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도 엄마 팔자가 고달파 고생이 많았다. 그때 당시 신혼집 월세가 4만 원인데 아빠 월급은 5만 원이었다고 한다. 아빠는 고모부 밑에서 일을 했는데 고모부가 월급을 굉장히 짜게 주어 고모가 종종 용돈을 챙겨줬다고 했다. 엄마는 고모 덕에 결혼 생활을 버텼다고 했다. 가난한 형편에 먹고살아야 하니 엄마도 일을 했다. 배운 게 미싱일이라 옷 수선 가게를 차렸다. 어릴 적 기억은 거의 다 지워졌지만 할머니 집 근처에 엄마가 옷 수선 한 기억이 있다. 바로 옆집이 과일집이었는데 과일을 좋아하는 난 엄마가 세워놓은 나무 간판 안에 숨어 소쿠리에 담아놓은 딸기를 콕콕 찔렀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엄마가 딸기를 사주셨다. 딸이 사고 친 걸 수습한 거였다. 엄마가 당시 돈을 엄청 잘 벌었는지 부족함이 없이 컸다.
늘 엄마는 힘들었지만 내 덕에 살았다고 했다. 어릴 땐 그 말이 무슨 의미 인지도 몰랐고 버겁고 무거웠다. 더 착한 딸 똑똑한 딸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 하는 압박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비로소 나도 애 엄마가 되고 보니 그 말이 이해되었다. 마음이 버겁고 힘든 날도 아이 미소를 보면 살맛이 났다. 아이가 박카스보다 더 활기를 불어넣는 존재가 되었다. 때론 내 몸 하나 간사하기 귀찮고 피곤해 그저 누워 있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아이 때문에 살아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엄마가 어릴 적 했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엄마는 나를 키우다 고비가 왔다. 갑자기 신기가 생겼다. 귀신들이 보이기도 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몸과 마음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천주교 신자인 아빠는 더더욱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성당에 들어서다 갑자기 쓰러지거나 헛것이 보이고 잡귀신들이 매일 같이 엄마에게 말을 걸어왔다고 했다. 엄마는 신내림 받기 싫어 온 몸으로 저항을 했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 엄마를 데려가면 그때마다 엄마의 몸에 들어온 신의 기가 보통이 아니라 무당들도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오히려 엄마 때문에 본인의 신이 도망가 다시 엄마를 찾아와 사과하고 간 무당도 있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날이 갈수록 아빠는 엄마가 못 마땅했다. 싸우다 엄마를 손찌검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참고 지내왔다.
내가 고등학생 일 때 너무나도 선명한 꿈을 꾸었다. 내가 자다 깼는데 엄마가 아빠에게 너무 심하게 얻어터지고 있었다. 난 너무 무서워 작은 책상 밑에 숨어서 맞고 쓰러진 엄마를 보았다. 그 옆에 서있는 아빠의 다리도 보였다.
꿈이 선명해 엄마에게 물었더니
"굳이 기억 안 해도 되는걸 왜 기억해냈니..." 하며 한숨을 쉬셨다. 그때서야 엄마랑 아빠가 이혼 한 이유를 알았다.
엄마를 그리 두들겨 패 엄마는 친정으로 도망쳐왔다. 그런데 할머니 보는 앞에서도 엄마를 때리고 죄의식 없이 밥 먹는 모습에 엄마는 기가 찼다고 한다. 난 그런 사람 밥 차려준 할머니가 이해 안 됐다. 엄마는 피를 토하고 쓰러져 힘이 없었는데 마침 집에 들어온 할아버지와 이모부 할아버지가 엄마의 몰골을 보고 엄청 화를 내며 이혼을 시켰다고 했다. 그때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의지가 많이 되었다고 한다. 이혼 후 나와 살집도 구해주었고 간간이 들려 굶어 죽지 않나 살펴봤다고 한다. 이게 아버지의 든든함이구나 하며 엄마와 할아버지 관계는 좋아지는 듯했다.
그 무렵 엄마는 법당을 차렸다. 어릴 때 기억이 지워졌지만 그 무렵 엄마와 단둘이 살 때 엄마의 눈빛이 가끔은 다른 사람 같을 때가 있었다. 같은 말을 해도 어떤 날은 온화한 엄마였는데 갑자기 돌변해서 차갑고 무뚝뚝하거나 시릴 만큼 냉정한 눈빛일 때가 있었다. 그래서 엄마 눈치를 너무 많이 봤다. 엄마와 되도록이면 말을 안 하게 되었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할머니 댁이나 난 거의 매일 할머니 찾아가 밥 먹고 오고 놀고 오고 때론 할머니 품에서 자기도 했다.
엄마는 신기 때문에 종종 밤에 기도를 드리러 산에 올라가기도 했다. 아니 몽유병 환자처럼 엄마도 내 옆에서 자다가 정신 차려보면 산에 있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하루는 엄마가 작정하고 산에 기도드리러 갔는데 도착하자 그 순간 법당에 촛불이 번져 내가 자는 공간까지 불이 나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였다고 한다. 엄마는 무슨 정신인지 몰라도 기도를 드리며 산을 내려와 공중전화를 찾아 친정에 전화했고 내가 무사하길 빌었다. 전화를 받은 할아버지와 삼촌은 날 구하기 위해 새벽에 우리 집을 찾아 날 구했다고 한다. 부랴부랴 집에 오자 진짜 엄마가 본모습대로 불이 났지만 다행히 이부자리로 불이 오지 않았고 난 너무 잘 자고 있었다고 했다. 난 집에 불이 났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났다고 하니 엄마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신기하게 이불에만 불이 안 붙어 뭔가 보호막이 쳐진 듯 깨끗했다고 한다. 엄마는 아무래도 신이 보호해준 거 같다고 한다.
친정 가까운데 살며 의지하며 날 키워나갈 수 있었다.
난 불이 났는지도 모른 채 갑자기 왜 이사? 하며 의아스러웠는데 이렇게 커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이렇게 글로도 남겨본다.
지금은 그 집터도 흔적 없이 도로가 되어버려 도로 지나갈 때마다 여기쯤 엄마 법당 차렸던 우리 집인데 하며 추억해본다.