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일주일에 두세 번 할머니 댁을 방문한다. 빈손으로 가는 법이 없다. 시장에서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생선이나 꽃게 떨어지지 않게 채워두시고, 나물 반찬이며 국도 갈 때마다 메뉴 다양하게 해 할머니 끼니를 챙긴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던 시기부터 할머니는 몸이 많이 약해지셨다. 그전에도 다리가 아프셔서 진통제 챙겨 드시고 혈압이 높으셔서 드셨지만 작년부터 내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쇄약 해지셨다. 가끔 침대에 앉아 텔레비전을 멍하니 보고 계시는 뒷모습을 보면 코끝이 찡해진다. 엄마도 그러신 거 같았다. 그 뒷모습이 한없이 외롭고 나약해 보여서 돌아갈 때는 발길이 무겁다.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뵐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나 스스로 약해져 가는 할머니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 같다.
가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가거나 외출을 할 때면 항상 할머니와 손을 잡고 발을 맞춰 걷는데 그 다정한 손길마저 달라지셨다. 휘청거리는 힘없는 저린 다리 때문에 손바닥에 땀이 나게 내 손을 꽉 쥐고 걸으신다. 내 손에 느껴지는 할머니의 힘이 애잔하게 만든다.
"울 할매 다리가 우짜다가 이래 됐을꼬... 할매가 언제 이래 늙어버렸지... 할매 다리만 안 아프면 꽃구경도 하고 여기저기 놀러 다녔을 낀데..."
"그러게 좋은 시절 다 갔네... 다리만 안 아프면 좋긋다"
웃으며 씁쓸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분명 지하철 타고 백화점도 다녀오시기도, 친구분들과 맛난 거 드시러 가기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 만들면 서프라이즈로 찾아오기도 했던 할머니였는데... 애 키우느라 정신없는 틈에, 몹쓸 코로나가 덮쳐 강제로 집에만 계신 틈을 타 할머니는 눈에 띄게 나약해지셨다.
그동안 코로나 핑계로 육아한다는 핑계로 너무 못 찾아뵈었나...
아이가 42개월 되고 어린이집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엄마와 함께 할머니 댁 올라가 엄마와 함께 청소한다. 엄마처럼 완벽하게 야무지게는 못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하는데 엄마는 손 끝이 야무지지 못한 나에게 한마디 하셨다.
"사람이 일을 무서워하면 안 된다. 그럼 아무것도 손댈 수 없다. 더러워도 별거 아니다 생각하고 닦아내고 물로 씻어 내리면 된다. 손끝에 살랑 걸레 잡고 슬슬 닦지 말고 빡빡 닦아내고 손이나 옷은 빨면 되지. 더럽다고 겁내지 말고. 이봐라 손 한번 날랑 거리니까 사람 사는 집 되잖아. 이래 치워놔야 할매가 맘 놓고 또 어질지. 그럼 또 치우면 되고. 할매가 할 일 있나 다 늙어서 어질기라도 해야지. 나이 든 할매한테 안 치웠다고 뭐라 할 끼가 뭐라 할끼고. 나도 나이 들면 이래 될 건데 그땐 니가 또 엄마를 이래 챙기야지. 어른 챙기는 게 별거가 이래 집 잘 치워주고 말동무해주고 맛난 거 챙겨주면 되는 거지. "
엄마의 말에 눈이 시렸다. 베란다엔 음식물이 썩어 구더기가 기어 다니고 화장실엔 설사병 걸린 할머니가 청소를 하지 않아 요즘 공중화장실보다 더 더러운 상태였는데 엄마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우리 큰 딸은 이거 보면 기겁할 건데 하며 난 보지 말고 방과 거실이나 닦아라 하고 본인은 힘든 베란다와 화장실 청소를 하셨다. 그런 엄마가 존경스러웠다. '이게 바로 엄마의 효도구나' 난 그저 청소 다 하고 할머니 말동무해드리며 아픈 다리 주물러드리고 오지만 엄마는 음식 준비에 청소에 쓰레기까지 수거해간다. 우리가 청소하면 할매는 "아이고 힘들다. 고만 해라. 난 중 내가 살 할게. 냅두고 앉아 쉬다 가라. 밥은 먹었나?" 하며 안절부절못하신다. 매번 갈 때마다 청소하는데 매번 그 소리다. 그러면 난 웃으며 "할매 나중에도 안치 울 거면서" 하며 낄낄거린다. 그럼 할매는 "미안해서 그러지." 그러신다. "도대체 뭐가 미안한데? 엄마 딸이 돼서 부모 집 청소하고 가는 게 당연하지 뭐가 미안하노" 하고 엄마는 반박한다. 그래도 할매는 계속 '미안하다, 고맙다' 고 표현하신다. 우리가 뭔가 사가거나 용돈을 드려도 '미안하다 고맙다' 고 하신다. 그때마다 난 당연한 거며 내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한다. 사실이다. 할머니한테 쓰는 돈은 아깝지가 않다. 할머니는 나에겐 마음의 평화를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갈 때가 되면 너무 금방 일어나는지 아쉬움이 가득한 할머니 손길과 눈길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할머니 모시고 같이 나가 커피도 마시고 할머니 좋아하는 예쁜 꽃구경도 해드리곤 했었다. 하지만 요새는 물어보면 안 가려고만 하신다. 다리가 아파 더 이상 산책은 무리시다. 거기에 올 해는 내내 배탈이 자주 나셔서 힘이 많이 빠지셨다.
며칠전틀니를 빼고 앉아계신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언제 이렇게 노쇄해지셨지? 그림책 속에 노파의 모습이 딱 할머니다. 언젠가 돌아가시겠지만 그 시기가 빨리 다가올 것만 같아 불안하다. 오죽하면 할머니가 돌아가신 꿈도 꾸었다. 그 꿈을 꾸고 너무 불안해서 아침에 할머니에게 바로 전화까지 해보았다.
올해 유난히 할머니께서 자주 아프셨다. 그래서 더 불안해 그런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꿈속에서 본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빨리 데리고 가진 않겠다 하며 안심은 된다.
대설이 되자 엄마 생일이 찾아왔다. 엄마는 생일날 꼭 할머니를 챙긴다. 엄마 본인 생일 미역국과 생일 케이크를 할머니께 드린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어릴 때 궁금해 물어보았다. 엄마를 낳느라 고생하셨으니 생일은 당연히 할매한테 미역국 드리는게 맞다며 너도 엄마를 보고 배워라며 당부했다.
핑계일지 모르나 이번 엄마 생신 때는 할머니를 떠올리지 못했다. 엄마 생일 당일 엄마는 아침부터 미역국 끓이고 케이크사들고 청소까지 하고는 날 찾아왔다. 엄마 말을 듣고서야 '아! 할머니!' 하며 엄마와 같이 챙기지 못한 미안함이 쏟아졌다. 아이가 후두염에 걸려 나 또한 폐렴 환자처럼 기침이 쏟아지고 몸이 아파 엄마 생일을 챙길 기력도 없었다.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쉬어 전화드리면 할머니에게 걱정만 끼칠 거 같았다. 일주일 뒤 내 생일이 되자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배운 가르침대로 케이크 사들고 부모님과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 댁에 가서 내 생일상을 차려 같이 점심 먹고 증손녀 재롱 보며 즐겁게 웃는 할머니 모습을 보고 왔다. 엄마가 더 행복해 보였다. 이번 내 생일은 나를 낳아준 엄마와 엄마를 낳아준 할머니께 기쁨을 드린 거 같아 행복했다.
나 또한 아이가 크면 생일의 의미를 새겨주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