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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Dec 15. 2022

이혼녀가 뭐 어때서

칠면조 아빠의 미운 오리 #10

"엄마 뭐 하고 있노."

할머니 집에 들어가며 엄마가 할머니를 찾는다.

안방에 들어가니 할머니와 셋째 이모가 앉아있다.

셋째 이모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재혼하고 낳은 첫딸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딸이다.



"야! 가스나야!! 언니가 오면 언니 왔나 하고 쳐다라도 보던가. 어딜 멀뚱 앉아있노."


엄마는 미소를 머금고 큰 소리로 이모에게 소리쳤다. 멋쩍어 괜히 더 세게 나가는 엄마 버릇이다. 아무렇지 않을 척 씩씩한 척


할아버지 장례식 후 엄마와 셋째 이모는 서로 언쟁이 있었고 지난 명절의 일로 더 틀어졌다.


그러나 엄마는 오랜만에 본 이모에게 먼저 다가갔다.


"잘 지냈나?"


이모는 별말하지 않았다.


난 그런 이모가 싫었다. 추석날 나에게 오지 말라던 이모는 더더욱 용서가 되지 않았다.

난 문 밖에서 인사도 없이 손에 들린 짐만 내려놓고 나갔다.



전에도 그랬다.

할머니 댁에 반찬 가져다주러 잠깐 들렸는데 안방에 이모가 와 있는 거 알면서도 쳐다도 안 보고 현관에서 할머니에게 반찬만 전해주고 내려왔다.


그때 할머니가 입모양으로 이모 있다 인사해라고 했지만 못 알아듣는 척, 차에 아이 두고 올라왔다며 바쁜 척하며 후다닥 내려갔었다.


이모가 돌아가고 할머니는 전화 와서

"아까 이모 있었는데 인사라도 하고 가지. 인사도 안 하고 안다고 이모가 뭐라 하더라."

하며 걱정이 낀 목소리로 말하셨다. 할머니에게는 죄송하지만 난 엄마처럼 웃으며 인사할 자신도 없었고 이모와 눈 마주치기도 싫었다. 차가워진 이모 눈빛을 보고 싶지 않았다.


차에 먼저 와 있으니 곧 엄마도 내려왔다.

"넌 이모한테 인사도 없이 가냐?"

"누가 내 이몬데? 난 이모 없다고 전에 말했는데..."

나의 차가운 말에 엄마는 한숨을 깊이 내 쉬며

"사람 그리 미워하는 거 아니다. 잊어버리라. 니 속만 안 좋아진다."하고 말하셨다.

"엄만 안 미워?"

"밉지.. 내가 애지중지 예뻐라 키운 동생이 저 모양 저 꼴인데 밉지. 못나서 밉지. 내가 그리 새 빠져라 돈 벌어서 저것들 해먹인 건 생각도

언니가 이 집에서 해준 게 뭐냐. 니 엄마 니가 알아서 잘 챙기라 내 엄마는 내가 알아서 잘 챙길게 하며 말하는 꼬락서니 보면 상족도 하기 싫지... 아가 우짜다 저리 못나졌나 싶다."

"뭐?? 이모 미친 거 아니가? 엄마한테 그리 말했다고??"

" 이제 서로 남처럼 살자고 해놓고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 내가 먼저 손 내민 거지. 내가 먼저 손 내밀면 지도 느끼는 게 있겠지. 할매 앞에서 또 못난 꼴 보이며 싸울기가 우짤 끼고 이미 엎어졌고 속은 상했어도 잊어야지."

"난 엄마처럼 안된다. 한번 싫으면 평생 죽을 때까지 싫다.할매 돌아가시고 나면 아예 볼 일도 없는 인간들이다."

"할매 앞에서 그리 못난 말 하지 마라 못 됐구로. 그리고 보면 인사해라 남한테도 인사 잘하는 기... 딸자식 제대로 키우란다 인사 안 한다고.."

"그래서 엄마 뭐랬는데?"

"그러면 네가 먼저 인사라도 해보지 언니랑 조카 들어오는데 쳐다도 안 보고 반기지도 않은 건 니다. 어른이 먼저 모가 나서 변했는데 아가 아이고 이모 왔어요하며 웃으며 인사가 되겠나? 눈치 보다 지도 나가는 거지. 했지. 내 딸내미 욕하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사람이 가" 하며 낄낄 웃었다.

엄마 웃음소리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이모에게 인사도 안 하고 미운 말만 해서 내 맘이 불편했는지 꿈에 이모들이 나왔다.

지난날 좋은 추억을 곱씹어보는 꿈이었다. 셋째 이모와 넷째 이모가 예전과 같은 따스한 눈빛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환하게 웃는 이모 얼굴이 참 좋았다. 꿈속에서 이모가 먼저 사과를 했고 난 펑펑 울었다.

예전에 다정했던 이모가 그리운 건가...


할아버지도 꿈에 나타나 이모 미워하지 마라 했는데...

내 그릇이 이거밖에 안되니... 쉽게 마음이 안 열린다.

그래도 다음에 할머니 집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라도 해볼까?


난 초등학교 때도 이모들에게 상처받고 회복이 힘들었다. 이혼녀인 엄마가 부끄러워 넷째 이모 결혼식에 초대도 못 받았다. 사촌들이고 남들도 초대받고 가는 이모 결혼식에 엄마와 난 가지도 못했다. 사진으로만 봤다.


넷째 이모를 너무 좋아했다. 세상에서 젤 예쁜 사람이 이모라고 할 정도로 이모를 너무 좋아했다. 그런 이모가 갑자기 시집을 가는데 난 이모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그 충격에 이모를 똑바로 쳐다도 보지 못했다. 이모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도 넷째 이모에게 상처를 받아 쳐다도 안 봤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이모가 와서 엄마에게 사과를 했다. 학교 마치고 오니 이모들과 숙모가 와서 엄마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간의 섭섭함을 쏟아내며 이모들에게 쓴소리 했고

이모들은 고개 숙였다.


그리고 다시 자매간에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뿐... 뒤에선 엄마를 험담하고 수군거렸다.

이혼녀가 뭐라고...

이혼녀가 뭐 어때서...


울 엄마 인생에 뭐 그리 간섭들이야 하며 따지지도 못하는 난 소심이다.

그저 속으로만 미워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아했던 두 이모에게 상처를 받고 난 마음의 병이 깊었다. 사람들을 다 믿지 못하고 정도 주지 않았다. 또다시 상처받기 싫어서였다.


그리고 새 학기, 자기소개하면 먼저 난 이혼녀의 딸이다.

울 집 재혼 가정이다 먼저 선전포고하고 다녔다.


때론 그런 가정인데 넌 참 바르게 착하게 컸다는 소리 들을 때가 있다.


도대체 이혼녀가 뭐 어때서? 재혼이 뭐가 나빠서 색안경을 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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