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성경을 살아나게 만든다."_스텐리 그렌츠)
관건은 이러한 성령의 사역을 따름에 있어서, 성경을 읽는 개개인에 의해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일 것이다.
성경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재해석되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해석의 기준은 복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즉 복음의 정수(精髓)인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기본 토대로 한 재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성경의 내용은 복음과 문화 부분으로 구분된다. 복음 부분은 시대를 초월한 진리이나 문화 부분은 시대에 따라 재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도 구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셨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수의 율법적 내용을 상대화하거나 대체하셨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마 5:21-48; 분노, 간음, 이혼, 맹세, 보복, 원수 사랑의 말씀 참조) 이는 다분히 기존의 잘못된 관행과 정신을 허물어 성경의 말씀을 바로 세우는 작업의 일환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시대의 세계관이 반영된 성경 속의 역사, 과학, 지리, 문화적 요소 등은 기록될 당시의 시대상을 참조는 하되, 현시점의 환경과 상황 등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함을 의미한다. 성경은 '신성한 책'임과 동시에 '인간의 책'임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성경 해석에 있어서 다음의 사항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목적과 수단이 다뀌어서는 안 된다. 어는 특정 교리를 지지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 해석은 성경 그 자체의 메시지에 충실해야 한다. 가령 신학적 입장이나 교리에 따른 '~주의'를 해석의 틀로 사용할 경우, 성경이 한낱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신학체계나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 등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전이해(pre-understanding)에 기반하여 성경을 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해석의 객관적 기준이나 절대적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겠다.
성경 해석권은 특정인에게 제한될 수 없다. 성경 해석의 권한이 교황이나 신학자들 혹은 목회자들에 의해 독점되는 것이 교리의 통일성과 이단사상의 침투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엘리트 의식과 전제주의(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다른 세계관들의 결함을 드러내려고 시도하는 것)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특정 시점에서 해석된 교리가 모든 시대의 규범으로 작용하는 안된다. 이는 오히려 해석된 것을 성경 그 차체보다 우월한 위치에 올려놓는 매우 위험한 해석 방식임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모든 시대에 모든 그리스도인에 의해 자유롭게 해석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지금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또 그는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신 것은 다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령이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요한복음 16:12-15]
그러한 모든 시대에 모든 그리스도인에 의한 자유로운 성경 해석 방식이 시대를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조명을 신뢰하는 일일 것이다. 모든 신자는 '성령의 조명'을 받아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 이는 '성경 해석의 주체가 성경 자체이고 믿는 자 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존 머튼)이다. 성경 해석권이 특권층에 의해 독점되면 교회는 부패한다. 교회 개혁의 신호탄은 성경해석권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다고 선언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였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한국 교회의 문제점]
• 목사의 설교권 독점 → 성경 해석의 독점:
한국은 다분히 목사 중심의 설교로 인해 신자들의 신앙 또한 목사에게 지나치게 의존되어 있다는 데 그 문제점이 있다. 1) 무교회주의자였던 김교신(1901-1945, 성서조선 창간 및 주필)은 '철저한 주체적 성경 읽기가 한국 교회의 병폐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었다. 그의 주장이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하겠다. 특히 '철저한 주체적 성경 읽기'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교회의 교권주의나 사제주의에 의해 이러한 성경 해석의 자유가 제한되는 현실은 타파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자 개개인 즉 회중 주체의 성경 읽기와 해석하기가 정착되어야만 현재의 교회의 문제점이 해결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성경무오설(無誤) = 무오(無誤, inerrancy): 문자적으로 '잘못'됨이 없다
성경무류설(無謬) = 무류(無謬, infallibility): 기록 목적에 '어긋남'이 없다.
▪︎성경을 대하는 두 가지 입장
완전무오설 (Complete inerrancy)
- 모든 주제에 적용된다.
- 성서 원본에만 적용되는 개념이다.
- 외견상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오류)잘못이 없다.
- 현재의 인간 인식 및 지식으로는 부합하지 않은 듯 보이나 언젠가는 설명이 될 것이다.
제한무오설/무류설
- 신앙과 실천 및 기록의 목적에 해당하는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오류가 있으나 기록 목적에는 부합
- 사본까지 적용된다.
- 온전한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지만 또한 온전히 인간이 기록한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
이러한 주장들을 접하면서 우리가 견지해야 할 입장 즉 성경을 읽으면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성경의 저자들은 그들이 속한 시대의 한계 아래에서 성경을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계시와 영감도 인간 저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일반적인 지식의 범위 내에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자적으로 오류가 없다는 입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용상에도 상호 차이를 보이는 내용들이 존재한다. 이는 대략 1500여년에 걸쳐 작성된 문서 즉 다양한 시점과 장소에서의 저술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성경의 오류 부분은 그 모든것을 포용하고 있는 성경 저자 및 편집자들의 다양성 수용의 관점으로 읽을 수 있겠다. 스스로의 오류 있음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한 편집자들의 관점은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도 커다란 은혜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성경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삶과 신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나 가치가 성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의 권위를 고백하고 성경의 울타리 안에서 신앙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라 하겠다. 무엇보다도 성경 해석의 자유가 차단되지 않도록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 읽기와 해석하기의 철저한 주체적 실행'을 염두에 둔 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교회 내에서도 '질문하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기대한다. 성경해석에서의 목회자와 신자와의 차이가 발생될때는 설령 그것이 설교에서 인용된 것일지라도 신자가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다. 주체적 신앙 생활을 기원한다.
이상으로 성경론의 정리를 마친다. 내용상의 오류나 문의 사항이 있을 시는 문의를 바란다.
차기에는 신론 즉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참고자료]
1) <회중 주체적 조직신학> _ 김용복, 하기서원
2) <기독교 신학의 숲 1> _ 김형원, 대장간
3) <신학이란 무엇인가> _ 알리스터 맥그라스, 복있는 사람
4) <구약성서 탐구> _ 버나드 W. 앤더슨, CLC
5) <성서의 형성) _ 존 바턴, 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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