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역사적 변천과 주요 학파 분석
지난 5장에서는 기원후 1~2세기의 성경 저자들의 과거 문서 해석의 방식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회에는 기원후 3~13세기에 걸친 기독교 성서 해석의 발전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초기 라틴 서방의 교부들로부터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학파의 대립, 그리고 중세 스콜라주의에 이르기까지 성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론의 핵심 변화와 주요 인물들의 기여를 다루고자 합니다.
1.
초기 라틴 서방의 해석자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3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는 라틴 서방 교부들이 어떤 방식으로 성서의 권위를 수호하고, 동시에 교회의 전통을 형성해 갔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시기는 단순한 신학적 사유의 시대가 아니라, 정경과 해석, 그리고 교회의 정체성이 함께 정립되던 결정적 전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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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히폴리투스(Hippolytus, 약 170-236)
3세기 라틴 서방 교회의 성서 해석 전통을 이해할 때, 우리는 테르툴리아누스와 더불어 반드시 히폴리투스라는 인물을 주목해야 합니다. 히폴리투스는 3세기 초 로마 교회에서 활동한 가장 이른 시기의 주요 성서 해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일부 학자들은 그를 초기 로마 교회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먼저 그의 역사적 위치를 보겠습니다. 그는 로마의 주교 칼리스투스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대립하며, 스스로 경쟁 주교로 선출될 정도로 강한 교리적 입장을 지녔던 인물입니다. 이는 그의 신학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교회 정통성 논쟁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제 그의 해석학적 특징을 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을 사용합니다. 이 점에서 그는 유스티누스와 이레네우스의 전통을 계승합니다.
둘째, 그는 구약성서의 권위를 강하게 옹호합니다. 초기 교회 내 일부 흐름이 구약을 경시하던 상황 속에서, 히폴리투스는 구약이 기독교 신앙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셋째, 그는 사도적 전승, 즉 ‘믿음의 규범’을 중시합니다. 성서 해석은 개인의 사유가 아니라 교회의 전통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넷째, 그는 매우 활발한 주석 작업을 수행한 초기 주석가입니다. 그의 주석 범위는 상당히 넓습니다.
- 창세기 (야곱 이야기), 신명기 33장 (모세의 축복), 사무엘상 17장 (다윗과 골리앗), 아가 1–3장, 다니엘서, 요한계시록 19–22장 등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예언서와 묵시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관심은 그의 저작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에 관하여』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며, 마가복음 13장, 데살로니가후서 2장, 요한계시록 12장과 같은 종말론적 본문을 집중적으로 해석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덧붙이겠습니다.
그의 주석은 헬라어 성경 본문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즉, 그는 라틴 서방 인물이지만 여전히 그리스어 전통 위에서 작업한 과도기적 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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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약 160-225)
라틴 서방 교회의 성서 해석 전통에서 가장 강렬하고 논쟁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바로 테르툴리아누스입니다.
그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법학과 수사학을 배운 지식인이었고, 약 40세 무렵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평생을 신앙을 방어하는 변증가로 살아간 인물입니다. 후기에는 몬타누스주의에 기울게 되며 더욱 엄격한 신앙 노선을 취합니다.
그의 성서 해석의 핵심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그는 성서를 교회의 소유물로 이해합니다. 성경은 개인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책이 아니라, 교회의 신앙 안에서 읽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는 성서를 통해 이단과의 전면전을 수행합니다. 특히 영지주의와 마르키온을 강하게 비판하며, 그들이 성서를 왜곡한다고 주장합니다.
셋째, 그는 구약성서의 가치를 매우 강하게 옹호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며 구약은 그리스도를 미리 증언하는 계시라는 것입니다. 즉, 구약과 신약의 단절을 주장한 마르키온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넷째, 그의 해석은 상당히 문자적 성향을 띱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후회”나 “분노”와 같은 표현을 알레고리로 약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는 성서를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와 직접 결합시킵니다. 즉, 부활 교리, 은혜, 하나님의 유일성 등 이 모든 것을 성서로부터 논증합니다. 즉, 성경은 그의 신학 체계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입니다.
그의 글은 타협이 없고, 매우 단호하며, 논쟁적입니다.
그는 자신이 성서를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확신하며, 그 해석이 곧 정통 신앙과 일치한다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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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Ambrose of Milan 약 338-97)
이제 4세기 라틴 서방 교회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를 만나게 됩니다.
이 인물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목회자이자 설교자였다는 점입니다.
그는 로마에서 교육받은 엘리트였으며, 민중의 지지를 통해 밀라노의 주교로 선출되었고, 헬라어와 라틴어를 모두 구사하며 필로, 오리게네스, 아타나시우스, 바실리우스 등 동방 해석 전통까지 폭넓게 흡수한 인물입니다.
그의 성서 해석은,
첫째, 그의 해석은 대부분 설교에서 출발합니다. 즉, 학문적 주석이 아니라 말씀을 선포하기 위한 해석입니다.
둘째, 그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 신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즉 성서 해석은 곧 목회적 실천을 위한 도구입니다.
셋째, 그는 성서를 통해 교리와 신앙을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창조를 통해 부활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창세기 본문에서 삼위일체의 흔적을 읽어내며,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인내와 덕목을 가르칩니다. 또한 시편, 이사야, 아가서 등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합니다.
넷째, 그의 해석은 균형을 갖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모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교리, 윤리, 영성을 통합하여 신자의 삶에 직접 적용합니다. 즉, 성서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삶을 형성하는 영적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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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암브로시아스테르
4세기 서방 교회의 또 하나의 중요한 주석 전통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암브로시아스테르입니다.
이 인물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정확한 정체가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먼저 그의 역사적 위치를 보겠습니다.
그는 로마 주교 다마수스 시대(4세기 후반)에 활동했고, 로마를 중심으로 사역했으며, 무엇보다 바울 서신 전체에 대한 주석을 남긴 인물입니다
이 점에서 그는 서방 교회의 중요한 바울 주석가로 평가됩니다.
첫째, 그는 매우 신중하고 체계적인 주석가입니다. 과장이나 과도한 알레고리를 피하고, 본문 자체를 충실하게 해석하려 합니다.
둘째, 그는 문자적 의미를 존중합니다. 성경은 먼저 그 본래 의미, 즉 텍스트 자체의 뜻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셋째, 그는 단순히 문자에 머물지 않고 역사적·언어적 맥락을 함께 고려합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균형 잡힌 해석 태도입니다.
넷째, 그는 유대교 전통에 대한 이해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 본문의 배경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기여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그는 교회 구조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감독과 장로가 동일한 서임을 공유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초기 교회 직제 이해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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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히에로니무스 (Jerome, 약 340-420)
이제 4세기에서 5세기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성서 해석과 텍스트 연구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 히에로니무스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번역가이자 텍스트 비평가, 그리고 주석가입니다.
그는 필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와 같은 알렉산드리아 전통의 영향을 깊이 받았지만, 동시에 디오도루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와 같은 안티오키아 학파의 전통도 함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즉, 그는 양 전통을 모두 소화한 통합적 학자였습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당시 드물게 히브리어를 이해한 학자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텍스트를 비교하며 성경 본문을 정립했고, 결국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를 번역합니다. 이 작업은 서방 교회에 결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둘째, 그는 방대한 주석 작업을 수행합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어려운 본문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의 해석만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전통과 가능성을 독자에게 제시합니다. 이 점에서 그는 매우 학문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셋째, 그의 해석 방법을 보겠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문자적·역사적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그 이후에야 필요할 경우 영적·알레고리적 의미로 나아갑니다. 즉, 알렉산드리아의 영적 해석과 안티오키아의 문자적 해석 이 두 전통을 질서 있게 결합한 것입니다.
넷째, 그의 성서관을 보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성경 해석을 사랑의 노동이면서도 위험하고 대담한 작업이라고 인식합니다. 또한 번역에 있어서도 “단어가 아니라 의미를 번역한다”고 말하며, 본문의 본질을 전달하는 데 집중합니다.
즉 그는 고대 교회 성서 해석의 결정적 종합자였습니다.
2.
알렉산드리아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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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오리게네스(Origen, 약 185-ca. 254)
이제 고대 교회 성서 해석 전통의 출발점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인 오리게네스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인물을 이해하는 것은 곧 초기 기독교 성서 해석 전체를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중심인물이며, 신학자, 변증가, 설교자, 텍스트 비평가, 주석가를 모두 겸한 다방면의 천재적 학자였습니다.
그의 저작 대부분은 성서 해석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첫째, 그는 성서 본문 연구에 있어 혁명적인 작업을 수행합니다. 바로 헥사플라(Hexapla)입니다. 히브리어 원문, 헬라어 음역, 여러 번역본을 나란히 배열하여 성경 텍스트를 비교·정리한 방대한 작업입니다. 이는 성서 비평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그의 해석학의 핵심을 보겠습니다.
그는 성경을 세 가지 층위로 이해합니다. 문자적 의미(몸), 도덕적 의미(혼), 영적 의미(영), 그리고 진정한 해석은 이 영적 의미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셋째, 그는 문자적 의미를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문자 속에는 모순이나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가 아니라, 독자를 더 깊은 의미로 이끄는 장치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는 자주 알레고리적 해석을 사용합니다.
넷째, 그의 해석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목회적·변증적 목적을 갖습니다. 독자의 영적 성숙,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에 대한 변증 및 구약성서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 등이 그의 해석의 목표입니다.
다섯째, 그의 사상적 특징을 보겠습니다. 그는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 로고스(말씀)를 영적 세계의 중심으로 이해하며, 그리스도의 선재성과 영원성을 강조합니다. 다만 이러한 사유는 후대에 일부 논쟁과 비판을 낳기도 했습니다.
즉, 그는 해석을 통해 독자를 영적 진리로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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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아타나시우스 (Athanasius, 약 296-373)
4세기 교부 신학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아타나시우스입니다.
그는 단순한 성서 주석가가 아니라, 정통 교리를 수호한 결정적 신학자였습니다.
먼저 그의 역사적 위치를 보겠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육받고,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이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서 활동합니다
특히 그는 아리우스주의에 맞서 싸우며, “성부와 동일 본질homoousion”이라는 교리를 끝까지 옹호한 인물입니다. 이 점에서 그는 니케아 신조 형성의 기초를 놓은 신학자라고 평가됩니다.
이제 그의 성서 해석 태도를 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성서 주석가라기보다 신학자이자 변증가입니다. 즉, 성서를 체계적으로 해설하기보다는 교리를 방어하고 정립하기 위한 도구로 성서를 사용합니다.
둘째, 그는 성서를 해석할 때 전체 성경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개별 구절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일관성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는 해석의 기준으로 ‘믿음의 규범regula fidei’을 제시합니다. 성경 해석은 교회의 신앙 전통과 일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넷째, 그의 해석은 철저히 반(反)아리우스 논쟁 속에서 전개됩니다. 예를 들어, 잠언 3:19의 “지혜”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하여 그리스도의 선재성(창조 이전 존재)을 논증합니다.
또한 그는 아리우스파가 성경을 오용한다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성경을 부정하면 기독교인이 아니며 성경을 인정한다면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해석적 특징을 한 가지 더 보겠습니다.
그는 오리게네스보다 문자적 의미(“몸의 의미”)를 더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구약 전체를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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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디디무스 맹인(Didymus the Blind, 약 313-397)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해석 전통을 계승한 중요한 인물, 디디무스 맹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인물의 위치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오리게네스 전통에 서 있는 대표적 성서 해석자이며 니케아 신앙을 옹호한 정통 신학자이자 동시에 금욕주의 운동의 지도자였습니다
다만 한 가지 특징적인 점은, 그가 오리게네스와 너무 밀접하게 연결된 탓에 많은 저작이 후대에 전승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1941년에 일부 저작이 재발견되면서 그의 사상이 다시 조명됩니다.
이제 그의 해석학적 특징을 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철저히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전통을 계승합니다. 즉, 성경은 단순한 문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둘째, 그는 해석을 두 층위로 구분합니다. 문자적 의미와 영적 의미(상징적·비유적 의미)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독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영적 성숙에 이르는 해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셋째, 그의 해석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목회적이고 변증적인 목적을 지닙니다. 즉, 독자의 신앙 성장과 이해를 돕는 것이 핵심입니다.
넷째, 그는 해석 논쟁에서도 적극적이었습니다. 특히 안티오키아 학파와 대립하며, 그들을 “문자주의자”라고 비판합니다. 이는 곧 영적 해석 vs 문자 중심 해석이라는 고대 교회의 중요한 갈등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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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Cyril of Alexandria, 약 378-444)
이제 알렉산드리아 전통이 절정에 이르는 지점에서 우리는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단순한 주석가가 아니라, 니케아 신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결정적 기독론 신학자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로서 교회 전체의 신학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먼저 그의 해석학적 기반을 보겠습니다.
그는 오리겐 전통 위에서 훈련된 인물로, 성경을 읽을 때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 그 이면의 더 높은, 영적 의미를 추구합니다
특히 구약 해석에서는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 읽기를 수행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의 신약 해석은 오리게네스 보다 훨씬 절제되고 신중한 방식을 취합니다. 즉, 무분별한 알레고리보다는 교리적 균형 속에서 해석을 진행합니다.
이제 그의 신학적 갈등을 보겠습니다.
그의 시대는 단순한 해석 방법의 논쟁을 넘어서, 기독론 자체를 둘러싼 격돌의 시대였습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네스토리우스입니다. 네스토리우스는 안티오키아 학파 전통에 서 있었고 그의 스승은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였습니다
키릴루스는 이 전통을 강하게 비판하며, 그들의 기독론을 정면으로 공격합니다. 결국 이 논쟁은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결론이 내려지게 됩니다. 여기서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신학은 공식적으로 정죄됩니다.
3.
안티오키아 학파 — 문자적 해석의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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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타르수스의 디오도루스 (Diodore of Tarsus, 약 330-90)
이제 성서 해석의 또 하나의 거대한 축, 안티오키아 학파의 출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타르수스의 디오도루스입니다.
이 인물은 일반적으로 안티오키아 학파의 창시자로 평가됩니다.
먼저 그의 문제의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오리게네스를 중심으로 한 알렉산드리아 해석 전통에 대해 분명한 비판을 제기합니다. 그 핵심은 이것입니다.
성경 해석이 독자의 관심에 끌려가면, 본문이 해석자의 거울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선언합니다. “우리는 알레고리가 아니라 역사적 이해를 택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가 말하는 “문자적” 또는 “역사적” 해석은 단순한 문자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핵심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기록된 텍스트이며, 저자와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역사적-문맥적 해석의 기초를 제시한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알레고리를 완전히 거부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중요한 구분을 제시합니다. 즉
- theoria (정당한 영적 통찰)과
- allegory (자의적 해석)을 말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영적 해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역사적 기반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구분은 매우 미묘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는 안티오키아 해석 학교의 지도자였고, 이후 타르수스의 감독이 되었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에 기여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기독론 논쟁 속에서 그는 테오도루스와의 연관성 때문에 의심을 받기도 했고, 일부에게 네스토리우스적 경향으로 오해받으며 결국 많은 저작이 소실되기까지 이릅니다. 현재는 시편 주석 일부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디오도루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알레고리 중심 해석에 대응하여 역사적·문맥적 해석 원리를 확립하고 영적 해석조차도 역사적 토대 위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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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 (Theodore of Mopsuestia 약 350-428)
안티오키아 학파의 해석 전통을 완성 단계로 끌어올린 인물이 바로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입니다.
그는 디오도루스의 제자이며,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친구였고 약 10년간 안티오키아 학파에서 훈련받은 뒤 감독으로 활동한 대표적 학자입니다.
먼저 그의 신학적 위치를 보겠습니다.
그는 기독론 논쟁 속에서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에 의해 네스토리우스와 함께 비판을 받았고, 사후에 이단으로 정죄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가 실제로 네스토리우스와 동일한 입장이었는지는 학문적으로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라고 주장했지만, 두 본성이 어떻게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체계화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의 성서 해석의 핵심을 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철저히 성경 중심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형이상학적 사변을 배제하고, 가능한 한 성경 자체의 표현 안에서 신학을 전개하려 합니다.
둘째, 그는 매우 체계적이고 역사적인 주석가입니다. 그의 관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자와 연대, 문헌의 구조와 통일성, 역사적 배경 그리고 정경성과 영감 등입니다. 이 점에서 그는 현대 역사비평과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보여줍니다.
셋째, 그의 해석 원리를 보겠습니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께 어울리지 않는 의미나 인간에게 무익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봅니다. 이 전제 아래에서 그는 해석을 매우 신중하게 진행합니다.
넷째, 그는 알레고리에 대해 절제된 입장을 취합니다. 알레고리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역사적 의미를 압도하는 것을 강하게 경계합니다. 그가 말하는 관점은 자의적 알레고리가 아니라 절제된 유형론(typology)에 가깝습니다.
다섯째, 그의 기독론적 해석을 보겠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본문에서 과도한 그리스도 중심 해석을 피하지만, 시편 2편, 110편처럼 신약에서 명확히 그리스도적으로 사용된 본문에 대해서는 기독론적 해석을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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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John Chrysostom, 약 347-407)
안티오키아 학파의 성서 해석 전통을 실제 설교와 목회 현장에서 구현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입니다. 그는 “황금의 입Chrysostom”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 교회에서 가장 뛰어난 설교자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디오도루스에게 수학하며 안티오키아 해석 전통을 계승했고,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와 동료 관계였으며, 안티오키아 교회의 장로로서 설교를 통해 명성을 얻습니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로 임명되지만, 교회와 황실의 부패를 개혁하려다 정치적 갈등 속에서 추방되고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제 그의 해석학적 특징을 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알레고리 해석을 강하게 거부합니다. 특히 오리게네스 전통을 비판하며,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둘째, 그는 철저히 본문의 역사적 의미와 저자의 의도에 집중합니다. 장르, 문체, 표현 방식 등 이 모든 요소를 세밀하게 분석합니다. 이 점에서 그는 안티오키아 학파의 전형적인 해석자입니다.
셋째, 그의 주석은 매우 독특한 형태를 가집니다. 그는 간결한 본문 해설과 설교적 적용을 결합합니다. 즉, 주석과 설교가 하나로 통합된 형태입니다.
넷째, 그는 성경을 해석할 때 본문의 중심 메시지를 정확히 포착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 서신의 논리 구조, 십자가의 의미, 복음의 통일성 등 이러한 핵심을 간결하게 드러냅니다.
다섯째, 그의 해석은 항상 적용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적용이 본문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해석할 때도, 교훈을 제시할 때도 그렇듯 항상 본문에 근거합니다.
이어 그의 해석적 태도를 살펴봅니다.
그는 성경을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울려오는 나팔 소리”로 이해합니다.
즉, 성경은 지금 여기에서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그는, 알레고리를 배제하고 역사적·문맥적 해석을 철저히 수행하며 주석과 설교를 결합하고 본문에 충실한 적용을 제시한 초기 교회의 가장 뛰어난 설교형 주석가입니다.
따라서 그의 해석학은 한마디로 “본문에 충실하면서도 삶으로 이어지는 성서 해석”이라고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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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키루스의 테오도레토스 (Theodoret of Cyrrhus, 약 393-460)
안티오키아 학파 전통의 후기 대표자로서 중요한 인물이 바로 키루스의 테오도레토스입니다. 이 인물은 단순한 주석가가 아니라, 기독론 논쟁의 한복판에서 활동한 성서 해석자였습니다.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교육받고 수도생활을 시작한 뒤 시리아 키루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며, 네스토리우스의 친구이자 조언자로 활동합니다. 이로 인해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와 갈등을 빚게 되고, 기독론 논쟁 속에서 큰 비판을 받습니다. 그 결과 그의 저작 일부만 전승됩니다.
이제 그의 해석학적 특징을 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기본적으로 역사적·문자적 해석을 중심에 둡니다. 이는 안티오키아 학파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것입니다.
둘째, 그는 다양한 해석 전통을 참고합니다. 오리게네스, 타르수스의 디오도루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 등 즉, 그는 단일 전통이 아니라 여러 해석 유산을 종합적으로 활용한 인물입니다.
셋째, 그는 언어와 본문에 매우 주의 깊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2절의 “ruach”를 “영”이 아니라 “바람”으로 해석하는 등, 본문의 실제 의미를 신중하게 분석합니다.
넷째, 그의 해석은 기본적으로 절제되어 있지만,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습니다. 아가서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해석하고 필요할 경우 비유, 유형론, 제한적 알레고리를 사용합니다. 즉, 그는 역사적 해석을 중심에 두되, 보조적으로 영적 의미를 인정합니다.
다섯째, 그의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는 해석자가 자신의 생각을 본문에 투사하는 것을 강하게 경계합니다. 즉, 성경은 해석자의 도구가 아니라 해석자가 따라야 할 기준입니다.
테오도레토스는 “역사적 토대 위에 절제된 영적 의미를 더하는 성서 해석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4.
중세로의 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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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e of Hippo, 354-430)
이제 교부 시대 성서 해석과 신학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 아우구스티누스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인물은 주석가를 넘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북아프리카 출신으로 어머니 모니카의 신앙과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통해 회심합니다
초기에는 마니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회심 이후에는 기독교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게 됩니다.
그의 성서 해석의 핵심을 살펴봅니다.
첫째, 그는 성경 해석에서 “믿음의 규범”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본문이 모호할 때는 교회의 신앙 전통이 해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는 해석의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문자적 의미, 비유적 의미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자의 살을 먹으라”(요 6:53)는 말씀은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비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셋째, 그는 성경 해석의 목적을 분명히 합니다. 성경 이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누리는 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즉, 해석은 지적 작업이 아니라 영적 지향성을 가진 행위입니다.
넷째, 그의 해석은 균형을 갖습니다. 그는 초기에는 알레고리를 사용했지만, 점차 문자적·역사적 의미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해석은 알레고리, 역사적 해석, 신학적 적용 이 세 요소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다섯째, 그는 성경의 권위를 매우 강하게 강조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성경의 권위가 흔들리면, 믿음도 무너진다.” 따라서 성경은 신학과 신앙의 절대적 기준입니다.
여섯째, 그는 해석자의 태도까지 강조합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훈련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과 겸손이 필요합니다. 또한 해석자는 반드시 정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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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그레고리우스 1세 (Gregory the Great, 약 540-604)
이제 교부 시대를 넘어 중세로 이어지는 해석 전통의 관문에서 우리는 그레고리우스 1세를 만나게 됩니다.
이 인물은 신학자 이자, 중세 성서 해석 전통을 형성한 결정적 연결고리입니다.
먼저 그는 로마의 교황으로서 교회를 이끌었고,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내어 주며 수도자가 되었으며, 실천적이고 목회적인 삶을 강조한 인물입니다. 그의 사역은 특히 영국 선교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첫째, 그는 오리게네스의 전통을 계승합니다. 특히 다층적 해석 구조를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역사적 의미, 도덕적 의미, 영적(신비적) 의미 등 이 세 층위는 그의 대표 저작 『욥기 도덕적 해석』에서 잘 드러납니다.
둘째, 그는 모든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읽습니다. 구약까지 포함하여 성경 전체를 그리스도를 향한 증언으로 이해합니다.
셋째, 그의 해석은 매우 실천적입니다. 그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설교, 영적 지도, 신앙 교육을 위한 해석을 수행합니다. 그의 복음서 설교 40편이 이를 잘 보여줬다는 평가입니다.
넷째, 그는 중세 해석의 핵심 틀을 정립합니다. 바로 성경의 사중적 의미(fourfold sense)입니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자적 의미: 실제로 일어난 사건
알레고리적 의미: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도덕적 의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나고기적(anagogical, 궁극적·영적·종말론적 의미를 읽어내는 방식)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 “예루살렘”은 역사적 도시이면서, 교회를 의미하고, 동시에 천상의 완성을 가리킨다는 겁니다
다섯째, 그의 역사적 의미를 보겠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새로운 해석을 창조하기보다는, 오히려 교부들의 해석 전통—특히 오리게네스—을 체계화하고 전달한 인물입니다. 그 결과 그는 이시도르, 베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중세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따라서 그의 해석학은 한마디로 “성경을 다층적으로 읽고 삶과 구원으로 연결하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5.
중세의 성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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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베다(The Venerable Bede of Jarrow, 673-736)
이제 중세 초기 서방 교회의 대표적 성서 해석자로 베다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영국 노섬브리아 지역의 베네딕트회 수도사로, 평생을 수도원 안에서 성경 연구에 전념한 학자였습니다. 그의 대표 저작은 『영국 교회사』입니다.
그의 해석학적 특징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그는 철저히 교부 전통 위에 서 있는 해석자입니다. 특히 히에로니무스, 오리게네스, 필로와 같은 전통을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둘째, 그는 성경을 다층적 의미 구조로 이해합니다. 문자적 의미, 교회적·신앙적 의미, 도덕적 의미, 그리스도론적 의미 등 이러한 사중적 해석을 실제 주석에 적용합니다.
셋째, 그의 주석 방식은 매우 체계적입니다. 그는 성경을 절별(verse-by-verse)로 해석하며, 본문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방식입니다.
넷째, 그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는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영국 교회를 교부 전통과 로마 교회의 흐름 안에 연결시키려 했습니다.
베다는 “교부 전통을 계승하여 교회를 세우는 성서 해석가”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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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요크의 알쿠인 (Alcuin of York, 약 735-804)
중세 초기 성서 해석 전통에서 교육과 텍스트 정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요크의 알쿠인입니다.
이 인물은 무엇보다 교육자였습니다. 그의 공헌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교부들의 방대한 저작을 직접 접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교부 문헌을 발췌·정리하여 제공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성경 주석을 구성함으로써, 교부 전통을 교육 현장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둘째, 그는 성경 텍스트 자체를 정비했습니다. 성경 본문의 오류를 수정하고 표준화된 텍스트를 마련하여 이를 800년, 샤를마뉴의 대관식 때 헌정합니다. 이 작업은 중세 서방 교회의 성경 사용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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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클레르보의 베르나르 (Bernard of Clairvaux, 1090-1153)
중세 성서 해석 전통에서 영성과 신비주의의 정점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입니다.
그는 수도원장으로서 영적 지도자이자 설교자였습니다.
그의 성서 해석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첫째, 그는 오리게네스 전통을 계승하여 알레고리적 해석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특히 『아가서 설교』에서 그 구조가 잘 드러납니다.
- 문자적 의미: 솔로몬의 사랑 이야기
- 알레고리적 의미: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 도덕적 의미: 그 관계에서 파생되는 신자의 삶
둘째, 그의 해석은 철저히 영성 중심적입니다. 그는 요한복음과 바울 서신을 깊이 연구하며, 특히 “사랑”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둡니다. 핵심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
셋째, 그는 신학적 논쟁에도 참여합니다. 동시대 인물인 피에르 아벨라르를 비판하며, 이성 중심 신학에 대해 경계의 입장을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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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생 빅토르의 휴 (Hugh of St. Victor, 1096-1141)
중세 성서 해석 전통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생 빅토르의 휴입니다.
이 인물은 단순한 주석가가 아니라, 신학·교육·성서 해석을 통합한 학자였습니다.
첫째, 그는 성경을 세 가지 층위로 이해합니다. 역사적 의미, 알레고리적 의미, 도덕적 의미(트로폴로지) 그리고 이 모든 해석은 결국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둘째, 그는 특히 역사적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당시 전통이 영적 해석에 치우쳐 있을 때, 그는 다시 본문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셋째, 그의 중요한 통찰이 있습니다. 성경의 겉모습은 때로 “하찮거나 거칠게 보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으므로 겸손하게, 그리고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그의 영향력도 중요합니다. 그의 해석 전통은 생 빅토르의 앤드류, 생 빅토르의 리처드와 같은 후대 학자들에게 이어지며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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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피터 롬바르드 (Peter Lombard, 약 1100-1161)
이제 중세 성서 해석이 수도원 중심에서 대학 중심으로 전환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피터 롬바르드를 만나게 됩니다. 이 인물은 스콜라 신학의 기초를 세운 핵심 인물입니다.
그의 특징을 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교부 전통—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을 기반으로 성경을 해석합니다. 또한 생 빅토르의 휴, 『글로사 오르디나리아』 전통의 영향을 받아 성경 주석을 발전시킵니다.
둘째, 그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것입니다. 그는 성경 해석을 경건 중심이 아니라 학문적·체계적 접근으로 전환합니다. 즉, 질문을 던지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교리를 정리하는 방식입니다.
셋째, 그의 해석 방법을 보겠습니다. 시편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본문 전체의 구조를 고려하며 겉으로 보이는 모순까지 분석합니다. 또한 바울 서신 해석에서는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특정 구절을 상황적 발언으로 이해합니다.이 점에서 그는 매우 현대적인 통찰을 보여줍니다.
넷째, 그의 관심은 분명합니다. 그의 해석은 단순한 묵상이 아니라 교리적·윤리적 정립을 목표로 합니다.
다섯째, 그의 역사적 의미를 보겠습니다. 그는 수도원적 해석에서 벗어나 대학 중심의 스콜라 신학 시대를 여는 인물입니다. 특히 그의 『명제집(Sentences)』은 중세 신학 교육의 표준 교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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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스티븐 랭턴 (Stephen Langton, 약 1150-1228)
중세 후기 성서 해석과 대학 신학의 확산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이 바로 스티븐 랭턴입니다.
이 인물은 단순한 신학자를 넘어, 정치와 교회, 학문을 연결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캔터베리 대주교로서영국의 귀족들과 함께 왕권에 맞섰고 그 결과 마그나 카르타 성립에 기여합니다. 또한 한때 추방되어 파리에 머무르며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학문적 특징을 살펴봅니다.
첫째, 그는 성경을 교리와 목회에 직접 연결합니다. 즉, 성경은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신학의 기초이며교회의 실제 삶을 이끄는 기준입니다.
둘째, 그는 대학 신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파리 대학 형성에 관여하고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성서 연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즉, 성서 해석이 유럽 학문 체계 속으로 확장되는 과정에 기여한 인물입니다.
셋째, 그는 전통적인 해석 틀을 유지합니다. 그 역시 성경의 사중적 의미를 가르칩니다. 문자적, 알레고리적, 도덕적, 아나고기적 의미 등 이 틀을 통해 성경을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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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보나벤투라 (Bonaventura, 약 1217-84)
중세 스콜라 신학과 영성 전통을 함께 아우르는 중요한 인물이 바로 보나벤투라입니다.
이 인물은 수도원과 대학,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한 통합적 신학자였습니다. 그의 해석학적 특징을 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성경을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계시로 이해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의 강과 같아서, 여러 다양한 흐름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의 해석은 깊이 신학적입니다. 특히 삼위일체, 성령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성경을 읽습니다. 즉, 성경 해석과 교리 신학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셋째, 그는 성경의 다양성도 인정합니다. 율법서, 역사서, 지혜문학, 예언서 등 각 장르의 고유한 기능을 구분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합니다.
넷째, 그는 성경을 거울이자 사다리로 이해합니다.
거울: 자신을 비추는 도구
사다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즉, 성경은 이해를 넘어서 영적 상승의 통로입니다.
다섯째, 그는 해석의 다층성을 강조합니다. 성경은 하나의 의미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텍스트이며,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과도 연결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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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5-74)
중세 라틴 교회 신학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 토마스 아퀴나스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인물은 신학을 학문으로 완성한 결정적 사상가입니다. 먼저 그의 기본 입장을 보겠습니다.
그는 성경의 저자를 성령 하나님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성경이 지닌 문학적 다양성과 인간 저자의 역할을 함께 인정합니다. 즉, 신적 영감과 인간적 표현을 동시에 존중합니다.
이제 그의 해석학의 핵심을 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성경 해석에서 문자적 의미를 절대적 기초로 둡니다. 모든 교리는 문자적 의미 위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으며 영적 의미는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야 합니다
둘째, 그는 전통적인 사중적 해석을 인정하지만 이를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문자적 의미: 기초와 도덕적·영적·종말론적 의미: 보조적 적용 즉, 해석의 중심은 언제나 텍스트 자체입니다.
셋째, 그는 성경 해석에 철학적 도구,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적극 활용합니다.
- 목적(최종 원인): 하나님의 뜻
- 수단(효율 원인): 인간 저자
이처럼 그는 성경 해석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구조 속에서 이해합니다.
넷째, 그의 주석 방식은 매우 현대적입니다. 그는 역사적 배경, 저자와 독자의 상황, 문학적 구조를 분석하며, 절별로 해석을 진행합니다. 즉, 오늘날의 역사비평적 주석과 유사한 특징을 보입니다.
다섯째, 그는 교부 전통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특히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와 같은 주석가를 인용하며, 전통과 학문을 통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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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리라의 니콜라스 (Nicholas of Lyra, 약 1270-1349)
교부 시대와 중세 성서 해석 전통을 마무리하는 중요한 인물이 바로 리라의 니콜라스입니다.
이 인물은 중세 해석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보여주는 학자입니다.
그의 해석학의 핵심을 보겠습니다.
첫째, 그는 성경 해석에서 문자적·역사적 의미를 최우선으로 둡니다. 즉, 모든 해석은 본문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는 매우 독특한 강점을 지닙니다. 히브리어에 능통하고, 유대 랍비 전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 점에서 그는 당대 어떤 학자보다도 성경 원문에 가까이 접근한 인물입니다.
셋째, 그는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교부 전통과 중세 주석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대학 중심의 새로운 학문 전통 속에서 활동합니다. 즉, 그는 두 시대를 연결하는 가교입니다.
넷째, 그는 영적 의미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알레고리, 도덕적 의미, 종말론적 의미를 인정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반드시 문자적 의미 위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유대 해석 전통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성서 해석을 보다 현대적인 방법론으로 이끌어 간 인물입니다.
맺으며...
교부 시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성서 해석의 역사는 그저 참고될만한 방법론의 변화만은 아닐 것입니다.
- 오리겐에서 시작된 영적·알레고리적 해석
- 안티오키아 학파가 강조한 역사적·문맥적 해석
- 아우구스티누스와 그레고리우스를 통한 신앙과 교회의 틀
- 아퀴나스와 리라에 이르는 학문적·문자적 해석의 정립
이 모든 흐름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교회의 치열한 탐구의 역사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 해석은
-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 신앙, 이성, 전통, 그리고 삶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이 긴 전통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의 요청을 던집니다.
“당신은 이 텍스트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하는 물음 말입니다.
참고도서
⟪HERMENEUTICS⟫ Anthony C. Thiselton, 2009,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