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화장실 인테리어 공사로 6개월 된 아기와 함께 할머니 댁에 일주일 생활을 했었다. 신랑 입장에서 시댁에 가면 더 좋았을지 모르는데 내 멋대로 일주일 할머니 댁에서 지내기로 한걸 받아주었다. 사실 나도 시댁에서 지내면 어머님이 살림에 손을 보태게 안 하시니 더 편하게 지내다 올 수 있지만 할머니 댁은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하다 보니 시댁을 아예 선택지에 두지 않았다. 아이 짐이 생각보다 많다 보니 5분 거리 할머니 댁이 최적이었다.
할머니와 일주일 같이 지내면서 없는 솜씨로 식사도 챙겨드리고 빨래며, 청소며 사람 소리가 넘실 흘러나오니 사람 사는 집처럼 활기가 생겼다. 할머니도 내내 웃음꽃이 피고 얼굴에 그늘 한번 생기지 않았다. 아이 때문에 웃는다며 너무 좋아했다.
아이가 잠 들고나면 할머니 옆에 붙어 수다를 떨었다. 시답잖은 이야기부터 살아온 이야기며 별의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작은방 정리하다가 할머니 앨범을 발견하고는 꺼내와 같이 사진을 보았다.
"아따 울 할매 너무 곱네. 이 사진은 울 엄마랑 똑같이 생겼네. 지금 할매보면 울 엄마랑 닮았는지 모르겠는데 할매 젊을 때 사진 보니 엄마랑 똑같네. 완전 판박이네."
"내도 한때는 날맀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해서 지금 성한 곳이 없어 그렇지... 아고.. 내가 우짜다 이래 됐을꼬... 그러니 사과를 하나 사 먹어도 비싸고 좋은 거 사 먹고 끼니 챙겨 먹을 때도 대충 먹지 말고 예쁜 그릇에 담아 가 맛나고 든든하게 골고루 챙기 묵고 아 키울라면 어마이가 아프면 안 되니 잘 챙기 무야 된다. 아만 챙겨주지 말고. 아이고 나 새끼가 언제 커서 애 엄마가 됐노."
포근한 손으로 내 손을 어루만지며 내 등을 쓸어주셨다.
앨범을 보다 보면 꼭 숨겨진 사진들이 있다.
딴 사진 뒤에 겹쳐져 눈여겨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사진들 속에는 증명사진이 하나 있었다.
정말 앳된 모습이었다.
그 증명사진은 영락없이 동생 얼굴과 판박이였다. 증명사진을 폰으로 옮겨 여기저기 톡을 보내 보여주니 다들 내 동생 사진 같다며 말할 정도로 닮아있었다.
할머니는 그 증명사진을 보더니 눈이 촉촉해지셨다.
엄마를 낳고 100일 된 날 지아비를 바다에서 잃었다. 남해에서 도선사였던 할아버지는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터지자 당장 먹고 살 문제가 생겼다. 남편의 재산은 시댁에서 할머니에게 귀속시키지 않았다. 글도 몰랐다 보니 더 쉽게 당했다. 딸아이가 성인이 되면 아이에게 땅 증여한다는 게 아닌가.
장례를 치르고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할머니는 유난히 작게 태어나고 마른 엄마가 걱정이 되었지만 부산에는 가족도 없고 무작정 일자리 찾아 가는 거다 보니 자리 잡을 동안만 고모집에 아이를 맡긴다 생각하고 떠났다고 했다. 부산에서 일자리 구하기 위해 찍은 증명사진이었다. 그때 찍은 사진을 여태 잘 보관하고 있었다. 허나 이 사진을 보면 엄마를 두고 떠나오던 그날이 생각이나 사진 뒤에 숨겨 두었다고 했다.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말이다.
부산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전화를 하니 고모는 아기가(엄마) 다 죽어간다고 했단다. 그 말에 놀라 당장 돌아가니 진짜 죽은 듯 누워있었다고 했다. 미어터지는 가슴으로 축 쳐지고 기척도 없이 자는 삐쩍 마른 아기를 업고 밤길을 걸었다고 한다. 버스도 끊긴 깊은 밤, 할머니가 의지 할 수 있는 친정에 가기 위해 걷고 또 걸았다고 한다. 고갯길을 넘어가니 공동묘지가 나타났고 아이기 진짜 죽으면 어쩌나 겁먹은 상태로 지나는데 순간 엄마가 미약한 울음소리를 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때 저승의 문턱을 넘았다 돌아온 것이 아닌가 싶어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를 되내며 친정집에 도착했다고 했다. 아이를 두고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 할머니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너거 엄마한테 뭐 해준 것도 없고 짜달시리 잘해준 것도 없는데 나한테 잘하는 거 보면 미안타 고맙고... 너거 엄마를 보면 애잔하다. 너거 엄마 속도 속이 아닐끼다. 고생 많았다. 칠면조 같은 아빠 만나가 많이도 부딪쳤지... 고마 숙이고 살면 될낀데... 바락바락 이겨먹을라고 너거 엄마도 보통 소갈딱지가 아니지만 어린 걸 괴롭히는 저 인간도 참... 내가 자식 데꼬 시집온 게 죄인가 하며 살았지."
'할매가 엄마 편 좀 들어주고 힘이 되어주지 그랬노'하고 따져볼까 싶었지만 고개 숙인 할머니 모습을 보니 의미 없어 보였다.
나도 자식을 키워보니 내 새끼가 마냥 예쁘고 좋은데 미움받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가 쉬운가... 아마 할머니도 할아버지에게 따지기도 하고 부부싸움도 했으리라 본다. 그러니 할아버지도 잘해줬다가 또 푸드덕했다가 하지 않았을까....
"너거 엄마가 자식들을 잘 낳았다. 엄마 위할 줄 알고... 너거 엄마 지랄 맞은 구석 있어도 니가 참아라... 엄마도 풀 데가 있어야지... 니가 젤 만만하고 편하니 그런 거 아니겠나... 나도 일하랴 아들 키우랴 정신없고 몸이 힘드니까 젤 편하고 만만한 너거 엄마한테 푸드덕거리게 되더라... 지금 와서 너거 엄마한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엄마랑 딸 사이가 그렇다... 이해해주라... 할매는 니가 참 고맙다. 착하다."
"할매한테 엄마는 아픈 손가락이네...그래도 엄마가 와따지? " 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글치... 내 새끼들 다 아픈 손가락이지만... 나한테 이래 잘하고 맨날 시간만 나면 챙기러 오고... 너거 엄마가 와따지... 식당 장사하느라 피곤할낀데 쉬지도 않고 이 늙은이 챙기는 게 쉽나 고맙지...와따지" 하며 할머니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난 그저 할머니에게 엄마에게 미안해하지말고 엄마가 한테 맘 편하게 받아라고 했다. 딸이 엄마한테 하는건데 뭐가 미안하냐고 다 받아라고만 했다.
난 할머니 마음 다 안다. 미안하다면서 엄마가 챙겨주는 용돈 다 받는다.
옷 집에서 마음에 드는 옷 골라보라하면 필요없다 하시면서도 손은 옷을 만지고 눈을 스캔하고 계신다.
뭐 먹고 싶은거 없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하시면서 메뉴를 말한다.
할머니도 좋으면서 괜히 튕군다. 너무 귀엽다.
엄마가 제일 만만하고 편한 자식이라 딴 자식들에겐 말 안하면서 엄마에게는 다 털어놓는다.
이젠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이 "좋다. 좋다." 로 들린다.
이 말을 오래오래 들었으면 좋겠다.
*저희 할머니는 최고다를 와따라고 말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