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나타난 할배
칠면조 아빠의 미운 오리 #7
어릴 적부터 내 꿈은 오묘했다. 엄마가 신기가 있어 그 영향이 나에게도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17년 전 양산의 큰 절인 통도사를 방문했다. 절에 있는 사천왕이 서 있는 천왕문을 지나 불이문을 통과하는데 어지럽고 온 몸이 찌릿찌릿 한 기운을 느꼈다. 문을 다 통과하고 뭔가 기가 빠져 관리소 앞에 앉았다. 그때 한 스님이 내 옆에 앉아 "찌릿찌릿하시지요?" 하며 말을 걸었다. 어른들과 수다를 잘 떠는 붙임성 좋은 아이라 스님과의 대화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스님께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셨고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나의 영이 초록색에 가까운 밝은 기운인데 그 덕은 할머니 영향일 거라며 할머니에게 잘하라며 말을 하셨다. 힐머니가 신기 받아야 했는데 할머니가 받지 않아 엄마에게 대를 이어 간 것이며 그 영향이 나에게도 조금은 있는 거라 하셨다. 내가 문들을 지나며 찌릿찌릿했던 것은 얼마 전 장례식장에 다녀오지 않았냐며 내 주변에 지저분한 것들을 저 문들이 걸러준 거라며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누가 들으면 오싹한 이야기지만 어릴 적부터 엄마의 신기 덕분에 별 이상한 일을 겪은 터라 당시엔 그런 거예요? 하며 스님의 말에 더 경청했었다. 스님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복돈도 예쁜 복주머니에 담아 주셨다. 그 복주머니는 어디로 갔는지... 결혼 후 잃어버려 속상하다.
그리고 스님과 함께 진신사리 몇 바퀴 돌았다. 멍하니 따라 걷기만 했다. 누구는 절에 가면 소원 빈다는데 난 절에 가면 머리가 맑아져 아무 소원도 빌 수가 없다. 머리가 무거우면 절에 가서 비우고 온다.
다시 꿈 이야기로 돌아오면 어릴 적에 할머니 댁에 도둑이 드는 꿈을 꾸었다. 너무 무서워 부엌 식탁 밑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았다. 커다란 식탁보가 날 가려주는데도 난 모든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훗날 나에게 물려주겠다던 진주 목걸이도 도둑이 훔쳐가고 할머니의 폐물들은 물론 가게에 판매를 위해 사둔 담배도 박스채 훔쳐가는 꿈을 꾸었다.
꿈은 반대, 입은 방정이라고 설마 도둑 들겠어??
내가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다. 소위 말하는 개 꿈이다. 생각하고 학교에 갔다. 주말에 할머니를 찾아가니 도둑이 들었다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소름이 돋았다.
내 꿈이... 진짜라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게에 있는 동안 빈집털이가 되었다고 한다. 인명 피해 없어 다행이라며 뭐 크게 피해 본거 없다고 괜찮다고 했다. 아직도 도둑은 잡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나오는 꿈을 꾸는데 꿀 때마다 살아생전의 모습과 같아 꿈에서 돌아가신 분이라는 걸 잊게 된다. 깨고 나서 한참 후 '아!! 할아버지 돌아가셨잖아!' 할 때가 있다.
할머니 댁 청소하며 할아버지 사진도 닦거나 할아버지 얼굴을 계속 쳐다보고 와서 그런 꿈을 꾸나 싶어 할아버지 사진을 피하기도 했지만 꿈에서라도 할아버지를 만나니 반갑기도 했다.
기억나는 할아버지 꿈을 이야기해보면 건강했던 모습의 할아버지로 늘 찾아오신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게 아닐까?
살아생전에도 할아버지와 난 안방에서 이부자리 깔아놓고 수다를 떨곤 했다. 할아버지와 마구 수다를 떨다가 밤이 깊었으니 잘 준비 하자며 할아버지가 직접 이불을 펴셨다.
그 자리가 멍석이고 꼭 사람이 오래 누웠던 거처럼 시커멓게 사람 자국이 있었다. 너무 더럽다 못해 끔찍한 자리인데 펴기에 기분이 이상했다. 그 옆에는 아주 깨끗하고 포근한 요를 깔았다.
"할아버지 여기 깨끗한 요에 누워 주무세요. 여긴 제가 누울게요 할머니랑 깨끗한 요에 누우세요." 하며 멍석에 누울려는데 할아버지는
" 니가 왜 거기 눕노!! 당장 나와" 하며 역정을 내시는 바람에 너무 놀라 뒤로 휘청거렸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무섭게 화낸 적이 없다 보니 더 놀랐다. 놀라며 깨고 나서도 뒤숭숭했다. 이 꿈은 뭐지? 하며 어리둥절 했다. 그러나 깨끗한 요는 할머니 자리라고 하는거 보니 할머니가 아프셔도 할아버지가 계속 집에서 지켜주시고 계시는 느낌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할머니 댁에가서 할아버지 사진을 보며 씩 웃어보았다.
어느 날은 할아버지가 너무 심하게 누런 토를 쏟아부으셨다. 집이 들어오자마자 막을 새도 없이...토만 하시고 말도 없이 가셨다. 뭐가 안좋은 일이 생길려나? 염려 되기도 하여 할머니 댁을 찾아가 할머니 살펴드리고 왔었다. 그 꿈을 꾸어서 그런지 올해 난 식중독에 걸려 할아버지처럼 토를 쏟아부었다.
또 어느 날은 할머니 댁을 열심히 청소하는데 할아버지가 나타나서는 청포도, 수박, 사과, 배... 하며 받아 적어라 하셨다. "사온나" 이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난다. 난 얼떨떨해서 "지금요? 왜 나한테 사 오라 해요. 할배 드시고 싶으면 이모들한테 사 오라 하세요. 난 싫어요." 하며 대들었더니 "이모, 미워하지 마라 사온나, " 하셨다. 그 말에 코 끝이 찡해졌다. 그런데 난 보통 녀석이 아니다. 개구쟁이 같은 면이 있다. "사 오면 로또번호라도 알려주실 거예요?" 하고 반문하자 할아버지는 씩 웃으셨다. 잠에서 깨서 혼란스러웠다. 왜 나에게 사달라하지? 제사를 절에 맡겨놨는데 제대로 안 챙겨주는건가? 아니면 절에 과일 사들고 오란건가? 묘소 찾아가야하나? 혼자 고민도 했다. 시부모님께 꿈 이야기 들려주시니 살아 생전 할아버지가 너한테 정이 있나보다며 한번 찾아가봐라 하셨다.
난 언제 한번 시간 내어 할아버지가 드시고 싶다는 과일 사들고 찾아봬야 할거 같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왜 내 꿈에 나타나세요. 하고 물어보고 싶다.
내 꿈에만 나오나 물어보니 엄마 꿈에도 할머니 꿈에도 종종 찾아 오신다고 한다. 저승에서 많이 한가하신가봐요 할아버지...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